교헤이는 1층 침대를 빼앗겼다. 그는 2층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진석이라는 남자는 그의 생각보다 더 무지막지했다. 옷장을 열어보니 휴지고 속옷이고 자기 마음대로 가져다 쓴 건 물론 그의 축구 유니폼도 마음대로 입고 다녔다. 교헤이는 녀석에게 맛을 보여줄 계획을 세웠다. 회의 장소는 맞은편 가츠라의 방이었다. 가츠라와 그의 여자친구 쿠루미, 야마자키와 오키타는 진석이 방에 있을 때 그를 덮쳐 제대로 두들겨 패주기로 결정하였다. 줄줄이 소세지로 방으로 들어가 조져버리는 간단한 전략이었다. 하루 종일 방에서 노트북으로 게임만 하고 있는 녀석을 쉽게 제압할 것이라 여겼다. 야마자키를 필두로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진석은 먹던 컵라면을 야마자키의 얼굴에 부어버리더니 달려드는 오키타를 유리창으로 던져버렸다. 가츠라의 야구방망이가 2층 침대 다리를 내리친 사이 진석은 야마자키의 등을 밟고 점프해 가츠라의 얼굴을 발로 찼다. 교헤이와 쿠루미가 진석에게 달려들었고 오키타가 그 위에 뛰어올랐다. 세 사람은 손발이 얽혀 바닥을 기었다. 가츠라와 야마자키까지 합세해 진석을 붙잡았다. 쿠루미가 힘에서 밀려 손을 놓은 사이 한국인은 손가락으로 야마자키의 눈을 찔렀다. 발이 자유로워지자 오키타의 성기를 걷어찼고 교헤이의 턱에 박치기를 가했다. 가츠라를 힘으로 제압한 그는 침대 위로 뛰어올라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공격의 대상은 진석의 노트북 옆에 자리한 교헤이의 노트북이었다.
-야, 네 일본인 친구들 꺼지지 않으면 나 이거 부셔버린다. 10초 준다. 10, 9, 8, 7........
그 후 교헤이에게는 처벌이 내려졌다. 진석은 두루마리 휴지를 물에 흠뻑 적셔 교헤이의 몸을 때렸다. 교헤이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얼차려를 받았다. 진석은 그의 머리를 맨발로 밟으며 짜증을 냈다.
-교헤이야, 내가 말 안 했니? 난 말이지, 요즘 짜증이 너무 많이 나. 방에서라도 조용히 있고 싶다. 그런데 내가 날 이렇게 건드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되니, 응?
-네가 먼저 내 물건 마음대로 썼자나. 내 돈도 훔쳐가.......
발이 머리를 세게 밟자 손이 풀렸다. 교헤이는 코부터 바닥에 찧었다.
-그거 몇 푼 가져갔다고 이 지랄이냐, 새끼야. 그거 몇 푼 한다고 이 지랄이야, 지랄은. 그리고 난 말이지 2주 후면 집에 간다고요. 그런데 가져온 돈이 좀 부족하다고요. 지랄 맞게 숙소를 여기로 옮겨서 추가 금액을 내야 했다고요, 씨발! 그러니까 돈 좀 쓰겠다고. 불우이웃 도와준다 생각하고 좀 보태라. 일본에서 유학 올 정도면 잘 살 텐데 그게 그렇게 아깝냐.
-그 돈, 내가 굴욕 참고 받아낸 거야. 엄마, 아빠가 하는 욕 다 먹어가면서 받아낸 돈이라고. 그걸 왜 너한테 줘야 되는데?
-하, 있는 놈들이 더해요. 야, 네가 번 돈도 아니잖아. 부모님이 준 건데 그게 그렇게 아까워? 그리고 부모님이 돈 줬으면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야지, 뭐? 욕 쳐 먹으면서 받은 돈? 야, 이 새끼야, 욕만 하고 돈 안 주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데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하여튼 간에 있게 자란 놈들은 갈증이 없어요, 갈증이.
교헤이는 더 이상 말할 힘이 없었다. 진석이 씻으러 나간 후에야 젖은 휴지로 코피를 닦았다. 정말 누나가 악마를 보낸 걸까. 문자에 답 하나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런 고통을 선사하는 걸까. 교헤이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진석은 수업에 빠지는 횟수가 늘어났다. 참석해 봤자 알아듣지도 못하고 수업 분위기만 흐리니 차라리 방에 있는 게 낫다는 계산이 먼저 섰다. 그는 관광도 나가기 싫어했다. 싫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공기가 더 텁텁하게 느껴졌다.
-야, 교헤이. 너 팬더 본 적 있냐?
교헤이는 대답하기 싫었다. 전날 진석은 새벽 3시까지 노래를 불러댔다. 그가 시끄럽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MP3를 최고치로 하고 침대에 누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진석이 휴지를 머리에 던져 어쩔 수 없이 답을 했다.
-그럼 내일 나랑 동물원 좀 가자. 내가 중국 와서 꼭 보고 싶은 게 팬더인데 우리 일정에 동물원이 없걸랑.
-갈 거면 너 혼자 가. 내가 왜 너랑 같이 가?
-교헤이 짜응, 쳐 맞을래?
진석은 딱 동물원 요금만 냈다. 동물원 내에 다른 요금들은 모두 교헤이의 지갑에서 빠져나갔다. 팬더관 역시 교헤이가 값을 내야 했다. 진석은 팬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먹고 똥이나 찍찍 싸는 저 곰탱이가 뭐가 좋다고. 교헤이는 하품을 찍찍 내뱉었다.
-야, 일본인. 너 팬더에 대해 잘 아냐? 쟤들 대나무만 쳐 먹잖아. 그런데 사실 쟤들 몸은 대나무를 잘 소화시키지 못한데. 육식을 하는데 더 적합한 소화기관이라나 뭐라나. 팬더가 대나무를 먹은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래. 천성이 게을러서 먹이 경쟁에서 뒤쳐지니까 아무도 먹지 않는 대나무를 택한 거야. 한 마디로 적응을 한 거지. 덕분에 쟤들은 살아남은 거야. 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야. 적응을 해야 살아남지. 난 말이야, 지금 굉장히 적응하기 힘든 환경에 떨어졌어. 그래서 대나무가 필요해. 살기 위한 대나무가. 넌 나한테 대나무야, 알지?
팬더는 나무 사이로 들어가더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잠에 빠졌다. 귀여운 동물은 주변의 소음과 시선에 완전히 적응했는지 꿈쩍도 않는다. 교헤이에게 적응이란 건 두려움이다. 적응은 끝이 아닌 영속이다. 자유를 포박당한 감옥에 갇혀 닫힌 문이 아닌 벽만을 바라보는 감금. 누나는 알았을 것이다. 숨이 다하거나 끊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저 남자는 누나가 보낸 것이다. 그에게 적응할 것인가 아니면 탈출할 것인가. 진석은 시험지이다. 그가 부모에게서 탈출할 수 있는지 없는지 의지와 능력을 채점하기 위한 평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