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헤이는 생각을 바꾸었다. 어차피 진석은 떠난다. 겨우 며칠만 버티면 그를 영원히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진석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중국에 오지 않을 것이다. 중국어라고는 1도 못하는 인간이 올 리가 없겠지. 그는 자신을 석방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죄수라고 생각했다. 괜한 문제를 일으켜 출소일이 늘어나지 않으면 곧 햇빛을 볼 수 있는 그런 처지라고 말이다. 그는 참았다. 화장실 칸을 벌컥 열 때도, 머리에 생수를 부을 때도, 그의 노트북으로 토렌트 프로그램을 우회해 돌릴 때도 참고 또 참았다. 친구들은 초췌해져 가는 교헤이의 모습에 염려를 표했으나 그는 말을 아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머리로 시간을 세는 일에만 몰두했다.
진석은 교헤이와 함께 까르푸를 향했다. 마지막 남은 돈으로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다. 내일이면 진석은 떠난다. 그 생각만으로 교헤이는 아줌마들 틈에서 할인행사 중인 반바지를 쟁취하는 룸메이트의 추한 모습을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진석은 교헤이와의 마지막 식사인 샤브샤브까지 그의 돈으로 계산시켰다. 아무렴 어떠냐. 이제 안녕인데. 교헤이는 그가 고른 기념품들을 바라보았다. 차, 차, 차, 차. 한국에서도 흔히 살 수 있는 차가 전부다. 촌스럽고 센스 없는 새끼. 교헤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국에는 까르푸가 없어. 망했거든. 외신에서는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서 발을 뺀 거라고 하는데 잘 되면 발을 뺐겠냐. 지들 잘났다고 자기들 방식으로 운영하니 망한 거지, 뭐. 야, 교헤이. 너 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뭔 줄 아니? 고집이 존나 강해요. 남들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특히 한 번 성공한 사람들은 그런 경향이 강하지. 내가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말이야, 진짜 좆같은 선배들한테 걸렸어요. 일본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도 집단문화가 강하거든.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 이 새끼들아. 암튼, 그 선배들은 말이야, 자기들만의 방식이 있어요. 남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방식. 그게 한두 번 먹히니까 계속 반복하는 거야. 남들은 그러면 안 된다, 잘못된 행동이다 해도 말을 안 들어요. 그 인간들 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어떻게 되었는데?
-벌 받았어. 한 놈도 빠짐없이 다.
진석은 소년 같은 얼굴로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교헤이도 따라 웃었다. 잘 가라 망할 총 새끼야. 함께 있는 동안 개 같았고 다신 보지 말자꾸나. 진석은 악수를 건넸다.
-교헤이 네가 그리울 거야. 너 만큼 재미있는 놈은 한국에서도 찾기 힘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