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을 누르고 2를 누르려는 순간, 진석은 망설였다. 경찰이 과연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최악의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는 몇 번이고 동아리 선배들을 폭력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대충 사건을 무마시켰다. SNS에 이런 행태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지만 별다른 화제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남들 다하는 학교 앞 길을 무단 횡단했다는 이유로 범칙금을 내야 했다. 동아리에서 경찰을 욕했다가 아버지가 경찰인 후배와 싸우기도 하였다. 이놈들한테 맡겨봐야 되는 거 하나 없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 그는 기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 앞 자취팸의 리더격인 1학년은 깍듯이 고학번 선배의 말에 네, 형님이란 대답을 달았다.
-기훈아, 애들 좀 모아서 학교로 가라. 장난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어떤 이상한 새끼가 날 죽여 버린다고 해서. 그래, 박물관으로 애들 모아서 가. 너 혼자가지 마라. 혹시 장난이면 그냥 가고, 알았지?
-넵, 형님. 애들 다 모아서 가겠습니다. 어떻게 완전 죽여 놓을까요, 반쯤 죽여 놓을까요?
반쯤. 진석은 통화 내용을 생각하며 괘씸하단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장난이라면 왜 하필 오늘인 걸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을 이렇게 망쳐버리다니. 진석은 로비로 내려와 숙박을 대실로 바꿔달라고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치와와를 품에 안은 아줌마는 남자가 끝장을 보겠다고 마음먹었으면 해를 봐야하지 않겠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서지 않는다고요, 씨발. 그 말은 입에서 소화되었다. 진석은 며칠 전 본 영화를 떠올렸다. 한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연극을 펼친다. 집에 괴한이 침입하고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와 옷장 속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괴한은 남자아이의 친구다. 실망한 여자아이를 남자아이는 공격하고 의자에 포박한다. 그리고 찾아온 여자아이의 남자친구를 죽인다. 줄에 매달은 페인트 통을 2층에서 떨어뜨려서 얼굴이 날아가게. 혹시 소민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진석을 유인하려는 게 아닐까. 갑자기 그림 하나가 그려졌다. 그의 배에는 칼이 박혀 있다. 옆에는 손가락이 모두 잘린 소민이 울고 있고 우락부락한 남자는 효림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그녀를 끌고 간다. 남자가 쥔 칼에서 떨어지는 피가 효림의 원피스를 물들인다. 그와 눈이 마주친 진석은 한기를 느낀다.
-왜 이렇게 늦었어! 왜 이렇게 늦었냐고!
방을 잘못 찾은 줄 알았다.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진석은 방을 착각한 줄 알고 옆방을 두드리려 했다. 그때 문이 살짝 열리더니 문틈으로 효림의 눈이 보였다. 진석임을 확인하자 그녀는 문을 열었다.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유리창은 완전히 박살나 있고 바닥에는 벽돌이 있다. 침대에서 핸드폰을 하던 효림은 벽돌이 날아와 겁에 질렸다고 한다. 진석의 번호도 못 누를 만큼 손이 떨렸다고. 진석은 바닥에 놓인 3개의 벽돌을 바라본다. 각각의 벽돌에는 글자가 적혀 있다.
博物館に来い (박물관으로 와라)
それともあなたの親、兄弟から殺す (아니면 네 부모형제부터 죽이겠다.)
そしてあなたの目の前の女性にも (그리고 네 눈앞의 여자도.)
그는 핸드폰 번역기를 돌리면서 이를 갈았다. 놈은 존재한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누군가가 그를 노리고 있다. 놈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디 있는지 알면서 시험한 것이다. 녀석은 박물관에 없었을 것이다. 기훈은 친구들을 이끌고 갔다 아무도 없자 화가 나 연락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선배에게 화를 낼 수도 없어 연락을 무시한 거다. 망할 외국인-이제는 일본인이란 걸 알게 된 이 녀석은 두 번째로 시험을 했다. 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 소민도 효림도 그리고 진석도 죽여 버릴 것이다. 효림의 눈망울에 맺힌 눈물에 밴드부 보컬은 기합을 넣었다. 한 번 겁에 질려서 사랑을 놓쳤다.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 나약함은 육체와 정신을 병들고 피폐하게 만든다. 강해져야 한다. 누군가를 지키려면 강해져야만 된다. 더 이상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