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y Dec 30. 2021

침대에서만 써지는 글

게으름의 순기능

덥게 고문하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춥게 고문하면 뭐든지 불어버릴 것 같을 정도로 추위를 싫어하는 나는, 요즘엔 어느 계절이 좋냐 물으면 "겨울"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왜냐고 물으면 "따뜻해서!"라고 답하곤 하는데, 겨울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고 난 후 조금씩 겨울에도 정을 붙여가고 있다. 특히 겨울에만 방안 깊숙이 들어오는 햇빛을 즐길 때면 나도 모르게 '겨울 너무 좋아.'라는 생각도 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늘 아침, 강원도에서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갑작스럽게 처리해줘야 할 일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어제 3시간 동안 운전하고 내려갔다가, 오늘 또 3시간이 넘게 운전해서 올라왔다. 오늘 아침 강원도 온도는 -10도였다. 휴식을 즐기러 간 곳이었고, 그곳의 산책을 정말 사랑하지만 -10도의 날씨는 남은 4박을 포기하게 하기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다. 

급했던 은행업무까지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난로 앞에 앉아 백군이 끓여준 라면을 먹으니, 역시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백군이 혼수로 해온 난로
라면을 이렇게 국물 없이 먹는다.


나는 여름에도 손발이 차고, 추위엔 특히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겨우내 가장 사랑하는 곳은 침대고, 침대 위에 깔린 스팀보이와 뽀송한 이불은 늘 나와 한몸이다.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이제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어쩌면 그게 겨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추우니까 자꾸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한번 이불속으로 들어온 이상 하루치 물까지 준비해두고 잘 움직이지 않기에, 게다가 이불속에선 손도 놀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두고 글을 쓰면 노트북 열기 때문에 더 따뜻해지고, 글쓰기는 마우스도 딱히 필요하지 않아 간편하다. 이렇게 습관이 들어버려선지 책상 앞에선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브런치의 모든 글은 침대에서 써졌다. 이것은 '글을 쓰도록 나를 의자에 묶어주세요.'라고 했던 어떤 작가 이야기와 비슷하다.

밖에는 바람소리가 무섭게 들리고, 덕분에 게으른 나는 이불에 묶여 작은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글은 정말 엉덩이로 쓰는 건가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Present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