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는 5개월 전 우리 집에 온 누렁이다. 본디 강아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혹시 벼룩에라도 물릴까 봐 어릴 적부터 무서워하고 꺼리기까지 해 왔었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막내가 회사 근처에서 유기견인지를 데리고 왔다. 지난번에는 검둥개를 원했는데 엄마. 아빠의 거절로 상사병을 앓면서까지 포기를 해야 했어서 동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대를 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대답에 막내는 여름이를 모셔왔다. 심지어 나는 엄마로서 할 짓이 아닌데도 아빠한테 친구네 강아지라고 거짓부렁을 하게 알려주기까지 했다. 아빠가 워낙 집에서 강아지 키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치고, 어찌 되었든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호적에 올린 건 아니지만 여름이는 점점 우리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희들 말로 고모들은 까무러치게 좋아하고 나도 2~3주 전부터는 그 애가 보이기 시작했다. 몸 중에 한 부분을 수술하게 되어 막내 회사에 따라가지 못하고 집에 머물면서부터다. 약하고 측은해 보이니까 그때부터 그 애를 만지게 되고 날이 더우니까 씻겨주고 싶고 그런 맘이 생기더란 말이다.
이 친구는 진돗개와 ㅇㅇ개의 합체일 거라고 동물병원 원장이 말해줬단다. 잘생긴 이 아이에게 배변훈련을 시키려고 했으나, 밖에 나가서 산책할 때만 일을 보고 집에서는 도통 먹는 일 말고 싸는 일은 하지를 않는다. 그러던 중에 한두 번은 바깥나들이가 뜸해졌을 때 집에다 실례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정작 대변까지는 아니었다. 집에서 여름이를 돌본 지 약 2주가 되어가는 이때에 내가 염려했던 느낌 그대로 대형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어제 오후에 대변이 약한듯해 좀 오래 뒀다가 일을 보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기는 했지만, 아무튼 큰고모(?)가 아침 7시에 산책을 급히 시키느라 오줌만 뉘고 회사에 갔다. 그리고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창밖을 자주 내다봤지만 틈이 보이지가 않았다. 여름이의 배변 기회를 찾다가 이번에도 잠깐 소변만 뉘고 집으로 돌아와 갑작스럽게 생긴 시누이 형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음식점으로 향했다. 여름이를 돌보느라 5분 늦었더니 형님들은 이미 음식을 주문해둔 상태였다. 내 생일밥이라니 맛나게 먹고 나오는데 큰 형님을 지하철 타는 데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작은 형님이 그런다. "형님이 택시 탄 김에 보건소 앞에서 내려 드리세요."라고 말하고 나 스스로 켕기는 데가 있어 직선코스로 부지런히 집에 왔다. 무슨 일인지 여름이가 걱정이 되었는가 보다.
하참!!!
집에 당도하여 대문을 열었더니 여름이가 팍 달려드는데 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더니 문을 열고 발을 딛으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아!
현관 바닥이 온통 새까맣게 얼룩이 지고 대문 가까운 신발장에 있는 신발들이 산발이 되어 있다. 대략 다섯 켤레는 되려나. 신발 바닥에도 강아지 묶는 고리에도 이게 다 범벅인 게 여름이의 응아가 이런 꼴이 된 거다. 미안한 마음 쪼끔에 미운 마음이 잔뜩 들어 가지고 이 애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 바로 샤워를 시켰다. 그간에 몇 번 씻겨 줬더니 이제는 도망가지 않고 따뜻한 느낌을 즐기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기는 했다. 구슬땀을 흘리며 씻겨 내보냈더니 다시 현관 그 악마의 자리로 달려가려고 한다. 얼른 잡아서 큰고모 방으로 보내고
황당한 현관 정리를 해야만 했다. 양손에 장갑을 끼고 물티슈에 세제와 물을 좀 묻혀서 준비했다. 먼저 찢기고 짓이겨진 신발들을 화장실에 던져놓고 오물들을 닦고 있는데 느닷없이 벨이 울린다. 누구신가 했더니 관리실에서 보일러 배관 부품 교체 문제로 방문했다네. 당체 그러는 편은 아닌데 아저씨더러 20분 후에 오시라고 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이 사태를 수습하려니 정말이지 몸 따로 마음 따로여서인지 갈피가 잘 잡히지 않고 구슬땀만 줄줄 흘렀다. 집안에 에어컨이 돌고 있는데도 처음 겪는 험준한 고통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쓰레기가 봉지에 한가득하게 닦아냈지만 석연치가 않아 대걸레를 빨아 싹싹 닦으니까 그때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대문을 열어 고리를 걸어놓고 옹색한 환기를 시작하고 또다시 화장실로 가서 찢어지고 더럽혀진 신발들을 물에 불리고 물비누를 평소보다 많이 뿌려 이러고 저러고를 하면서 칫솔로 문지르기도 하고 샤워기로 물을 한참을 뿌려대고나서야 시커먼 그것들이 사라져 갔다. 모래 사그라지듯 그렇게 없어지긴 해도 냄새는 아직이어서 환풍기를 틀기도 하고 향수 대신 에프킬라라도 살짝 뿌려 마무리를 했다. 아저씨들은 그래도 냄새가 어느 정도 가신 뒤에 왔다. 아침부터 옥수수 찌느라 널브러진 주방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한 다음에 와서 그나마 덜 부끄러웠다.
그건 그렇고 씻긴 다음과 아저씨들 중에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양반이 있어 한 번 더 큰고모 방에 두고 문을 닫았더니 그다음 오후 내내 여름이는 내게 냉랭했다. 사실 나도 그 큰 사건 이후 여름이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흥!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돌아온 둘째 고모는 자기 신발이 두 켤레나 사단이 났는데도 여름이가 좋은 나머지 "그거 오래 신어서 괜찮아."라고 관대하게 말하고,
큰고모는 제일 늦게 와서는 "그래도 대문 앞에서 사고 친 거 보면 양반이네." 그런다. 현장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사진을 남겨두지 않아 몹시 억울하다.
막내동서가 맛있는 옥수수를 보내와 그것을 찌고 형님들에게 배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기는 하나 그 얘기를 형님들에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여름이도 이제 우리 식구니까 걔 흠을 말하면 위신이 깎일지도 모르는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