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도서관
거의 매일 연락해 오던 딸이 어제 하루는 감감무소식이다. 잘 있겠지 싶다가도 슬슬 궁금해졌다. 오전 수업을 다녀와서 궁금하던 차에 뭐 하는지 물어봤더니
쫄면을 끓이는 중이라고 했다. 샐러드에 곁들이려고 감자를 찌고 있던 중에 그럼 식사 후 우리 동네에 조용하고 좋은 도서관이 있는데 거기 가자고 제안했다.
딸은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복지관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먼저 보고 싶어서 아파트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밤부터 시작된 장마로 딸의 크록스 신발은 홀딱 젖어 있었다. 집에서부터 장화를 신고 나온 나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빗길을 한참을 걸었다. 집에서 제일 큰 우산을 가져왔음에도 세찬 바람을 동반한 빗줄기는 만만하지가 않았다.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지만 도서관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이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명이 밝은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딸은 분위기를 보고 싶다며 한 바퀴 돌더니 이내 오전에 시험본 오답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용히 하면서 연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뽑아서 식히는 중에 최인아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펼쳤다.
딸은 최근에 이직을 하려고 퇴직 후에 시험 준비 중이다. 조직생활 중에 있다가 홀로 있는 것이 처음엔 편하고 좋은 것 같이 느껴지지만 막상 오늘처럼 후텁지근하고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에는 마음 추스리기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이다. 마음에 면역력이 부족한 엄마와는 달리 씩씩할 수도 있지만 아직 손주도 없이 한가한 엄 마가 도서관 친구가 되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해서 계획한 나들이었다. 커피를 홀짝대면서 최인아 님의 글을 읽자니 이건 우리 딸에게 꼭 필요한 책이구나 했다가도 지난 몇 년간 글쓰기를 멈춰오던 나에게 근질근질 뭔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오답노트를 다 했는지 집에 가자고 했다. 비도 오고 좀 추운데 뭐 따뜻한 거라도 사줄까 물었더니 아직은 배고프지 않다길래 시장길을 산책하듯 지나다가 평소 맛나게 먹었던 미니 족발을 하나씩 사서 들었다. 걸으면서 오늘 읽은 책이 네게 필요할 것 같던데 빌려줄까 하고 물었더니 엄마 다 읽고 주라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 글 쓰고 싶으면 김서방이 가지고 있는 노트북을 빌려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 나야 좋지. 했더니 전화기로 쓰는 것 하고는 다른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해보면 되겠지라고 답하고 돌아온 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음악 들을 때만 쓰던 아이패드를 놓고 계정 어쩌고를 한 시간 넘게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은 브런치에 입성했다. 자판도 휴대폰과 사용법이 다르고 여러 가지가 어색하지만 공책에 써서 옮기던 지난날의 에너지 대신 한 땀 한 땀 써 내려가는 재미를 느껴 보기로 했다.
독수리 타법으로 직접 글을 쓰다 보면 진도가 잘 안 나간다. 한참 쓴 것 같은데 겨우 한 줄 밖에 못 가고 더딘 감이 있지만 그간에 공책에 쓰고 다시 옮겨 발행하던 힘은 이제 떨어졌던가 보다. 그래서 한동안 글쓰기와 친할 수 없었던가 싶다. 연이틀간에 쏟아붓던 비는 아랫지방으로 내려가고 우리 집엔 어항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만 소란스럽다.
딸하고 같이 한 도서관 나들이가 나의 본색을 찾아내는 계기가 되다니 세상살이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투정: 한참을 써내려 왔지만 몇 줄도 되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