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님에게 단 한 가지 소원만 빌 수 있다면
<여름에는 기억을 먹고>
마음이 산산이 조각나는 이유를 몰라요. 흩어진 생각을 잠재우는 법도 몰라요. 어긋난 표정을 쉬이 넘기는 요령도 몰라요.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정신 없이 울고 일어난 다음날은 두통에 시달려요. 너무 멀리 온 걸까 걱정이 되기 시작해요. 나로부터 한없이 멀어지고 싶은 날이 있어요.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는 법을 잊어 버렸어요. 너무 많은 자아들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해요. 적은 언제나 나예요.
무턱대고 유일한 진리를 생각해요. 세계가 단 하나의 질문으로 구성될 수 있다면. 삶은 어디까지나 연습일 뿐이에요. 뒤로 돌릴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죠. 과거에 발이 묶인다면 발목에 상처만 남을 뿐이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고리는 무엇인가요, 만약 있다면 몇몇 고리는 끊어버리고 싶은데. 나를 이토록 주저하게 하는 존재의 얼굴들을 언제까지 들여다봐야 할까요? 왜 그런 얼굴들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가요?
세상이 무너져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묵직한 공기를 마시며 가능한 빨리 걷고 있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속도보다 빨리 걸을 수는 없을 텐데요. 종말과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사소해질까요.
사실 죽음은 우리를 무력하게 하지 않아요. 오히려 죽음은 우리를 살게 하죠. 죽음이 있어야 비로소 삶을 감각할 수 있으니까요. 죽음을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 오히려 생기로운 모순을 지켜보곤 해요.
그러니 만약 한 가지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너머를 보는 눈을 주세요. 발목의 상처가 아물 무렵엔 기록을 재지 않고도 연습을 이어갈 수 있게. 내가 연습 중인 것도 까먹을 수 있도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