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은 홀로 오는 법이 없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속이 후련했냐!', 김래원의 사자후짤마냥 불운은 적당히를 모른다. 소설은 늙지도 젊지도 않은 오십 세의 여성 명주와 스물 여섯 청년 준성의 불운을 다룬다. 그것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우리 역시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 작품의 몰입도를 확 높인다.
가장 좋았던 것은 주인공들이 그 불운을 다루는 방식이다. 포기도 감내도 아닌 그들만의 낙원을 만들어 떠나는 엔딩에 그들이 진정 행복하길, 응원을 보낼 뿐이다. 담담하고 단순한 문체로 비윤리조차 삶을 살아내 가는 계단 하나로 삼았다. 이른바 각자도생의 시대에 그들의 비윤리적 선택을 비난하기는커녕 옹호하다 못해 응원하게까지 만드는 작가의 능수능란함이 매우 인상적이다. 마치 인디영화를 한 편 본 듯한 느낌. 올해 읽은 책 중에 베스트에 꼽을 수 있을 듯!
"저녁으로 소시지부침과 막걸리 한 잔을 드려서일까,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텔레비젼 앞에서 일기예보를 보며 운전 조심하란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그래서인지 비록 눈길이긴 해도, 지금 가는 곳이 얼마나 멀고 낯설든, 분명 그곳에서도 복귀 콜을 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터무니없는 믿음이 마음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하얀 눈이 온 세상을 축복하듯 차창 위로 소복소복 내려 쌓이고 있었다. 준성은 얼굴 가득 옅게 퍼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만 들리도록 가만히 속삭였다.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