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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

그런 사람이 있는가.

by 김로기

누군가 내게 정말 친한 사람의 기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흔히 아이스브레이킹이라는 것에 대해

만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행위에 노련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애쓰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나는 서로 간의 침묵을

극도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침묵이 당연한 첫 만남에서도

그것은 나를 너무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내게 침묵이 이어지는 자리는

매우 불편하고도 힘든 자리이다.

그 자리가 나의 가족과 함께하는 자리라고 할지언정

가끔은 그런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 불편한 침묵 속에서는 맛있는 밥을 먹어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

밥보다도 그 침묵을 깨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은 어김없이 소화제가 뒤따른다.

이렇게 나는 침묵에 대해 대단히 예민하고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나의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면

침묵이 예상되는 자리는 피하게 된다.

그런 내게 친한 사람의 기준이 뭐냐고 물었을 때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과의 만남에서는

나의 미숙한 아이스브레이킹 따위는 필요가 없다.

굳이 그 행위로 침묵을 깨지 않더라도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있는가.

생각해 본다.

다행인 것은.

많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이 두어 명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지내온 시간이 길다거나

만남이 잦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누군가가 나와 함께일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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