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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Dec 23. 2020

그들은 이혼 법정에 아이를 두고 떠났다

12월의 어느 요일 오후.

세상은 얼어붙었고, 메마른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코로나로 위축된 세상살이.

추위에 움츠리고 송사(訟事)에 얽매인 표정의 사람들.

법원 민원실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 혼자 법원에 왔을 리는 없을 테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잠시 동안 보호자인 부모를 잃어버린 걸까. 누군가 아이를 애타게 찾는다는 구내방송도 없었다.

한참 동안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무슨 서러운 일이 있었는지...



아이가 법원에 들어올 때는 부모 중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왔을 것이다. 누구였을까...


기나긴 갈등 끝에 협의이혼 법정에 온 부부. 부부는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앞두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사랑의 결실이든 열매이든 간에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아이의 삶에 대해서도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아니더라도, 불안과 짜증이라는 감정 사이에서 아이의 대한 관심은 거추장스러운 일이었을까.


결혼은 설렘을 안고 시작하지만 이혼은 불안을 안고 시작된다. 아무리 살갑게 살았던 부부일지라도 이혼 법정에서는 냉혹한 킬러의 시선을 갖는다. 냉정한 눈길은 자신들의 연애시절과 결혼생활의 상당부를 난도질하며 후회와 비난과 불평의 장으로 끌어낸다. 자신의 불평과 상대방의 더 큰 치부를 드러내며 가능한 한 큰 상처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혼 재판정이다.


남녀의 만남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지만 결혼 후 헤어짐은 국가의 적극적인 관여를 받는다. 제도가 정당한지 여부를 떠나서 타인들 앞에서 자신들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심난한 과정 끝에 부부는 법적인 종지부를 찍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홀로 남겨진다. 부모에 의한, 부모로 인한 상처를 안고.


아이의 울음은 부부의 씁쓸한 이별의 상징이자 결과물이었다. 부모의 이혼이 가져온 아이의 현실은 더 비극적인 상황을 앞두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아이의 울음소리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부모 아닌 다른 어른들의 도움이 도착할 때까지...




아이의 울음을 듣고 달려온 직원들은 아이가 홀로 남겨졌다는 것을 알았다. 협의이혼신청서에 기록된 부모의 전화번호로 여러 번 연락을 시도했지만 모조리 불통이었다. 부모인 두 사람 모두가 아이를 버려두고 갔다는 걸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처한 상황이다. 우는 아이를 사탕 몇 개로 달랠 수는 없었다.


법원은 이혼을 조정하거나 상호 의사를 확인하는 기관이지 이혼에 수반되는 제반 절차를 집행하거나 책임지는 기관은 아니다. 특히 이혼 부부의 감정적인 후폭풍에 대해서는 더더욱 아무런 준비도 절차도 없었다. 대략난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던 신조어다.


결혼과 이혼은 오롯이 개인의 선택 문제다. 양자 모두 선택의 자유에 따른 무한책임이 따른다. 결혼에는 서로에 대한 법적이면서 상식적인 권리와 의무가 있다. 결혼은 두 사람이 그려나가는 사랑의 하모니와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까지 해결해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문제해결능력이 난관에 봉착하거나 갈등의 조절에 실패했을 때 종착점은 이혼을 향하기도 한다.


결혼과 이혼 과정에서 개인 간 선택의 자유 중 유일한 예외는 아이들의 양육문제다. 두 사람이 회피할 수도 회피해서도 안 되는 지상명령이자 무한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난 이유는 철없는 영혼을 가진 부모 때문이다. 아이를 두고 떠난 부부가 과연 양육비에 대한 협의나 조정을 제대로 했을지... 설사 서로 동의하였더라도 제대로 이행이 될지 의문이다.


자신들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자유지만 남겨진 아이의 삶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인데. 무책임한 부부가 가져온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감정적인 행동이 아쉽기만 했다. 어린아이가 가진 상처는 누가 보듬어줄까. 가슴 한쪽에 찬바람이 불었다.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서는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길 잃은 아동을 일시 보호하거나 보호 방법을 결정한다.


결국 아이는 민원을 처리하는 직원의 대처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아동복지센터의 직원에게 인도되었다. 멍해진 아이는 울음을 그쳤지만. 그것은 아마도 더 이상 울 힘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아니면 부모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착잡하고 심난한 생각들이 흘러갔다. 민원실에서 더 이상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직한 한숨소리가 가득해졌다. 창밖에는 마지막 잎새들이 애처롭게 날리고 있었다.


세상살이 중에서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가장 서러운 일이다. 누군가의 삶에 혹독한 겨울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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