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지하철은 늘 사람이 많다. 그런데 오늘따라 노약자 한 자리 주변으로 사람이 없다. 넓게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한 나는 잽싸게 빈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아뿔사!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앞을 봤더니 한 노숙자가 노약자석 하나 전체를 차지하고 자고 있는 중이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따뜻한 지하철에서 잠시 몸을 뉘고 싶었던 듯 하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꾀죄죄한 얼굴을 보니 50대처럼 보였다. 씻지 못한 몰골로 덜덜 떨면서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회사 근처 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30분 정도를 가야 한다. 30분 동안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그 사람의 악취도 생각보다 참을 수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도 분명히 다시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과 행복한 일상을 지내다가 어떤 연유로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예전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 한 명을 인터뷰한 기억이 있다. 그의 대답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노숙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대부분이 사업 실패였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잘못된 투자와 도박이었다. 결국 기승전 돈으로 귀결된다.
지하철의 따뜻한 온기를 오랜만에 느꼈는지 그는 단잠을 자는 듯 했다. 씻지 못한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보였다. 그 미소가 희망의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다. 건대입구역에 도착했다. 갑자기 역무원 2명이 들어와서 그를 깨우더니 끌어냈다.
“아저씨, 이런 곳에서 주무시면 안되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따뜻해서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승객분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저씨! 빨리 내리세요!”
역무원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그는 죄인 마냥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역무원에게 말했다.
“이 사람도 누군가의 아빠이자 남편입니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시면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승객님! 다만 이 사람도 무임승차를 해서 조사가 필요합니다.”
“아! 냄새나. 아저씨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에요? 역무원님. 빨리 끌어내 주세요.”
스마트폰을 보던 한 여자가 소리친다.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출발했다. 그 노숙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에게 다시 희망을 선물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희망이라는 두 글자는 노숙자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 숙제가 아니었을까?
‘희망의 원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빵이 아닌 희망을 먹고 산다.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삶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노숙자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삶도 버려졌다. 당장 배고픔에 무엇이라도 먹겠지만, 그가 다시 살기 위해서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지하철 문이 열린다. 나도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이다. 신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희망이라는 선물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희망 #희망이라는선물 #사랑 #글쓰기 #인생 #삶 #라이팅 #인문학 #마흔의인문학 #자기계발 #에세이 #단상 #황상열 #황상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