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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끊어야 할 때와 이어가야 할 때

by 황상열

물컵에 금이 갔다는 걸, 우리는 종종 물이 새고 난 뒤에야 알게 됩니다. 관계도 그렇습니다. 언제 금이 갔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문득 마음이 뚝 끊겨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뭔가 잘 통해 친해져서 자주 연락하던 사람인데, 이제는 메시지를 써놓고도 보내지 못합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화면을 꺼버립니다. 그 사이엔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있고, 반복된 오해가 있으며, 함께 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멀어진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를 끊는 건, 절대 쉽게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한 번 맺은 인연은, 그 사람의 마음과 시간을 빌려 쌓아온 삶의 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기 전에 ‘그 사람과의 인연이 다했는지 스스로 묻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해하려 했는가? 표현하고 용서했는가? 그리고 그 관계가 나를 더 나아지게 하는가, 아니면 나를 계속 작아지게 하는가?


만약 그 모든 질문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면, 그때는 조용히 놓아줄 시간입니다. 관계를 끊어야 할 때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관계 속의 나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입니다. 무조건 참게 되거나, 자신의 마음을 숨기게 되거나, 늘 상처받는 쪽이 나일 때 그땐 잠시 멀어지는 것이 두 사람 모두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시절 온라인에서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그 시절 특히 친하게 지냈던 몇 명의 지인이 있었습니다. 앞에서는 친하게 지내면서 뒤에서는 자신이 필요한 것만 가져가려고 하고, 뒷통수를 맞고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 관계는 나를 계속 작아지게 만들고 불편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바로 관계를 모두 끊었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제 시선을 탓해야겠지요.


반대로, 이어가야 할 관계는 어긋남 속에서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을 때입니다. 한두 번의 말실수보다, 오랜 시간 쌓아온 믿음이 더 크다면 그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가끔은 관계가 깨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랜 시간 서로를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말 한마디, 사소한 관심, 진심 어린 사과로도 되살아나는 인연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사람 앞에서 어떤 나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내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땐 용기 내어 떠나고, 다시 이어가고 싶을 땐 자존심을 내려놓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인연은 잘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놓아주는 일도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24일 오후 10_53_53.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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