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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Apr 06. 2018

사월, 목마른 사월 하늘

수줍게, 조용하게, 드러나지 않게

사월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인과 촌장의 '진달래'를 꺼내기 위해서.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게 숙제였다.


'벚꽃 엔딩'이 인기 검색어에 오르면 봄이 왔음을 알게 되는 시절이다. 확실히 그 노래는 벚꽃이 봄의 주류로 부상하는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전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철없는 소리를 외쳤던 유지태 주연의 영화도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서울의 봄은 벚꽃으로 덮였다. 좀 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한 때는 뚝방길이 노란색 개나리로 덮이면 봄이구나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로 올라가니 가까스로 동산에 올라서 분홍색 진달래 꽃을 따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지막한 동산이 울긋불긋 분홍색으로 물들면, 그때가 봄이었다. 벚꽃으로 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후에 또 어떤 봄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사월 목마른 사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하덕규, '진달래')


노랫말처럼 '진달래'가 내 가슴속에 스민 때문일까... 진달래는 왠지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것을 건드린다. '조용히 있어야 돼', '튀려고 들지 마', '나서지 마'와 같은.... 태도. 교육의 과정을 통해서 혹은 강요에 의해서... 그러다 보니, 늘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있어야 했고, 사람들이 어떻게 하자고 했으면 그저 조용히 따라가야만 하는 줄로 알았다. '자기소개'라는 것을 처음 만져 보는 것처럼 생소하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한편으로는 수줍은 일이었다.


이래 가지고는 사회에서 살아 남기 힘들잖아! 그래서 그런 나를 부정하고, 조금은 적극적으로 어떨 때는 필사적으로 다름 사람들에게 '나'를 각인시키기 위해 발버둥 쳤다.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 확실히 달랐다. 잘난 척을 하고, 기회만 되면 능력을 보여주고.. 그러면 뭔가 되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빨리 저버렸다.


돌고 돌아서 이제 겨우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조용히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제는 내가 다시 아이들에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조용히 있으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고, 나처럼 먼 길을 돌아갈 것이다. 이건 전달의 문제도, 소통의 문제도 아니다. 너무 빨리 깨달아도, 너무 늦게 깨달아도 안되는 그런 자연의 법칙일 것이다.


그저 지금의 내 자리에서, 먼 여행을 갔다 돌아온 그 기분으로 다시 생각해 본다. 스며든다는 것.... 물들다는 것... 다시 핀다는  것... 내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만 버리면, 세상은 아름답게 늘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봄까지는 모르겠고... 사월은 역시 '진달래'의 달이다.


*며칠을 진달래 생각을 하다가 어제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백과사전 같은 것을 찾아보다가 진달래의 꽃말을 보게 되었는데, 그게 너무나 기이한 것이어서 잊히지 않는다. 물론 그 정확한 말은 기억 못 한다. 다만 그 기이한 느낌은 도저히 떨쳐지지가 않는다. 가령 이런 식이다.
진달래 꽃말 - 청년의 고백이 날아가다 길가의 돌멩이에 부딪혀 바스러질 때, 어느 소녀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빛을 느끼게 되는 떨림. (실제 꿈에서는 이보다는 훨씬 난해하고 글자 수는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았던 것 같다. 외워보려고 진땀 흘리며 노력하는 중에 잠에서 깼다.)


시인과 촌장 2집 앨범 뒷면(1986)

진달래 (by 시인과 촌장): 4분 36초

작사/작곡: 하덕규

1986년 발매된 2집의 4 번째 수록곡

앨범에 관해서는 이전에 '푸른 돛'소개할 때도 많이 했으니.... 생략한다.

시인과 촌장은 소설가 서영은의 대표 단편의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소설가 서영은 씨는 김동리의 세 번째 부인으로 유명했다. 서영은은 후에 김동리와의 일을 소설로 펴내기도 했다. '시인과 촌장'이란 단편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다른 예술도 그러하지만 하나의 콘텐츠를 파고들면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음악도 역시 그렇다. 음악 그 자체... 그러니까 소리에 대해서 논할 수 있고, 가사가 있는 경우는 그 가사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있고, 또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도 있고... 여기에 더해 밴드의 이름과 그 배경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 한 뮤지션의 이야기도 있고... 그를 둘러싼 사람 사회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 파다 보면 끝이 없다.

이 앨범을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비둘기 3부작만 따로 들었다. '비둘기 안녕'을 정점에 두고 시작했지만, 듣다 보면 점점 '비둘기에게'로 마음이 쏠린다. 그리고 '사랑일기'는 약간 별개?로 친다. 이 앨범에서 약간 성질이 다른 그런 노래다. 그래서 이 노래를 늘 따로 듣는다. '푸른 돛'과 '풍경' 역시 하나의 세트로 듣기 좋다. 여기에 3집의 '숲'과 이어 놓으면 이 역시 3부작 느낌이 난다. 음악의 형식 면에서는 '비둘기 안녕'과 비슷한 느낌이 '매'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얼음 무지개'와 '고양이'가 된다. 그렇다고 곡의 구성이 복잡하지는 않지만, 한 호흡, 한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진달래'는 실질적으로 이 앨범의 마지막이 되고, 3집의 예고라고 생각된다. 전체적인 곡의 순서는 이런 면을 배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종류의 음악을 연속으로 들으면 오히려 각각의 매력이 줄어들게 되니까 중간중간 섞어서 한 곡 한 곡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래서 앨범 전체를 그냥 처음부터 천천히 들어 나가면 가장 좋다. 이게 과거 앨범 시대의 장점이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앨범의 '최고의 곡'은 무엇일까? 세상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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