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타인에 대한 항체

당신에게 생긴 내성

by Romantic Eagle

편도가 붓고,

입 안에 뭔가가 낫다.

다래끼가 나고,

안 나던 여드름이 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아픈 감이

온몸을 동원에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대체 무슨 짓을 했냐고.”


안 아프던 데가 아픈 바람에

어디가 아픈 지 알 수가 없었다.

파악할 수 없는 아픔만큼

그 모호한 정도가 나를 미치게 한다.


낯설기로 결정된 특정 타인이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타액을 나누고,

접촉할 수 있는 면적을 넓혀가고,

극도의 질투와

담기도 어려운 좋은 감정이 동시에

멀쩡했던 뇌를 건드리고,

뇌는 그래 왔던, 그리하여 정보가 충분했던

“나”라는 일상적인 개체와

전례 없던 기분을 감당해야 하는 바람에

헛구역질 나는, 그러나 멈출 수 없는 감정을

도입하려는 내 안의 “객체”를

소화해내느라

소화제가 필요한 정도이다.




그 사람이 아프다.


대신 아플 수 있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배 부른 소리로 들린다.

내가 나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함부로 타인의 인생에

중요한 존재라도 된 듯한 발언을

일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랑?: 특정 타인에게 지나친 자아를 부과하겠다는 일반적인 발상에서 오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의 연장선..?


사랑을 제대로 정의하기에는 꽤 많은

전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신 아플 수도

대신 즐거울 수도 없는

그 철저한 타인이라는 팩트의 하위 팩트는

이미 내 뇌가 wired 해버린

그와의 세상이었다.



그를 위해 뭔가를 해 주겠다는 건,

그 사람의 엄마의 역할을 뺏겠다는 것이었고,

그를 대신해 아프겠다는 건,

내 부모의 안녕을 뺏겠다는 것이었고,

그가 죽으면 나도 죽겠다는 것은,

생명의 일반적인 권리를 침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 따져서

팩트를 나열해도

간과할 수 없는 팩트는 하나였다.


한 명의 타인에 대한 항체가 생기려고 해도

아픈 시간은 피할 수 없듯이,

아파야 할 시간을 들여야 한다면

지금 나라고 여기는 내가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된

당신이라는 것.



어제는 이미 현재를 반영하고

내일은 현재를 연명하는 자의 몫이었다.


특별히 내 특정 타인을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

많이 아프게 하지는 않고 싶은 선상에서

날 좋을 때,

덜 아파서 웃을 만할 때,

따뜻한 아이스커피를 두 잔 사서

한 잔을 오른손에 딱 쥐어 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


사랑한다는 말이

타인에게 덜 이기적으로 들릴 때.

사랑한다는 말은

말로서 그 가치를 다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