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과연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닐까. 어른에게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아이의 세계에서는 기억의 지층을 한 겹 두껍게 덮을 만큼 긴 시간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외할머니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을 때 아이의 몸은 조각상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그동안 왜 나를 보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이 아직 언어로 발화되지 못한 채 아이의 굳게 닫힌 입술과 바닥을 향한 시선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작은 몸짓으로 아이의 서운함과 불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외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내민 손은 허공에 머물렀다. 아이는 '가'라는 단호한 한 글자만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아빠의 다리 뒤에 자신의 작은 세계를 안전하고 견고한 성을 구축했다. 낯선 사람의 접근을 막고 상처받은 마음을 보호하려는 행동처럼 보였다. 그것은 배신감에 대한 가장 투명한 표현 방식이었고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알리는 유일한 신호였다. 아이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도 웅변적이었다.
하지만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은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열렸다. 외할머니가 내어준 숟가락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받아 물고 음식이 혀에 닿고 나서야 경계가 풀렸다. 얼어붙었던 표면에 따뜻한 햇살이 닿는 것처럼 꽁꽁 닫혔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밥을 밥아먹는 뺨 위로 옅은 혈색이 돌기 시작했고, 표정은 점차 원래의 천진난만함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는 온 집안을 작은 발로 뛰어다녔다. "하부, 하부" 온 집안을 울리는. 그리움과 서운함이 해소된 듯 맑고 청량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묵직했던 공기가 가벼워졌다.
아빠는 아이의 급격한 선회를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분노와 환희 사이를 오가는 아이의 순수한 감정선. 그 모습을 보던 아빠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한가지의 슬픈 상상이 떠올랐다.
만약, 아주 만약에. 이 아이가 다시 그분을 마주한다면. 그때도 지금과 같이, 투명한 분노와 짧은 망각의 시간이 흐를까. 아이의 작은 세상은 또다시 뒤흔들릴까. 아빠의 상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처음에는 아마 지금처럼 온몸으로 상대를 밀어낼 것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그러다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환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빠 얼굴을 돌아보지 않을까. 아빠가 고개를 끄덕여주고, 모든 의심의 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아이는 해맑은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달려갈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놓칠세라 달려드는 작은 몸.
아이를 품에 안은 그분의 모습. 따뜻하고도 위태로운 풍경. 아빠의 상상 속에서 그 장면은 너무나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공간 속에서 서로를 껴안은 두 사람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아빠는 머릿속에서 그 장면을 떠올리다가, 필름을 잘라내듯 의식적으로 머리에서 도려냈다. 더 재생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상상 속의 풍경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한참 초과하는 짐이었다.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에 상상 속의 행복조차 허락할 수 없었다. 아빠는 다시금 차가운 현실의 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