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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by 봄날


지난 주말에 알레르기 검사 결과를 보러 동네 상가에 있는 내과 병원을 다녀왔다. 같은 아파트 상가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오래 다니면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먹는 것을 몇 년을 지켜보던 아내가 그 내과 병원을 추천했다. 이 동네에서 명의로 소문났다며 지금 병원을 확장해서 페이 닥터도 몇 명씩 두고 할 정도로 유명하고 정말 이유가 있는 명의라고 무척 강추해오던 병원이었다. 하지만 늬집 남편처럼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을 믿는 꼰대끼가 발동해서 그런지 뭐 대단한 거라고 동네 병원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또 얘기를 꺼내길래 이번 여름에 곧 받으려고 하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과 함께 바로 그 내과 병원에 예약 상담을 하였다. 이럴 땐 경험적으로 현명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음을 직감하고 순순히 아내의 추천에 따라 그 병원에 갔다. 예상대로 번호표를 뽑고도 거의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되어 이름을 호명함과 동시에 번호표를 내고 그 의사 선생님께 첫 진료를 받게 되었다.


제천 청풍호

그 의사 선생님은 이런저런 질문과 함께 경과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과 함께 앞으로 함께 치료할 내용과 과정을 친절하고 자신감 있게 설명해 주었다. 일단 믿음이 갔다. 그리고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끼리는 눈빛만 봐도 서로 알아본다. 그분은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 사명감과 함께 보람과 즐거움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경험한 대학 병원이나 동네 병원의 사무적이고 의례적인 질문이나 멘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이제 치료를 시작한 이래로 때때로 오랫동안 속 썩이던 비염 증상이 거의 없어졌다. 몇 년간 약을 처방받아 먹고 좋아지면 또 미세먼지 등 일교차가 커지면 재발하곤 했는데 이번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 온다.


잘되는 곳엔 병원이든 가게나 식당이든 무엇인가 다른 그들만의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 가끔 TV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골목식당과 관련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응원이나 격려는 그렇다 치고, 미안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샐러리맨이 해도, 가게나 식당을 그렇게 엉터리로 대충 운영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어떤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해서 회사에 손실을 끼쳤을 때 상사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이 말이다.



“회사 일 아니고 당신 일 같아도 이렇게 해!!! 네 회사 같으면 이렇게 엉터리로 일 하냐고.”


여기서 말하는 네 회사란 너의 소유 같으면 또는 네가 주인이라면 이렇게 일하느냐는 것이다. 이 말 뜻에 포함된 함의는 네가 이 회사 주인이라면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더 치밀하게 목숨 걸고 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렇다. 그 식당이나 가게의 주인이라면 그 말 뜻대로 일하는 게 당연하고 그래야만 한다. 무언가 맛과 비법에서 프로의 향기가 있어야 한다.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못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 식당에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주인이 아닌 직장인들도 항상 주인 의식을 갖고, 즉 주인을 의식하며 치열하게 일한다. 그런데 하물며 전문 병원도 그러할진대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나 식당이라면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그 맛을 연구하며 개발하고, 또한 부족한 점을 개선하고 고객을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이 기본일 것인데, 생업을 엉터리로 대하고 심지어 식재료의 원산지, 유효기간 등 고객을 속이기까지 한다면 망하는 게 맞다. 비록 내 것도 아니지만 몸담고 있는 회사를 위해 우리 직장인들도 그렇게 엉터리로 대충 일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어떤 프로젝트나 일에서는 목숨을 걸고 일한다.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 그것이 곧 회사를 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가격에 비해 형편없이 맛없는 음식을 먹었을 때 아마도 무척 화가 나는 경험은 모두 한 두 번씩은 있을 듯하다. 나라에서도 소규모 사업장이나 소규모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여러 정책을 만들고 지원을 하고 노력한다 해도 결국엔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 뿐인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숭고한 일에서는 대충대충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TMI, 지금은 정보가 넘쳐난다. 조금만 노력하면 얻고자 하는 정보를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도 있고 또한 그 맛집을 찾아 수백 번을 가보고 그 비결을 연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선 해야 할 일이다. 몰라서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치열한 노력을 하지 않을 뿐.


모르면 대충 하지 말고 돈을 지불하고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이 먼저다. 오히려 그 비용이 실패하거나 망하는 매몰비용에 비하면 훨씬 효율적이고 싸게 먹힌다. 기업들도 큰 프로젝트를 할 때는 컨설팅을 몇억, 몇십억을 주고서라도 받아 보고 검증하고 또 검증한다. 그렇게 해도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나 신규 사업이 성공하는 것은 겨우 10% 정도일 뿐이다. 사업이 잘되는 이유도, 잘 안 되는 이유도 백가지의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진인사 대천명,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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