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2.0

정체성은 누구나 다 있어, 살을 좀 더 붙여보면 근사해질 거야

by KayYu

나이는 이미 4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벌써', '이제'가 아닌 '이미'라는 단어에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있는 게 느껴지시나요? 누군가 나이에 비해 동안형이라며 서너 살 빼주면 기분 좋아서 금세 헤벌레 들떠버리는 순진함이 있지만 그렇다고 흰머리 하나둘씩 올라오는 아재가 어디 가겠나? 그나마 겸손과 신중 모드로 눈치껏 꼰대의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거라 믿고 있을 뿐이다.


누가 더 불쌍한지 배틀을 신청합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동료들과 술자리에서의 세상 이야기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경로를 거쳐 왔느냐에 관계없이 비슷한 관심사로 수렴되는 것 같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사업이든 돈 걱정 없이 경제적으로 자유를 얻고 싶다는 바람, 누구 아이가 더 말을 안 듣는지는 도토리 키재기이고 부질없지만 아이를 반듯하게 잘 키우고 싶다는 바람, 힘들고 고민스러우면서 끝이 없는 회사 일들에 지치지 않으려는 바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인생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바람, 바람, 바람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는 것만 얘기하고 불평불만의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가 뭐 하나 이뤄낸 게 없는 것 같다는 하소연처럼 들리기도 한다.


강점보다 약점이 도드라져 보이고, 해낸 것보다 못한 것에 안쓰러운 마음이 가니 그게 바로 사람이니까. 극한의 긍정 마인드 발휘해서 기어 들어갈 집이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고, 지금 술 값을 낼 용돈쯤은 주머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술안주와 어울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나이는 술자리에서의 주제로 '나도 힘들어, 너도 힘들어, 우리 다 힘들어'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누가 더 불쌍한지 배틀을 하며 서로 위로와 응원으로 다독여야 술맛이 살아날 테니까.


그런데 진짜 불쌍해지지 않으려면 술자리가 끝난 후에도 마음의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고 내가 기댈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본질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건 본능적이다. 술과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 마음속에는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느끼기 시작한 시점과 지금까지 어설프게 '그냥 하는 것'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내 것으로 만든 것' 하나를 찾겠다는 생각이 거의 비슷한 시점에 일어났다. 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지만 그 사람만의 와우 포인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진짜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너는 커서 뭐 될래?'를 거울 보며 묻곤 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내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그 가치에 더 분발하게 된다.


나의 그림자는 무엇일까?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뒤에는 자신의 그림자가 붙는다. 그림자는 다양한 은유로 사용한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다는 양면성이 대표적이겠지만 페터 슐레밀은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매우 인상적인 해석을 하였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렇다. 어떤 파티에 참석하여 우연히 만난 신비한 사람에게서 제안을 하나 받는다. 금화가 마구 쏟아지는 마술 주머니와 그림자를 바꾸자는 것이다.


슐레밀은 그 사람의 제안을 덥석 물고 그림자를 팔아넘겨버린다. 마술 주머니 덕분에 어마어마한 부를 손에 쥐었지만 그동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그림자가 없어져버리니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림자도 없는 기괴한 괴물'이라며 그를 멀리하게 된다. 결국 슐레밀은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어두운 곳이나 밤으로만 돌아다니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소설 말미에 그림자를 되돌려주는 대가로 죽은 후 영혼을 넘기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결국 거부하고 그림자 없으면 없는 채로 떠도는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어두운 면이라고 묘사되는 슐레밀의 그림자가 사실은 나의 본성이고 나를 존재하게 하면서 나를 설명해 주는 철학과 신념, 취향, 열정, 의지, 재능 등 눈에 직접 보이지 않지만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필수적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필수적인 것이면서도 그림자에 맞고 틀림은 없듯이 그림자는 그 사람의 생김새 그대로를 반영해 준다. 그림자는 태양을 나무라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존재를 받치고 있을 뿐이다.


나의 그림자 찾기를 우리는 세련된 말로 정체성 찾기라고 불러도 될까? 정체성은 정해진 답도 없기도 하거니와 그 깊이와 크기도 알 수 없는데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지라 건드리기 부담스러운 녀석이다. 그렇게 모호함에도 그 의미가 주는 힘은 막강하게 나의 삶과 생각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은 누구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혈연관계로 보면 누구의 아들 혹은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되고, 직업으로 대답한다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 흔한 답변이다. 면접 인터뷰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재능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두 타인과의 관계와 비교에서만 성립하는 질문이긴 하나 행여 무인도에 홀로 갇혀 있다 하여 정체성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무인도에 있어도 그림자는 생기기에 나를 찾고 가꾸는 작업은 언제든, 어디서든 계속되어야 한다. 그건 가치 있는 행동이니까. 그리고 그 답은 평생을 걸쳐서, 때로는 평생을 넘어서 후대까지 이어지니까.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신을 찾고자 하는 니체의 격언이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여하튼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는 끊임없는 탐구 과정이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지금까지의 정체성 위에 새롭게 덧씌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 40대 중반에 이르러 내 인생에 무언가를 새롭게 추가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몰입해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 뭐에 빠져 있는 사람이야' 그게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고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니 이미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마음속 깊이 간직해 왔던 예술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음악에 대한 탐구를 버무린 피아노라면 충분히 몰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피아노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걸 남겨두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몰입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빠져들어 있다. 그래서 40대 아재는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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