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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Oct 10. 2022

숨만 쉬어도 못생겨지는 자신과의 결투

결못남은 공격받는 일이 많아서

  어느 날 미용실 원장이 나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일종의 선고를 내렸다. 

  최근에 머리카락이 얇아졌어요. 

  머리카락이 어째서인지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얇아지면 안 좋은 건가? 좋은 거면 이렇게 말하진 않았겠지. 잠시의 어색한 침묵.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의미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정확히 확인해야만 한다. 

  그게 무슨 의미죠? 내가 물었다.

  얇아지고 힘없어지고, 이게 심해지면 탈모가 되는 거죠. 원장은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아뿔싸…… 존재를 잊고 지냈던 격세 유전의 형벌이 나에게도 현현한 것인가?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2년 전에 건강검진 받을 때 재미 삼아 했던 탈모 유전자 검사에서는 그렇게까지 걱정할 건 없다고 했거늘. 하지만 짧은 부정 끝에 나의 두피와 모발의 융성부터 쇠락까지 10년 넘게 지켜본 그녀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스크 위로 절박한 눈빛을 거울에 던지며 대처법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관리를 잘하셔야겠어요. 두피에 유분기 없게 하시고, 자극 주는 제품은 쓰지 말고, 머리카락에 좋은 거 찾아 먹어야죠. 미용실 원장의 대답은 더 자세한 건 병원에서 물어보라는 느낌이다.


  그간 내 머리에 했던 행위들을 빠르게 돌이켜본다. 꾸준히 반복해온 파마도 내 머리 생태계에는 엄청난 공격이었겠지. 실제로 이것은 검은색 직모였던 것을 갈색에 약간의 곱슬머리로 바꿔 버리기까지 했으니까. 그리고 아침마다 멋부린다고 드라이기와 브러쉬와 포마드와 스프레이까지 물리적 화학적 공격을 가했던 행위들. 어째서 그랬을까? 내 머리카락은 무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화가 난다. 그딴 유전자 검사 결과 쪼가리 따위 믿지 않는 건데. 이제 파마도 안 하고 드라이도 안 해야지! 이런 분노는 미용실 원장에게 돌아가고야 만다. 아니 10년 동안 내가 머리 지지고 볶고 하는 동안 이런 경고를 좀 해줬으면 좋았잖아? 


  생각이 빠르게 흐르는 이 와중에 ‘살면서 저지른 가장 개념 없는 행동’ 1위가 머릿속 한쪽에서 새롭게 경신되었다. 탈모 유전자 검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친한 대머리 선배에게 대신 좀 봐 달라고 은밀히 따로 불러 건넨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렇게 잠깐만 상상해도 두려운데 그 선배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친하지 않았으면 분명 죽통 한 대는 맞았을 거다. 반성했다. 내 업보가 크구나. 나도 어쩌면 당신의 대열에 합류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때 당신의 해석이 틀린 것 같다고, 오랜만에 메시지라도 보내야 할까.


  착잡한 심정으로 집에 와서 검사 결과지를 찾아 다시 읽어보았다. 남성/여성형 탈모 ‘관심’, 원형 탈모 ‘관심’, 모발 굵기 ‘양호’. 

  아니…… 가장 자신 있는 모발 굵기가 무너졌다면 다 털린 거 아닌가…? 하…하…하


  며칠 뒤 검사 결과지를 갖고, 마찬가지로 10년은 족히 다닌 피부과에 방문했다. 보세요 원장님 제가 탈모인가요? 요즘 머리카락이 찰랑찰랑 부드러워졌는데 알고 보니 머리카락이 가늘어진 거래요. 서울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피부과 전문의 원장님께 거의 울먹이듯 질문했다. 당신은 이렇게 피부도 좋고 머리도 좋고 외모도 괜찮고 너무 부러운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음…… 결국 인생은 유전자인 거죠? 그런 거죠? 나는 매번 이렇게 생각한다. 


  아뇨. 검사 결과를 보면 엄청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요. 이마의 M자 탈모의 진행을 조심해야 하는 건데. 이건 사실 예전 이마하고 비교하는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원장은 말했다.


  잠시 계셔보세요 원장님! 나는 이마를 까고 찍은 예전 사진을 스마트폰에 띄워 순식간에 대령한다.

  이 정도면 괜찮아 보이는데요? 그래도 걱정되시면 탈모약 처방은 해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필요 없을 것 같네요. 평소에 관리를 잘해보세요. 피부과 원장은 안심하라는 듯 나를 달랬다.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확실히 나의 신체 매력은 계속하여 떨어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피부과를 다니고 운동도 하고 꾸미기도 하고 다방면 노력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신체의 노화로 인해 점진적으로 우하향하는 나의 매력지수를 붙들 수 없다. 똑같은 양을 먹어도 이제는 기초대사량이 줄어서 뱃살이 나온다. 흰머리가 난다. 피부 탄력이 없어진다. 어째선지 눈곱도 자주 생긴다. 숨만 쉬었는데 못생겨진다.


  심지어 얼마 전에 우리 엄마는 나한테 이런 말까지 했다. 

  네 방에서 홀아비 냄새나니깐 자고 일어나면 창문부터 열어서 환기시켜라 꼭!


  당혹스러운데 실제로 말 그대로였다. 듣고 나니 퀴퀴한 냄새가 확실히 느껴지는 거다. 나는 후각에 예민한 편이지만 스스로의 체취는 잘 못 느꼈던 걸까? 아…… 끔찍하다! 남자가 혼자 나이 먹으면 이렇게 되는 건가? 나는 매일 깨끗이 씻는 사람인데.


  부랴부랴 주문한 비오틴과 콜라겐의 혼합물을 삼키며 생각한다.

  이제 나에게 당면한 지상과제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의 노화’와 ‘결혼 가능한 매력’ 사이의 대결이나 다름없는 거지. 노화가 더욱 심화하기 전에 승부 봐야 하는 일이다. 여기서 혹시 탈모라도 오게 되면 결혼은 진짜로 불가능 레벨 확정이다. 동안의 외모라는 것이 그나마 장점인데 이것마저 잃으면 방법이 없다.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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