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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Oct 03. 2023

나는 회사에서 결혼 알림을 클릭하지 않는다.

결못남은 분노 조절이 안 돼서

  결혼식장에 가본 지 오래되었다. 내 친구들은 전부 결혼해서 더는 결혼 소식이 없다. 결혼하지 않은 친척들이 있지만, 그네들 역시 결혼하지 않을 것 같다. 가끔 들려오는 결혼 소식은 어김없이 회사 동료의 결혼이다. 하지만 나는 사내게시판의 결혼 알림을 눌러보지 않는다. 꼬박꼬박 읽으며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결혼하는지 관음하고 동료들과 품평회를 열던 시절도 있었다. 잘은 알지 못하는 회사 동료의 결혼을 축하하는 댓글을 남겨본 적도 더러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결혼이 급하지 않았고, 원한다면 언제든 결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는 결혼이란 개념이 언젠가 자연히 달성되는 무엇으로 나이브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 동료의 결혼 알림조차 눌러보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이 게시물을 클릭하지 않아도 내가 동료 관계를 파탄 낼 일은 없다. 서로 축하를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라면 당연히 내게 청첩장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전달받지 못한 청첩장의 결혼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셈이다. 전달받았다고 해도 굳이 인터넷 게시물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진정한 축하는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대면으로 하는 것이니까, 비대면 사이버 공간에서 3초짜리 텍스트를 남기는 것보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런 뒤틀린 심성의 노총각이 댓글을 좋게 남겨 봤자 진심으로 전해질 리도 없는 거다. 아무리 결과적으로 선행을 했을지라도 그 의도가 불순하다면 악행이라고 <The Good Place>에 나오더라. 그래도 죽어서는 좋은 곳에 가야 하는데 어쩌지.


  사회초년생 시절의, 그러니까 한참 예전의 어떤 결혼식을 떠올려 본다. 언젠가 나는 회사 친구들의 만남을 주선하여 결혼까지 성사시킨 경험이 있다. 결혼식 당일 그네들의 부모들께서 식장에서 허리를 깊게 숙이며 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내가 그렇게 큰일을 한 것인가. 세월이 흘러 그것이 큰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자각 없이 어떤 위업을 달성했던 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접할 때가 많다. 결혼 주선자에게 축의금을 얼마 받아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글이 있었다. 무려 돈을 받을 생각을 한다니, 이런 사람은 결혼을 수월히 달성했기 때문에 현 상황에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 아닐까. 사람은 쉽게 얻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습성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식장에 입장했다면 감히 이런 발상은 하지 못할 테지. 절대자의 개입으로 모두가 고난의 순례를 거쳐 결혼하게 된다면, 작금의 이혼율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어쨌거나 다시, 이놈의 결혼 소식 알림 팝업창이 뜬 것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이것을 누르면 행복 가득한 이들의 면면을 반드시 보게 되겠지. 그래 이건 행복 자랑 예고장이다. 우리는 결혼하지 않는 시대에도 결혼하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하는 무조건 자랑 글을 나는 보고 싶지 않다. 게다가 결혼 알림이란 것은 으레 당사자가 직접 작성하는 것이 아니기에, 작성을 부탁받은 이는 성화 봉송 주자라도 된 것인 양 비장한 각오와 기세로 눈부시게 오두방정으로 글을 써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당신들의 자랑 알림을 무시하는 것에 혹여나 상처받지 않으시길, 어차피 결혼해서 행복 에너지 충만하시잖아요. 나 따위가 지금 누구를 축하할 처지가 아닙니다. 사막의 순례자가 타지마할의 주인을 신경 쓸 여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와이 앞바다와 같이 넓은 당신들의 행복감에 지랄맞은 저의 눈물 한 방울은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니.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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