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주선 약속을 결국은 지키지 않은 괘씸한 당신에게
결못남은 분노 조절이 안 돼서
이 마당에 인사치레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귀하를 고소하려 합니다.
귀하는 저에게 소개팅의 주선을 약속했지만 결국은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 문서는 그에 관한 사실을 정리했으며 내용 증명으로 발송합니다. 저는 법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당연히 고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변호사 자문까지 구할 생각이 있습니다. 우선은 스스로 알아보고 준비했습니다. 귀하도 아시다시피 저는 결혼하지 않아서 개인 시간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채무불이행을 지적하겠습니다. 귀하와 저는 소개팅 알선에 관한 구두 계약을 체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개팅의 대가로써 제가 지불한 것이 없기에 계약이 성립하지 않음을, 귀하는 주장하고 싶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틀린 생각입니다. 저는 대가로 지불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귀하께 소개팅 주선을 빌미로써 상호 관계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양보해 드렸습니다. 귀하는 알량한 우쭐거림을 마음껏 행사했습니다. 자신의 인맥과 사회생활력을 공개적으로 자랑할 권리를 드렸습니다. 제가 지불한 사회적 대가를 귀하는 이미 즐겁게 사용했으며, 따라서 명백히 채무가 발생했다고 보겠습니다.
모욕적인 것은, 이 소개팅을 제가 먼저 구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귀하가 저에게 먼저 소개팅을 제안했고, 저의 실책은 순진하게도 그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귀하가 보유한 인맥 목록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며 저에게 소개팅 실행 의사를 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마치 유기소의 슬픈 개가 새로운 주인이라도 만난 것마냥 반응했습니다. 애써 외롭지 않은 척 사회생활 하며 평판을 유지하던 저의 내면이 사실은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으며, 귀하는 자신이 소개팅을 제공하기로 했다며 회사 동료들에게 동네방네 떠벌렸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까지 검토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어떤 법률을 적용할 수 있을지 살펴봅시다. 기망행위에 의한 사기죄, 또는 기분 상해죄… 라는 건 없군요… 아니… 적당한 것을 찾았습니다. 역시 인터넷에는 없는 게 없습니다. 바로 구조불이행에 따른 부작위 책임입니다. 이게 당최 무슨 말이냐고요? 삼십 대의 어느 지점을 지나게 되면 소개팅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사라집니다. 노총각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며 바닷물이라도 마셔야 하는지 착란이 오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귀하는 저의 충실한 지인으로서 소개팅 주선이라는 구조행위의 책임이 분명히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악질적인 점은, 귀하는 사람을 구조해 주는 척하다가 다시 바닷물로 밀어 넣었다는 점입니다. 선심 써서 구해주는 척, 소개팅 제안을 하며 구명보트 위로 끌어 올리더니 빛을 보기도 잠시, 숨을 고르기도 잠시, 저를 다시 바닷물로 밀어 넣었습니다. 가중 처벌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는 독촉하지 않았기에 소개팅 의사가 없어졌다고 판단하셨다면, 이는 귀하의 명백한 착각임을 고지하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약속에 관해서는 우리 미혼남녀가 잊거나 취소하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어린 왕자의 여우가 매일매일 기대했던 것처럼 저 또한 매일을 기다렸습니다.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을 고려해서 보톡스도 즉시 맞고 왔었습니다. 그 뒤로 시간이 일 주일이 지났고 일 개월이 지났고 어느새 육 개월이 지났습니다. 보톡스의 효과는 끝났습니다. 죽기 직전이니 살려달라는 노총각의 절망적인 손짓을 귀하는 무시했습니다. 선량한 지인의 역할을 망각했습니다. 귀하는 위선자입니다.
저의 자존심과 명예를 복구하고, 법적 다툼을 멈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지체없이 소개팅 알선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귀하가 할 수 있는 가장 최대의 예쁘고 착한 여성을 소개팅으로 내보내셔야 합니다. 법원에 서게 된다면 저는 반드시 판사에게 간청할 것입니다. 채무의 이행과 정신적 손해배상뿐 아니라 사회봉사명령까지 추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주변 미혼남녀에게 매월 소개팅을 의무 주선해야 하며, 당분간 자신의 행복한 연애 및 결혼생활에 관해서 인스타그램과 현실 그 어디에서도 자랑할 수 없게끔 조치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소개팅 주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수많은 괘씸한 자들의 본보기로 삼아, 신의성실의 원칙을 준수하는 사회가 되도록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사과의 말을 건넬 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습니다. 제가 귀하의 괘씸한 행동을 잊으려면 연애를 시작하여 바빠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노총각인 저에게 허용된 모든 시간을 귀하와의 다툼에 집중하겠습니다. 제가 잃을 것은 시간뿐이요. 얻을 것은 명예와 사랑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