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못남은 실패한 만남이 많아서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회사생활 내내 타인과 친해질 기회를 거부했으면서, 이제 자기는 퇴사하게 되었으니까 그제야 회식하자는 사람 말이다. 저기요, 우리가 지금까지 친해질 기회가 그렇게나 많았는데요? 내가 밥 한 번 먹자고 할 때는 온갖 핑계 대면서 거절하더니, 비로소 회사를 떠나는 시점에서야 회식하자고요? 있을 때 잘하고 즐겁게 지냈어야죠. 앞으로 다시 보지도 않을 사람이랑 무슨 술을 마신담. 아무리 세상이 좁다지만, 같은 조직에서 지낼 때조차 이랬던 사람들과는 밖에서도 엮일 일 없더라고요. 끝까지 자기 기분대로 하겠다는 사람이랑은 회식할 생각 없어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타인이 자기한테 알아서 맞춰주고–좋아해 주고 그래야 되는 걸로 여기는 인간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자신에게 제공되는 호의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으로 착각한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의 선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관계의 오가는 핑퐁 없이 무한정받기만 하다가 지친 상대방이 결국은 호의를 거두게 되면, 그제야 후회한다(이 시점에도 무얼 잘못했는지는 모르고, 그저 분위기를 감지할 뿐). 또는 자신에게 제공되던 호의가 뚝 끊겼음에 분노하는 경우도 있다.
남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건 언젠가의 연말에 발생했던 사건이다. 사실, 연말이란 개념은 결못남녀들에게 아주 가혹하게 작용한다. 길거리에 내 인생과 상관없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한국식 나이는 택시 미터기처럼 올라가고, 새해에는 이런저런 약속을 나누는 커플들이 가득하고, 곧이어 봄의 신랑신부들이 결혼한답시고 청첩장을 보내올 테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살 충동이 들기도 하는 법이다. 아 젠장맞을, 그때 만났던 사람이 최선이었을까? 이런 식으로 한 해 동안 찔러보고 저울질하던 상대가 생각이 나서, 아쉬움에 자존심을 한 수 접고 연락을 취하게 되는 거라고…
그래서 1년 내내 수시로 기회를 드렸음에도 거부해 오다, 연말이 되어서야 ‘그 남자 나름은 괜찮았던 구석이 있었지’라는 생각으로 나에게 연락하는 분들이 한 번씩 있었다. 카톡으로 짧게, 띡.
“잘 지내셨나요?”
마치 구원의 손길이라도 내밀어준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오랜만이네요. 저는 잘 지냈어요.”
아하하하, 아쉬워서 연락한 게 누구인데요. 시간이 흘러 관계가 역전됐다면, 그에 상응하는 호감을 역으로 확실히 보여주셔야 나도 마음이 돌아서는 법인데, 오랜만에 자신께서 친히 연락했으니 내가 알아서 티키타카해주길 바랐다는 식으로 대답이 왔다.
“괜히 연락드렸나 봐요.”
어떻게 반응하길 원했는지 나는 아주 잘 안다… 하지만 제가 왜 그렇게 해드려야 할까요? 아니 대체 내가 왜요? 왜, 왜, 왜! 제가 그렇게 잘해드렸던 건 말이죠, 그때는 제가 당신을 조금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그 쪽한테 점수 따려던 애처로운 구애의 시절은 진작에 끝났고요. 저는 마음 식었는데요? 한 번도 불탄 적 없던 우리의 애매한 관계를 소생시켜 조금이라도 콩닥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쪽에서 확실히 노력해 주셔야 하는 거란 말이에욧! 저도 아쉬웠던 상대방에게 한 번씩 문자를 보내거든요? 그러면 저는 말 그대로 납!작! 엎드려서 상소문을 올립니다. 누구씨 잘 지내셨나요? 그때는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용기 내어 연락드렸고 어쩌고저쩌고, 다시 만나볼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이런 식으로 구구절절 애처로운 손길을 부디 잡아주십사, 라면서 보낸단 말이에요!
네에에? 이게 안 되세요? 그러면, 네 괜히 연락하셨어요. 저는 그 쪽에게 기회를 이미 충분히 드렸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