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룸펜 Oct 11. 2022

인생 유일 업적이 결혼인 자들과의 결투

결못남은 공격받는 일이 많아서

  그저 그런 독신 남성에게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공격이 가해지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가해자는 가족부터 회사 동료는 물론이요, 때로는 처음 만나는 놈들까지 방심할 수가 없다. 언제 결혼할 것이냐는 압박이나, 그래서 결혼은 하겠냐는 놀림은 일상적이다. 부탁한 적도 없는데 “우리 노총각 부하직원 소개팅 좀 주선해 달라고” 너스레 떨며 공개적으로 망신 주며 다니는 놈들이나(마치 그것이 자신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장치의 일종인 것으로 여기며), 혹은 누구는 육아로 바쁘니 싱글 미혼남인 네가 오늘은 야근하며 대신 고생해달라는 팀장의 멘트와 그것을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동료의 눈치까지…… 좋아요. 여기까진 알겠다고요. 아주 익숙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직관적인 공격보다 질 나쁜 공격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이상형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악질적인 점은 얼핏 듣기에는 선의를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속내는 시커멓고 잔악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을 자신과의 관계 설정에서 열위에 두고자 하는 의도에 있기에 해맑은 척 묻는다면 그것이 되레 괘씸하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는데?” 개념 없는 팀장은 맥락 없는 질문으로 미혼남을 공개 망신의 무대에 강제로 등판시킨다.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게요 알려주세요. 저희도 궁금해요.” 옆에 있던 동료 직원들도 얄밉게 거든다. 이로써 무대의 분위기가 완벽히 조성되었다. 갑자기 수련회의 마지막 밤과도 같은 분위기……. 어디 한번 네깟 놈의 눈높이가 얼마나 되길래 아직도 결혼 못 하고 있는지 다같이 씹고 뜯고 즐겨보자!


  하아, 곤란하다. 정말이지 곤란해. 억지로 끌려 나온 주인공은 오늘의 퍼포먼스를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평소 같으면 당신네들에 순순히 어울려줬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광대 짓거리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늘은 도저히 기분 나빠서 파투 내야겠다. 서글픈 결못남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이런 야만인 같은 자들! <왕좌의 게임>의 북쪽 장벽을 떠올리자……. 하나 남은 자존심의 장벽에 기어오르는 야만인들. 기어이 이것마저 약탈하려 드는가! 결혼 생활도 누리고 미혼남도 놀리고, 뭐야? 인생에 없는 게 없잖아? 장벽을 기어오르는 야만인들에게, 고조되는 분위기에 얼음 같은 똥물을 끼얹어 주리.


  그게 왜.궁.금.하.신.데.요?” 당신들이 왜 궁금한지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눈을 부릅뜨고 정색하며 물어본다.

  “아니…… 팀장이 그런 거 궁금할 수도 있지. 그리고 이상형 듣고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주려는 거잖아?” 외려 자신이 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팀장이 말한다. “맞아요. 저도 회사 사람이 소개해줘서 결혼한 거잖아요.” 야만인들은 포기하려는 기색이 없다.


  저기요, 있잖아요? 내가 당신들에게 여자가 필요하다고, 결혼이 간절하다고 부탁한 적이 애초에 없습니다.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는데 마음대로 도와주는 것은 실례입니다만? 게다가 당신들이 나를 짝지어 주리라 기대한 적도 결코 없어요. 특히 팀장 당신은 결혼한 게 기적으로 보이는 남자거든요? 그런 주제에 감히 나를 동정하는 거예요? 아―아아! 화가 난다. ‘Winter is coming!’ 장벽에서 적들에게 초대형 회전추 칼날을 떨구는 것을 생각한다……. 이것들아 귀를 열고 들어라! 이건 결못남의 염세와 분노의 노래다.


  “아.니.요. 정말로 소개해줄 생각이면 이상형부터 묻는 게 아니라, 주선자로서 준비부터 되어야 하는 게 선행조건 아닐까요? 소개해줄 사람이 있기는 하고 이상형을 묻는 건지 반대로 제가 묻고 싶단 말이죠?” 언어의 칼날은 바이킹 기구처럼 지나가고,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곧이어 긴장감이 피어오른다. ‘이 새끼가 드디어 미쳤나?’싶은…….


  주변으로부터 수십번의 소개팅을 받아봤으나 이 질문을 먼저 던진 자가 소개팅을 해준 케이스는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는 나의 인생에서 경험적으로 귀납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이상형을 묻는 올바른 태도는 이상형을 묻는 것이 아니다. 대신 사진을 몇 장 보여주며 혹은 간략한 스펙이라도 읊으며 “어때 마음에 들어? 소개해줄까?”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소개팅 주선자의 기본 자격도 갖추지 못 한 자들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미혼남녀의 이상형을 캐며 사람을 가늠한다. 왜요, 설마 지금부터 알아보겠다고? 하! 그럴 리가 있나.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콩떡입니다만, 그럴 능력 있는 사람은 내가 딱 보면 알거든요? 당신들은 마당발도 인싸도 뭣도 아닌 평범 그 자체의 사람들이거든. 게다가 당신들의 결혼에 인생의 운을 이미 다 썼을 지도 모릅니다만? 그러니 자만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노총각의 하나 남은 성채를 건들지 마세요!


  “엄청 까칠하네. 야 인마 그따위로 말하고 다니면 어떤 여자가 너랑 만나주겠어?”


  잘 만나고 다녔습니다. 재수가 없어서 결혼까지 가지 못 했을 뿐. 그리고 누가 저랑 만나든 말든 결혼하든 말든 당신이 관여할 바는 아니잖아요. 혹시 정말로 제가 불쌍하면 말이죠. 이 따위로 까칠해져버린 성격을 그러려니 힘들었겠거니 너그럽게 이해나 하시면 되거든요? 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겨우 삼킨다. 오늘의 반격은 이 정도면 충분했으리라, 성채는 지켜냈다. 이처럼 미혼남의 일상은, 인생의 유일한 업적이 결혼인 자들과의 대결로 채워진다. 이들은 도처에 널려 있고, 심지어 그다지 부럽지 않은 결혼의 형태를 하고 있는 자들까지 이 무뢰배의 무리에 합류하여 미혼남녀를 공격하는 돌을 던진다.


  ― 사랑은 이런 것이다. 그러니 가르쳐줄 때 새겨들어 배우고 실천해라.

  ― 결혼은 이런 것이다. 그러니 눈 낮추고 주변에서 적당히 찾아서 해라.

  ― 인생은 이런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따라잡으려면 빨리 정신 차려라.


  으아아! 다 필요 없다고요. 나는 물론 그 업적을 달성하지 못 했다. 그것을 대체하는 무엇을 이뤄낸 것도 아니다. 인생을 대단히 즐기지도 못 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꾸 결투 신청하지 마세요. 걱정해주는 척 당신들의 궁금증을 채우지 말라고요. 내 인생사가 당신네 권태감 해소를 위한 청량음료가 아니랍니다? 미혼남녀를 감히 대표하여 부탁하겠습니다. 자.격.없.이. 이상형을 묻지 말아 주세요. 정말이지 곤란하다고요?


2020년 5월

이전 07화 숨만 쉬어도 못생겨지는 자신과의 결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