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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y 08. 2020

#아이유 연대기 5: 가보지 않은 길

너무 큰 성취, 그 기저에 깔린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뭔가 크게 이루거나 깊이 있게 깨달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다.


삶이 정지한듯한 허탈함,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
모든 의미가 퇴색된 듯한 허무함.



아주 유명해지거나 큰 성과를 이루는 등 어떤 특정 성취의 단계를 넘어서지 않으면 알기 힘든 감정.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 또는 아주 부유한 이들에겐 부족할 게 없으니 막연히 그들은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큰 착각일 뿐. 이제 막 성공을 이룬, 또는 성공의 반열이라고 부를 만한 어느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수많은 도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과가 더 잘 부서지고 더 큰 멍이 들듯, 너무나도 높은 위치 에너지가 주는 고소공포증 바닥으로 추락 산산조각 날 삶에 대한 두려움은 겪어보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언제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 내가 무엇을 하든 ‘미워 죽을 것’ 같아하는 시기와 질투는 시작에 불과하고, 성공을 위해 달렸던 삶, 규칙, 시간, 계획, 노력, 에너지, 열정 등등 최소 수년에서 많게는 십 년이 넘게 달려온 시간표가 마치 배터리가 나간 듯 갈 길을 잃은 공허함. 더 이상 따라갈 지표도 없고, 조언을 구할 선배도 없는데, 등 뒤의 수천만 개의 눈동자가 밤낮없이 깜빡이며 나의 다음 행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기대하는 부담감은 그 크기를 어림잡기도 어려울 터.


그래서일까? 너무 일찍 혹은 오랜 고생을 딛고 어느 자리에 오른 이들은 '성공'이라는 자리가 가져다주는 깊은 상실감에 시야가 좁아져 그릇된 선택을 하거나, 큰 사랑만큼 깊은 상처를 안겨주는 예측 못한 고통으로 인해 빗속을 헤매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스라져 간 별 그리고 별


아마, 아이유의 '에잇'을 듣자마자 생각난 이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 아이유의 ‘에잇’ 뮤비에서 거의 직설적으로 의도했듯, 그리고 신곡 공개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진 가사와 뮤비의 해석 글들이 그렇듯, 우리는 이 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설리 그리고 종현


그들을 비극적인 선택으로 끌어간 상황이야 지극히 개인적 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너무  성공이 가져온 압박과 수많은 사람들의 자극적이고 밀도 높은 지나친 관심 그리고 철천지 원수라도 되는 냥 끊임없이 이들을 괴롭힌 시간들은, 그들이 아이돌로 성공하면서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버거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


표면적으로 '에잇'은 너무나도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설리와 종현을 그리는 듯하다. 하지만 한 발자국만 조금 더 나아가 보면 큰 성공 이후 마주하게 되는 '허공' 속에서 잠시 길을 잃은  아이유와 슈가의 마음을 슬며시 보여주기 시작 한다. '좋은 날'이후 완벽한 성공의 행보를 그린 아이유도,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세계적인 스타가 된 슈가 역시 그랬으리라. '에잇' 속에서 이 둘은 세상을 등진 설리와 종현을 그리며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들도 조금만 운이 나빴거나, 당시 상황이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려, 오히려, 이 안타까운 현실이 본인들의 것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서로 의지가 될 동료들이 하나둘 차가운 빗속으로 사라져 가는 광경과 미처 손 쓸 틈도 주지 않고 이슬처럼 증발해 버린 그들에 대한 서운한 원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신체 일부가 도려져 나가는 아픔, 그 이상의 고통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의 내면,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성공 이후 찾아온 허탈감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아이유와 슈가의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삶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걸어가 본 적 있는 길이다. 그마저도 온전히 그대로 따라가고 싶은 길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슈퍼스타들의 생이 어땠는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테니.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대성공 이후의 삶의 목적지를 알려줄 이도,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충고를 해줄 사람도 이젠 없다.


앞으로 이들이 갈 길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일뿐.


그래서 혹자는 천천히 오랫동안 한 계단씩 걸어 올라가는 삶이 가장 축복받은 삶이라고도 한다. 너무 갑자기 수백수천 계단을 올라간 삶에는 성공의 시간을 압축한 만큼 사소하게 기쁠 일도 적고, 반대로 앞으로 이룰 성취의 계단은 너무 높아 이루기가 더욱 힘들기에 더 쉽게 좌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잇, 까짓 거 해내면 되지



‘에잇’은 이렇게 이미 떠나가버린 소중한 인연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어쩌면 아이유가 극복해야 하는 잔인하고 냉정한 현실을 두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지가 심어져 있는 노래처럼 들린다. ‘스물셋’이 그랬듯, ‘팔레트’가 그랬듯, ‘에잇’은 28세를 맞이한 그녀의 현실을 나타냄과 동시에 막연한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표출할 때 사용하는 의성어인 ‘에잇’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숫자 28의 '8'을 옆으로 뉘이면 'infinity' 즉, 무한대가 된다. 기억 속에서 영원히 만나자는 아이유의 외침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게 돼버린다. 에잇의 가사에 '영겁, 영원, forever young'이 아무 의미 없이 쓰인 게 아니란 말이다.


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어
난 영원히 널 이 기억에서 만나
Forever young


꿈을 이룬 이들에겐 또 다른 꿈이 필요하다.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이젠 그 누구도 쉽사리 가이드해 줄 수 없다.


만약,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면 곳간에 쌓인 양식으로 더 많은 성공의 씨앗을 길러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누구나 알 정도로 큰 이름을 얻었다면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대중과 공유하며 수백만의 삶 속에 에너지를 발산 그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 줄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이루고 나니 홀연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춘듯한 삶에 당황스럽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 두려움이 앞서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대가 ‘그 정도의 능력’이 되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는 특별하지만 평범하다’를 머릿속에 되뇌고, 이젠 모두의 삶과 일상에 마법 같은 에너지를 선물할 수 있는 마법사이자 친구가 되어 여전히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게 그대의 한 평생 꿈이자 계획이 되면 되는 것을.



어, 잠깐,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 팬들은 아이유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그저 밤에는 밤하늘에 부담 없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되어주고, 낮에는 깊은 숲 안식처나 큰 나무 그림자가 되어 손 뻗었을 데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숨죽이고 기다리며 기도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녀가 먼저 건네준 손, 우리가 뿌리치지 않고, 우릴 향해 돌아볼 때 싱긋 웃어주면 그나마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이제, 함께 걸어가면 된다.




[이미지 출처]

아이유 '에잇' 공식 뮤직 비디오 캡처: https://vibe.naver.com/track/40276929

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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