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내성적인 아이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by Rooney Kim

실은 난 내성적이지 않아.


초등학교 땐 선생님이 질문하는 것마다 손들고 발표해서 오죽하면 선생님이 질문하시면 친구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겠어. 그렇다고 매번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한 건 아니지만 암튼 난 발표하는 게 좋았어. 다행인 건, 내가 덜 재수 없었는지 혹은, 친구들의 아량이 넓어 날 좋게 봐준 건지. 나의 지나친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날 왕따 시키거나 질투하는 애는 없었어. 그렇다고 반에서 1등이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었고.



그리고 정의감도 넘쳤어. 그래서 친구들이 싸우기라도 하면 얼른 달려가서 말렸지. 이건 중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또 다행인 건, 그런 걸로 시비 거는 애는 없다는 거야.


작년부터 다닌 성당에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는데, 처음 간 날, 거기서 자기소개를 하라는 거야. 자기소개라니 주로 그런 건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입니다.' 이게 다잖아. 아무튼 소개를 하라고 해서 내 소개를 했어. 그런데 난 중학생이 된 후로는 선생님 질문에 손들고 답하는 것 같은 지나치게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거든. 너무 나대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질문의 답을 몰라서 그랬어. 무슨 말이냐면, 초딩때 선생님의 질문은 열린 질문, 즉, 어떤 답이라도 내 생각을 말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중학교 쌤들은 전부 단답형에 가까운, 지식 기반의 질문만 하는 거야. 그래서 내 상상력이나 경험,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답할 수 없으니 손을 들 수 없었지.


하지만 친구들이 싸울 때 적극적으로 말리는 행위는 멈추지 않았어. 다들 알겠지만, 중학생이 돼서 맞이한 제일 큰 변화는 친구들끼리 엄청 싸운다는 거야. 지난 주만 우리 반에서 세 번의 싸움이 있었어. 물론, 그 싸움을 모두 말릴 순 없었지. 싸움만 하는 게 아냐 개중에는 양아치처럼 위협하고 폼 잡는 애들도 있고. 진짜 싸움 잘하는 얘들도 있고. 그렇게 학교생활이 일종의 정글이 되니 '순수한 학문으로의 열정'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어서 나도 조용히 지냈지. 괜히 나댔다가 이상한 애 취급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스스로 조용한 아이, 말 수가 적은 아이로 정의 내렸어. 사실, 그게 멋있어 보였어. 내성적이고 말도 없이 눈빛만으로 말하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 안 그래?


그 이후로 근 2년간은 내 소개를 할 때 '제 성격은 내성적이고요'를 남발한 것 같아. 웃기지. 일단 내성적이라고 하니 편하긴 했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고 남을 웃길 필요도 없고. 하지만 내 안의 억눌려있는 개그 본능이 가끔 튀어나와 엉뚱한 한마디로 모임에 있는 여럿을 웃기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고등학생인 어느 성당 누나는 '넌 가끔 한 마디씩 하는데 그게 웃겨'라고 말해주기도 했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분은 좋더라. 암튼 그렇게 내성적인 아이로 컨셉을 잡으니 내 행동도 좀 그렇게 변하더라. 부끄럼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도 낯도 더 가리게 되고 좀.. 그렇게 변한 것 같아.



몇 개월 전에 학생회관에 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은지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시 멈춰 서서 문틈 사이를 보니 학생회관 안이 온통 여자들인 거야. 모두 성당 누나들이었는데 도저히 못 들어가겠더라고. 괜히 긴장되고 떨리고 그냥 굉장히 뻘쭘하고 민망하고, 여하튼 그랬어. 그렇게 우물쭈물하는데 뒤에서 누가 탁하고 내 어깨를 치는 거지.


“어 회.. 회장 누나”
“안 들어가고 뭐하노?”
“아.. 아녜요. 그냥 내려갈라고요."
"왜? 부끄럽나? 괜찮다, 같이 들어가자.”
"아니. 그.. 아니요.." (호다닥)


난 결국 그날 학생회관에 못 들어갔어. 모르겠어. 진짜 내 말대로 내성적인 아이가 된 것 같았지. 말이 씨가 되어버린 듯. 이렇게 내성적인 컨셉이 좋은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어.


아, 맞아, 사실,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 우리 성당에 굉장히 성격도 좋고 웃긴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웃기기도 한데다, 매너도 좋고 예의도 바른 편이라 학생회 학생들이랑 성당 수녀님들도 모두 그앨 좋아했지. 뭐랄까.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쾌활한 친구였어. 그런 녀석의 성격이 좋아서. 나도 같이 잘 어울렸고.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이사를 가면서 성당을 옮기게 된 거야. 그런데 그 얘길 들으니까 되게 아쉽고 슬프더라. 성격 좋은 친구를 잃는다는 게, 주변에 좋은 사람이 사라진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지.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가 봐. 그 친구가 떠나는 날, 성당의 형들, 누나들 그리고 동생들과 수녀님들까지 이별 파티도 해주고 다들 굉장히 아쉬워했어. 서로 집 전화번호도 주고받고, 가족을 멀리 떠나보내듯이 뜨거운 작별을 했지. 학생회는 물론, 성당의 한쪽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난 듯 보였어. 다음 주가 되자 그 친구의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졌고 다들 더 이상 말은 안 했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듯했지.


‘아, 이럴 때 ㅇㅇ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도움이 될 텐데, 재밌었을 텐데 등등’


그 이후로 내 속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걸 감지했어. '내성적으로 사는 게 딱히 쿨하고 좋은 건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재미를 주려면 그리고 언젠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려면 다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하는구나. 내성적인 건 카리스마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조용한 아이로 잊혀지는 거구나'하는 그런 생각.


그래서 다시 생각을 고쳤어. ‘예전처럼 뭐든지 나서서 해야겠다. 얘기도 더 하고, 어이없는 농담도 하고, 때론, 모임의 분위기를 이끄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 뭐 이런 생각.


그래서 다시 노력 중이야. 쾌활하고 뭐든지 적극적이었던 나로 다시 돌아가는 노력. 잘 될지는 모르겠다만.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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