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유년

서열, 싸움, 야생의 서막

by Rooney Kim

남녀공학이었던 초등학교와는 달리 남학생들로만 드글대는 한 남자 중학교의 쉬는 시간은 서열 정리와 위력 과시로 넘쳐나곤 해.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기도 하는데 아무튼 부모님들은 결코 알지 못할, 아니 어쩌면 모르는 게 천 배는 나은 상황이 벌어지곤 하지.


보통 학년이 올라갈수록 원래 친한 녀석들과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게 되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마련이야. 친한 친구들이 주변에서 사라지고 자주 못 보게 되니 너무 아쉬웠어. 물론, 지나가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도 하지만 다시 예전처럼 자주 만나서 놀긴 힘들더라고. 보통, 이 정도가 이런 예민한 시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의 거리, 관계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중학교를 오니 이젠 다른 의미로 친구들을 보게 돼.


들끓는 경쟁의식,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모험심, 능력과 힘을 만방에 떨치고 싶은 과시욕. 아마 호르몬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남중학교에서는 학기 초마다 각 반마다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져. 쉽게 말하자면 하루가 멀다 하고 애들이 싸운다는 거야.


우리 반 애들도 똑같아. 그래서 학기초엔 성향에 따라 녀석들을 이렇게 분류할 수 있어.


중학교 교실엔 세부류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영화 '싸움의 기술 2'


첫째, 힘의 과시 부류. 여기엔 하위분류로 나뉘어.

1) 힘세고 원래 싸움을 잘하던 부류: 이 중 가장 싸움을 잘하는 애들은 보통 조용해.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초인과 같은 싸움 실력을 보여주지. 거의 아무도 이 녀석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보면 돼. 그다음으로 싸움을 좀 하는 녀석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패턴을 보여주지. 일단, 한 두 명을 조져, 아주 찍소리도 못하게 말이지. 그리고 거의 매일 인상 쓰면서 등교해서 몹시 험한 욕과 고함/문치기/물건 던지기 등으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자기 힘을 과시해. 솔직히 말하면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 이제 학교통말고는 아무도 자기를 안 건드리는데 왜 자꾸 저럴까? 자신의 위치가 불안할 걸까?


2) 서열은 애매한데, 세 보이고 싶은 녀석들: 자기가 볼 때 아주 만만한 친구와 정말 사소한 걸로 다투다 몸싸움을 벌이지. 그런데 이 녀석들은 굳이 서열을 위한 싸움보다는 모옵시 사소한 걸로 싸우는 게 태반이야. 문제는 때때로, 녀석들이 만만하게 봤던 친구에게 오히려 두드려 맞는 경우도 많다는 거야.


둘째, 복종하는 부류

대부분 작고 약하거나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지. 얘들은 실제로 싸움도 싫어하고 겁도 나고 무엇보다 힘이나 신체조건이 따라주지 않아 싸움 서열 경쟁에 낄 생각도 안 하는 편이라고 보면 돼. 그래서 웬만하면 싸움도 피하려고 하지.


셋째, 힘이나 신체조건은 갖춰졌지만 굳이 싸움 서열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부류

뭐랄까 중립지대에 있다고 보면 돼. 실제로는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녀석들을 압살 해버릴 만한 능력이 있지만 참거나 굳이 그런 대열에 들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보통 일진들은 단체 행동을 하니까 그게 걸리는 거지. 그래서인지 일진이나 일진에 붙은 양아치 같은 애들도 굳이 얘들을 건드리진 않아. 그런데 아아주 간혹 일진 무리와 이런 친구가 싸움 붙는 경우가 있고 상위 랭커인 녀석과 싸우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재밌게도 평소에 조용하고 존재감도 없던 녀석이 화가 나니까 일진도 당황하더라 그리고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면 대부분 조용하던 힘세고 덩치 큰 친구가 이겨.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반이 술렁거리고 학교 전체에 소문이 나지. 그럼 일진 무리에 균열이 생겨. 서열이 바뀌니 말이야.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그 덩치 큰 친구는 다시 조용히 지내. 그리고 보통은 다시 일진 무리와 싸움이 붙는 경우는 거의 없어. 평화가 찾아오지.


나는 굳이 나누자면 세 번째에 속해. 딱히 날 건드리거나 시비 거는 애도 별로 없고 나도 나대거나 괴롭힌 적이 없거든. 물론, 그렇다고 물리적인 충돌이나 에피소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치고받고 싸운 적은 없으니 비교적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셈이야.


평화주의자지만 불의에는 불끈대는 성격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보통 친구들이 싸움을 말리는 역할을 자처했었는데 이런 습관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계속됐어. 다행히 나도 키가 큰 편이고 덩치도 좀 있는 편이라 말린다고 뭐라 하진 않더라.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참 애매한 일도 있긴 했어. 다들 겪어봐서 알겠지만, 중1이라는 건 다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거잖아?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학교에 한 성별만 모아놓다 보니 학년 초에 벌어지는 기싸움이 상당해.


우리 반에도 다른 학교에서 통을 먹고 온 일진스러운 애가 하나 있었는데, 걘 배구부였어, 심심하면 애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거야. 어느 날 우연히 의자에 까는 자기 방석이 없어졌다고 지랄발광을 하면서 교실에서 설쳐대더군. 그래서 시끄럽길래 슥- 한번 쳐다봤는데 갑자기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니가? 니가 내 방석 가져갔냐?'라며 멀찍이서 소리치는 거야. 어이도 없고 열도 받지만 굳이 싸울 필요는 없어서 '아니.' 하고 말았지. 그냥 그렇게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어. 걔도 그냥 저런 걸로 자기 위력을 떨쳐 보이고 싶은 거니까. 굳이 나한테 더 말을 걸진 않더라고.


그런데 하필 나랑 좀 친해지고 있던 옥민웅(가명)이라는 친구가 내가 위험에 처해 보였는지 나를 도와준답시고 나서버린 거지.

'마, 디와이가 가져가는 거 니가 봤나? 왜 의심하고 그라는데?'


후.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꺼져가는 불씨였는데 거기에 기름을 부은 거지. 난 결단코 의미 없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러니까 그 배구부의 '분노 + 나대고 싶음'이 내 친구에게 옮아갔고 곧 민웅이에게 가더니 때릴 듯이 위협하고 욕을 하다가 다시 돌아갔어. 친구에게 미안해지더라. 그러게 친구야 왜 괜히 싸우고 싶지 않아서 피하는 나를 위해 나서니. 근데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크림빵 사줄 게.


힘, 권력, 다들 왤케 난리야


그런데 권력, 즉, 힘이란 게 되게 웃겨. 사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내가 선도부가 되었어. 다들 알다시피, 학교 정문에서 등교하는 애들 중에 머리나 옷이 불량한 애들을 걸러내서 단속하기도 하고 수업 전 조례 때는 1학년 교실을 순찰하며 떠드는 반을 조용히 시키기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전체 조례를 하는 월요일엔 학생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서로 부딪히거나 해서 다치는 애들이 없도록 층층마다 서서 지도하고 감독하는 뭐 그런 잡다한 일들을 해. 그런데 웃긴 게 이것도 권력이라고 1학년 애들이 시끄럽게 떠들 때 교실 앞문을 확 열어젖히고 겁나 큰 소리로 한 번 '마-' 외치면 애들이 진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단 말이야. 물론, 돌아서면 몇 초 뒤에 또 엄청 떠들긴 해. 그런데 이게 중독성이 있더라고. 그렇다고 선도부의 권력을 악용해서 누굴 괴롭히거나 억지로 제압한 적은 없어. 그건 정의롭지도 못하거니와 내가 누굴 괴롭힐 깡은 없는 것 같아. 누가 괴로워하면.. 내 마음이 아파.


한 번은 1학년 교실에서 쪼꼬만 녀석 둘이 싸움이 붙었나 봐. 1학년 층을 돌고 있었는데 복도 끝에서 엄청 시끄럽더라고. 첨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고 했어. 위에서 말했듯이 난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반 애들이 싸우는 거 말리는 것도 바쁜데 애들 싸움까지 일일이 다 챙기긴 넘 힘든 것이었지. 그런데 이 날따라 애들 함성이 너무 큰 거야. 그래서 '보통 싸움은 아닌가 보지'하면서 뭔가 하고 가봤는데 한 녀석이 커터 칼을 들고 있는 거야. '에휴-' 그래서 이건 빨리 말려야겠다 싶어서 '마- 싸우지 마라'라고 그게 외치면서 그 교실에 들어갔지. 그러니까 애들이 슬슬 피하더라 그리고 싸움의 당사자인 둘은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고.


이 녀석들은 호랑이입니다


둘의 상기된 얼굴은 마치 초원에서 만난 퓨마 두 마리가 서로의 영역을 두고 설전을 벌일 때 보일 법한 분노의 에너지로 일렁이고 있었지. 그래서 얼른 둘 사이로 끼어 들어가 싸움을 멈추라며 한 번 더 경고하고 칼 든 애를 쳐다보면서 한 마디 했어.


'칼 내놔라.’


별다른 저항은 없었어. 어차피 난 2학년이고 또 선도부니까. 게다가 두 녀석보다 키도 훨씬 커서 더 이상의 반항은 없더라. '이 칼 누구꺼고?'하고 물으니 손을 들더라. '필통 어딨노?' 하니 지 책상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길래 칼을 필통에 넣고 둘한테 경고했지.


'싸울 때 싸우더라도 칼이나 무기는 들지 마라. 치사 하구로 남자 새끼가.'


그렇게 또 한 번의 선도부 놀이가 일단락되었어.


싸움 말린 얘기 하자면 너무 많아서 다 하기도 힘들어. 너무 많거든. 게다가 지금 우리 반 반장 녀석도 쫌, 음, 문제야. 걘 키도 나보다 조금 더 크고 공부도 잘하는데 싸움도 잘해. (힘은 내가 더 세지만) 아무튼, 평소에는 온순해 보이는데 뭔가 자기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걸 못 견뎌해. 소위 말하는 '욱하는 성질'의 대명사 그 자체야. 내 짝이기도 했는데 맨날 나한테 수업시간에 좀 집중하라고 잔소리를 해댔지. 하지만 난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건 쉽지 않았어.


이 녀석은 다니던 초등학에서 전교 싸움 4등에 공부도 잘하고, 무엇보다 비위에 거슬리면 애들을 두들겨 패는 게 거의 일상화되어 있더라고. 반장이라는 녀석이 말이야. 나도 이런 류의 친구는 처음이라 초반엔 좀 당황스러웠어. 가령, 자습시간에 누가 떠들면 한 번 조용히 하라고 경고했다가 그래도 수군대면 그 자리로 가서 가차 없이 패 버리더라고 심할 땐 선생님 자리에 있는 몽둥이를 들고 마구 패.


나참. 난 그 친구한테 별다른 감정은 없었지만 키 작고 덩치도 작은 친구들에겐 이미 공포의 대상이더라. 그래서 학년 초에는 나도 반장이 애들 패는 게 너무 어이없고, 그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려서 말릴 틈도 없었지만 나중에 몽둥이까지 드는 걸 보니 가만두면 안 되겠더라고. 보아하니 다른 친구들은 말릴 때 자기도 맞을까 봐 아무도 안 말리는 거야. 그래서 그 이후로는 반장이 너무 심하게 애들을 때리면 뜯어말렸어. 다행히 반장도 나한테 해코지를 하진 않더라.


하- 남중학교의 일상은 이렇게나 거칠고 야생스러워.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어쩌겠어. 다 이겨내야지. 시간은 흐르고 이러다 보면 또 고등학생이 될 거 아냐? 고등학교에 가서도 이렇게 싸우겠어? 대입 공부하느라 바쁠 테니 괜찮아지겠지 뭐.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yeon901227/221725859006

https://unsplash.com/s/photos/f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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