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잠을 자서 후다닥 챙겨서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갔는데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거야. 옆자리 녀석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오늘부터 매주 화, 목요일에 방과 후 수업을 하는데 총 10개 반의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우열반을 나눠한다는 거야. 그놈의 성적. 학교 일과가 끝나고도 남아서 공부하게 마음에 안 드는데 거기에 다른 반 녀석들이랑 섞여서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한다?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전체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제도 안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나올까 싶었어.
방과 후 수업반은 크게 공부 잘하는 반, 중간쯤 하는 반 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반으로 나눠졌어. 다행히 난 중간쯤 하는 반이었지.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닐 땐, 대충 공부해도 성적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확실히 중학교를 오니 성적이 중간으로 떨어지더라.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어. 사실, 나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아직 잘은 모르겠고, 국어나 영어 수업 외엔 집중도 잘 안되고, 과외 활동으로 글이나 시를 써서 문예대회에서 수상하곤 했지만 그건 성적이랑 관계가 없잖아.
우열반 방과 후 학교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나랑 친구들은 각자 흩어져서 배정받은 교실로 갔어. 인수도 없고, 태산이도 없고, 치성이도 없고 좀 친하다 싶은 애들은 다 다른 반으로 흩어졌어. 인수랑 태산이는 공부를 잘해서 없었고 치성이는 나랑 같은 중간쯤 하는 반이었는데, 중간쯤 하는 반도 총 세 반이었거든 나랑 달랐던 거지. 교실에 들어가니 이미 같은 반에서 온 녀석들은 끼리끼리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있더라. 물론 우리 반에서 온 애들도 있는데 난 걔들이랑은 안 친해서 걔들은 이미 같이 자리 잡고 앉았고 나 혼자 맨 뒷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았지. 학년이 바뀐 것도 아닌데 마치 학기초 처음으로 교실에 들어갔을 때의 기분이랄까? 생판 모르는 애들이 주변에 있으니 그런 어색한 기분이 들더라.
수업은 총 3시간이었어. 8시가 되면 끝이 났지. 지루우우한 야간 1교시와 더 지루우우우우우우우한 2교시가 지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어. 여전히 난 혼자였지만 다음이 마지막 시간이라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 다른 반에 있는 인수나 보러 갈까 하다가 관뒀어. 5분 뒤면 수업이고 곧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견딜만했지.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설레는 건 초딩 때나 지금이나 비슷해. 그래서 반에 있는 처음 보는 친구들을 스윽하고 한 번 둘러봤어. 몇몇은 복도랑 화장실을 오가며 마주친 얼굴도 있었는데 어떤 애들은 우리 학교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처음 본 얼굴도 있었어. 그런데 그러다가 창가 쪽 뒷자리에 두 녀석이 눈에 들어왔어. 한 녀석은 한쪽 다리를 쪼그려 앉듯이 의자에 올리고 나머지 다리는 책상 밖으로 뻗어서 거들먹거리고 있었고, 다른 녀석은 상체를 책상 쪽으로 바짝 붙여 같이 얘기를 하고 있었지. 둘 다 굉장히 뻐기는 듯한 표정으로 야비한 웃음을 입가에 건 채 반 친구들을 쳐다보며 얘기하고 웃고 얘기하기를 반복하고 있더라. 불량한 애들인 것 같은데 본 적은 없고, 학교에서 쫌 논다고 하는 애들은 나도 얼굴은 대충 아는데 쟤들은 전혀 본 적이 없는 애들이라 신경을 껐지.
시비가 취미인 녀석들
그리고 곧 수업이 시작이라 교과서를 꺼내서 좀 보다가 선생님이 안 오셔서 다시 고개를 들어 칠판을 보는데 누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왼편을 돌아봤지. 아까 그 두 불량한 친구들이 있는 창가로 말이야. 그런데 그중 한 녀석이랑 눈이 마주쳤어. 인성이 좀 안 좋은 애들은 눈이 마주치면 느낌이 오거든.
'아, 얘는 지금 몹시 기분이 언짢구나 혹은 얘는 지금 화가 나서 화를 풀고 싶구나 또는 아무나 시비만 걸려봐라.'
대충 이런 느낌 말이야. 그런데 얘는 세 번째였어. 그래서 굳이 시비 걸리고 싶지도 않아서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앞을 봤지. 그런데 이번에는 두 명의 시선이 느껴졌어. 그거 알지? 내 옆에서 눈동자들이 아른거릴 때 겁나 거슬리는 거. 나랑 눈이 마주친 녀석이 다른 녀석에게 말을 했는지 딴 데 보던 녀석도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 하지만 난 사고 치지 않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착한 청소년으로 남고 싶어서 굳이 다시 쳐다보지는 않았어. 그런데 두 녀석은 불같은 시선에 이어 이젠 말을 걸더라고.
"마, 마, 맨 뒷자리."
일단 못 들은 척했어. 이제 곧 수업도 시작될 거고 말했다시피 난 사고 치는 것도 싫었거든.
"마, 안 들리나? 마!"
그런데 녀석들은 더 크게 소리 지르더라. 그래서 내 주변에 있던 애들도 돌아볼 정도였어. 더 이상 무시할 순 없어서 돌아봤지. 아니나 다를까 둘의 눈은 당장이라고 달려들어 사냥감을 뜯어먹을 맹수들처럼 이글거리고 있었지. 그런데 난 사고 치는 것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길길이 날뛰는 불의에 눈감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서 둘을 바라보며 응대해줬지.
"와? 와 부르노?"
그러자 그 이후부터는 차마 지면에는 담기 힘든 상스럽고 추잡한 더러운 욕설을 늘어놓더라. 다 아는 욕들인데 여기에 쓸 순 없어. 알지? 나의 건강은 물론, 부모님의 안부까지 묻는 동방'욕'의 지국의 후손들 다운 안부 욕들 말이야. 아직 선생님은 안 오셨고 나도 이유 없이 당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또 응대해줬어.
"머라카노. 와 시비 거는데 어? 머? 어쩌라고?"
그러자 둘은 더욱 불같이 날뛰더군 당장이라도 달려올 것 같았는데 멀리서 선생님이 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걔네들 자리에서 들썩이며 나에게 또 한차례 안부를 묻더라.
"마, 니 이제 주긋다. 마치고 남아라. 알긋나?"
둘은 불같이 날뛰며 화를 냈지만, 난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그냥 무시하고 칠판을 보기 시작했지. 그런데 옆에서 계속 발광을 해대는 거야. 그래서 돌아보고 답했지.
"수업 끝나고 보자."
곧 수업이 시작되었고 난 수업에 집중이 안되더라. 둘 다 나보다 키는 작아서 어찌해보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일로 싸우는 것도 좀 이상하고, 생전 처음 보는 애들이라 걍 조용히 말로 할까 싶었다가도 이제 나도 슬슬 열 받기 시작하더라고, 옆을 돌아보니 둘은 쌍심지를 켜고 작은 소리로 욕을 하더라.
가령, '네 정신 상태는 어때?, 여기까지만 살고 싶은 거니?' 대략 이런 욕들이었어.
난 살다 살다 이런 식으로 시비 걸려보는 것도 처음이라 무난하게 넘기려 했지만 도저히 화가 나서 안 되겠더라고. 일단 상대는 두 명이니까 나도 그전에 뭐라도 보여줘서 경고를 하고 싶은데 수업시간에 딱히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그런데 마침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시더라. 그래도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니 걔들도 나한테 덤벼들진 않았어. 나도 내 주머니랑 가방에 쓸만한 게 없을까 해서 찾아보니 마침, 츄파춥스 사탕이 있는 거야. 그리고 갑자기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난 츄파춥스를 꺼내서는 책상 옆 교실 바닥에 놓았어. 녀석들은 나의 행동을 하나하나 주시하고 있었지. 그래서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두 녀석에게 화난 만큼 주먹을 꽉 쥐고는 교실 바닥에 있는 츄파춥스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쳤어.
'팍-' 몹시 둔탁하지만 명쾌한 소리가 교실의 정적을 갈라놓았고 츄파춥스는 말 그대로 가루가 되었어.
나도 처음 해보는 거라 그렇게 가루가 될지는 몰랐지만 (나도 속으로 놀랐고) 아무튼 내 경고는 성공했지. 츄파춥스를 박살 낸 후 난 녀석들보다 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둘을 쳐다봤어. 둘은 가루가 된 츄파춥스를 보고 나서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어. 둘 중 한 명의 표정이 변하더라. 곧 선생님이 돌아오셨고 수업 시간 내내 시끄럽게 발광하던 나의 왼편 시야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지. 하지만 난 긴장을 놓지 않았어. 수업이 끝나면 남으라 했으니 수업 후에 남아서 끝장을 볼 생각이었지. 어차피 모르는 녀석들인지라 어쩌면 내 학창 시절의 첫 사고가 저 두 녀석과의 싸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딩동댕동'
곧 수업이 끝났고 애들은 우르르 앞을 다투어 빠져나갔어. 난 일부러 가방을 늦게 쌌어. 왜냐하면 쟤 둘이랑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말이야. 다들 집으로 가느라 소란스레 정신없이 떠드는 와중에도 맨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지.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왼편을 쳐다보니 두 녀석도 가방을 주섬주섬 싸고 있더라고 난 될 대로 되라며 녀석들을 바라보면 내 자리로 올 때까지 기다렸어. 좀 이따 다시 옆을 보니 자리에 아무도 없는 거야. 그래서 뒤를 돌아봤지. 그런데 두 녀석 모두 잰걸음으로 막 교실을 나가고 있더라. 나참. 나보고 수업 끝나면 두고 보자더니 그냥 집으로 간 거야. 츄파춥스 때문이겠지? 괜히 빨리 집에도 못 가고 기다렸네. 그래서 제일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왔어. 그럼 마무리는 어떡하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