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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Sep 15. 2021

흔들리는 마음일 땐 콜라 한 잔

나는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나는 친구가 없었다. 그 자리엔 대체로 책이나 영화가 있었다. 딱히 불편하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퇴사한 전 직장이 나에게 준 유일한 걸 꼽자면 사람이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친구 같은 관계가 됐다.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 중 내가 나이가 가장 많은데 대체로 팀의 막내였던 내겐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한 두 살 어린 게 아니라 거의 열 살 터울이 날 정도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동갑내기 친구처럼 지내는데 아마 전 직장의 평어 문화가 한몫했을 것이다.


그중 요즘 정말 영혼의 동반자라고 말하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나와 비슷한 시기 퇴사해 무직의 해방감을 함께 만끽했다. 함께 우드 카빙도 하고 제주 한달살이를 할 땐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며 친구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바느질을 하기도 했다.


친구는 커머스 담당이었다. 물건을 파는 일이다. 나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다. 각자 다른 분야에 있었던 우리는 서로가 알지 못한 정보와 지식을 나누는데 사람을 통해 내 세계가 확장된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주제를 이야기하며 낄낄대다가 심각해지며 6시간 가까이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친구는 말했다. ‘물건을 팔아보는 건 어때?’


잡지사 에디터를 시작으로 내가 했던 업무는 줄곧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사람에 대한 정보, 물건에 대한 정보 그리고 기술에 대한 정보.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이를 판매로 연결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판매의 주체 혹은 도구를 만들 뿐이었다.


그런 내게 판매라는 영역은 미지의 영역이다.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덜컥 생겨난다. 그럼에도 1 가구 1 스마트 스토어 시대를 사는 현대인으로서 ‘나도 뭘 팔아야 하나?’라는 생각은 수면에 잉크가 떨어지 듯 점점 깊숙이 파고든다. 나는 무엇을 팔 수 있는 사람일까?


‘팔고 싶은 것이 아닌 팔리는 것을 팔아라’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유튜버들의 비기와 같은 영상의 제목이다. 영상에서는 데이터를 통해 시장성 있는 아이템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거기에 답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찾은 상품_온수매트가 될 수도, 새치염색약이 될 수도 있다_을 파는 나를 상상해 본다. 과연 행복할까?


문제는 이런 발상에서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팔고 싶은 욕구. 나를 대변하는 물건을 팔고 싶은 욕구. 그래서 나라는 인간이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까지 채워주는 물건. (아마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는 글렀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전 직장의 슬로건이다. 그 회사에서 일을 하면 나도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결론은 사랑하는 일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살 수 없었다. 죽을 것 같은 마음에 퇴사를 결심했다.


글렀다고, 틀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사랑하는 일을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친구가 돌아간 후 콜라를 마셨다. 회사를 다닐 땐 이러다 진짜 알코올 중독이 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맥주를 마셨다. 원래 애주가이긴 했지만 그때 마시는 술은 전혀 맛있지 않았다. 그저 조금 무뎌지기 위해서 술의 힘을 빌릴 뿐이었다. 지금은 맥주 대신 콜라를 마신다. 무뎌질 수 없다. 지금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도 술을 찾기보다는 콜라로 목을 축인다. 살아있다는 온전한 감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두렵지만 한 걸음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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