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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Oct 23. 2021

콘텐츠를 빚는 사람입니다

(나의) 노동의 미래로 일보전진 

<(나의) 노동의 미래>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0000의 김안0라 00인데요~’로 업무전화를 시작하면 업무의 진행 단계가 심플하다. ‘네 기자님~’ 혹은 ‘네 PD님~’ 등이 대체로 듣게 되는 첫 번째 답변이었다. 회사 밖으로 나오면 나를 지칭해줄 수식어들이 사라진다. 어떠한 회사의 어떠한 직함은 직장인이었던 나의 자부심을 높여주던 간판이었다. 그 간판이 없을 때 나란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월 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는 000!’. 성공한 프리랜서를 설명할 때는 흔히 이와 같은 워딩이 쓰인다. 수익이 곧 간판인 셈이다. 저금해 놓은 돈을 야금야금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또한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되어주지 못한다. 



‘구독자 00만 명, 누적 조회수 000회의 유튜버 000!’. 지금으로선 가장 원하는 수식어지만 구독자 30명 남짓인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미지가 실추되고 말 수식어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났다. 그간 여러 유형의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예능 형식의 여행 브이로그, 얼굴이 나오지 않는 감성 브이로그, 얼굴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 영상, 얼굴 없이 목소리만 나오는 영상 등 전문 영역에 특화되어 있지 않은 개인이 할 수 있는 형태의 콘텐츠는 모두 만들어 보았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   



나름 야심 차게 준비했던 영상들의 조회수는 딱 지인들이 봐준 정도다. 이렇게 처참할 줄이야. 



글을 쓰고 영상 편집을 할 수 있다고 좋은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알맹이 없는 콘텐츠로 한두 달 안에 ‘떡상’이 되길 바랐고, 시청자의 기호는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어떠한 매체의 기사, 어떠한 브랜드의 콘텐츠가 아닌 내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스스로가 매체도 되고 브랜드도 되어야 한다. 나는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갔다.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매번 다른 자취집에 가서 룸 투어를 하고 인터뷰도 하는 콘텐츠다. 운 좋게 최근 나도 출연하게 됐다. 만나서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어떤 일을 하세요?'다. 그의 영상을 보자면 집에 대한 정보 외에도 그 집에 사는 이의 직업에 대한 부분이 크게 다뤄진다. '한의사가 사는 집', '커리어우먼의 집' 등. 집을 설명할 때에도 직업은 좋은 수단이다. 나는 전직으로만 나를 설명했다. 이제는 직업으로 나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직업인으로서의 나는 지금 아주 희미한 존재다. 그렇다면 그저 한 인간으로서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아주아주 다원적인 나라는 인간 안에서 하나의 유형을 만든다. 취향은 있지만 돈은 없고 환경을 걱정하지만 아직 물건이 주는 편의성을 거부할 수 없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애석하게도 잘 돌보지는 못하고 제철 음식에 환장한다. 그리고 오래된 옷과 영화를 좋아한다. 이게 나다. 이제 이런 내 생각과 취향을 공유해야 한다.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들의 로망을 대신 실현한다. 



글로 쓰자면 쉽지만 이 과정엔 수많은 변수와 무관심이 있다. 그렇다. 나는 실패하는 중이다. 



회사에 다닐 땐 실패가 두려웠다. 하나의 실패가 이제껏 이루었던 많은 성과를 끄집어 내려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마구 실패해도 된다. 실패를 통해 배운다는 말은 위인전 속에서나 나오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실패를 마구 하며 많은 것을 마구마구 배우는 중이다. 실패로 끝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다시 도전하면 된다. 



물론 수익적인 부분을 묻는다면 유튜브를 통한 수익은 아직 없다. 당분간은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는 가끔 독이 되니까. 얼마 남지 않은 돈이 바닥을 보이면 수익을 위한 일을 할 계획이다. 그게 요식업 알바든 배달이든 상관없다. 알바 경력 10년, 알바 앞에서 두려움은 없다. 무언가를 팔려고도 준비하고 있다. 말하자면 선대 재테크 유튜버들이 명한 계란은 한 판에 두지 말고,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들라는 말을 받들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N잡러다. 그러나 내 수익이 어디에서 나오든 나는 스스로를 프리랜서 콘텐츠 제작자로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할 것이다. 내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여전히 일은 좋아한다. 하루 15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날도 흔한데 이러다 퇴사 후 건강을 더 잃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스스로 직장이 된다는 건 스스로를 잘 경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밥을 먹을 때와 휴식할 때 그리고 자야 할 때를 명확하게 구분해 놓는 것이 좋다(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또한 1인 기업이 된다는 것은 1인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내가 해야 하는 업무만 잘해도 월급은 나오고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혼자 일하기 위해서는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기량을 써야 한다. 수주를 받는 것에서부터 기획, 제작, 영업 그리고 재무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혼자 처리해야 한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직장인으로만 살았던 내게 부족한 부분은 대단히 많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는 할머니가 하신 말을 떠올리며 무서운 구더기를 하나하나 포섭하는 중이다. 



나는 프리랜서 콘텐츠 제작자이자 유튜버다. 콘텐츠를 빚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무형의 콘텐츠를 영상에서 글로, 글에서 영상으로의 확장성을 실험하며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그리고 나는 N잡러이고 디지털 노마드다. '본캐'와 '부캐'의 구분은 딱히 필요 없다. 또한 나는 부품이다. 회사의 부품은 아니지만 사회 속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 독특한 기능을 가진 부품이다. 



아마도 내가 프리랜서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일본 작가인 이즈미야 간지의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가 은연중에 있었던 듯하다. 이제는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생겼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아주 큰 감명을 받았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고 이를 통해 인간은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직업이 아닌 예술을 통한 자아실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큰 골자였다.  

 


내게 인상 깊었던 내용은 자아실현의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이고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은 결국 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노동이 찬양되어 왔고 자아실현이 ‘배부른 소리’, ‘대책 없는 소리’로 치부되었던 것은 노동을 찬양하는 자들에 의한 것이라고도 그는 말했다. 이 내용을 읽고 지금껏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가 나는 돈에서 행복을 얻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나 하고 생각해 보게 됐다. 여전히 이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비싸고 좋은 것이 주는 행복도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아직 실현해야 할 내 자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삶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다. 그러나 직장이 없는 삶을 시작하고 알게 된 나에 대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나는 이제야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나는 나의 삶을 탐험하며 내 행복이 무엇인지 실험하는 중이다.   



안 해보는 것보다는 해보고 실패하는 것이 낫다. 나는 날마다 실패하면서 일보 후퇴 이보 전진 중이다. 아무튼 전진 중이다. (나의) 노동의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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