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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때로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2015.07.30. 수요일

이튿날 밤이 되자 이는 다시 열이 올랐다.

이번에는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밤새 조금씩 울고 뒤척였다.

여전히 잘 먹지 않고 자주 칭얼거렸지만 낮이면 활발하게 잘 놀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부동산 사이트를 뒤졌다.

Freie scholle에서 괜찮은 집이 하나 나왔다.



내가 집 구한다고 서류를 돌렸던 회사 중에 하나이다.

그 뜻은 일단 내가 정부보조를 받는다는 이유로 집을 볼 기회조차 없이 까이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나는 당장 전화를 걸었고, 그쪽에서는 나더러 회사로 직접 와서 면담하라고 했다.

나는 정말 오늘은 방에서 쉬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괜찮은 집을 찾기도 어려운데, 내가 집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더 적었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오늘 가지 않으면 내일은 이 집이 이미 나가버리고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그 와중에 다시 두 군데 집을 더 보고, 전화를 걸었는데 두 군데 다 거절이었다.



역시.. 오늘 가서 그 집을 보고 오는 게 맞았다.









그 사이 집이 나간 건 아닐까 두근두근하며 프라이에 숄레 회사에 도착했다.



아직도 이름 기억한다.

나를 상담해 준 그 직원 아줌마.



집 주소를 대며 이 집을 보러 왔다고 했더니 그 직원 아줌마는 그 집은 이미 예약이 되어있는 집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이미 자기네 회사를 통해 집을 구해 살고 있는 고객들끼리 서로 집을 바꿔 이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 집이 그런 경우라고 했다.



그래서 이미 예약을 한 사람이 집을 보고 거절을 해야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그런 경우도 있다니...

몰랐다.



그래서 그럼 어떡해야 하냐고 했더니 일단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니 그러면...

내가 전화로 물어봤을 때 그렇게 말을 해주던가...

그랬으면 아픈 애 데리고 나도 아픈 몸 이끌고 날씨가 이렇게 거지 같은데 부랴부랴 안 나왔을 거 아냐...



사무실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며 창 밖을 보는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너무나 힘든 한 주였다.



핸드폰이 먹통이었고, 이유도 모른 채 계약도 거절당했고, 비바람을 맞으며 온 시내를 싸돌아다니느라 내 새끼는 열감기로 3일째 아팠다.



어제는 노망난 노인네가 나에게 치근덕거렸다.



며칠 째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정말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런데 창 밖에는 비가 내렸다.

다시...



영원히 해는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여름은 끝나고 아직 7월인데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 게 겨울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이 동네에도...

그리고 내 인생에도...



그 짧은 순간 나는 이 모슨 생각들이 스쳤고 눈물이 솟구쳤다.

주체할 수가 없어서 소리만 안 냈지 정말 엉엉 울었다.









직원 아줌마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어쨌거나 나는 이 회사를 통해서 집을 얻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미친년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이성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아이가 많이 아픈데, 우리는 보호소에 살고 있어서 내가 아이를 잘 돌봐줄 수가 없다고, 그래서 집을 빨리 구해야 하는데 아무도 우리에게 집을 보여주지 않고, 한 달 만에 온 기회가 이렇게 날아가버려서 너무 슬퍼서 그렇다고, 미안하지만 이해 좀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자 직원 아줌마는 아이가 많이 아프냐고 물었고, 나는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많이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 중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난 한 달 동안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여기저기 내 사연을 알리고 다녀보니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안쓰러워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

눈은 나를 보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며 지루해하는 사람들.



어차피 이 사람에게는 나도, 그렇고 그런 사연을 가진 고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최대한 침착하게 미친년으로 오해를 사지 않을 정도만 대답했는데, 이 아줌마는 조심스럽게 왜 보호소에서 살게 됐는지 실례가 안된다면 물어도 되냐고 했다.



이 사람은 전자였다.



나는 간결하게 요약해서 왜 보호소에 가게 됐는지 브리핑을 했고, 그래서 정말 집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물론 독일 사람들 스타일대로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가면서...



아줌마는 당장 다른 집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고 금세 다른 집을 찾아냈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돌려, 여기 젊은 여성 한 분이 앉아있는데 내가 정말 돕고 싶은 사람이라며 지금 당장 이 집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해했고, 아줌마는 책상 위의 지도를 가리키며 아주 따뜻하게 내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우리 회사 위치는 여기고, 잠시 뒤 내가 보러 갈 집은 여기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위치도 아주 좋고, 빈 집이니 한번 보러 가보라고 했다.

없던 기회가 그 자리에서 생긴 것이다.



나는 정말이냐고 물었고 그 아줌마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는 너무나 고맙고 기뻐서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같이 집을 보러 가 줄 동료는 10분 이내로 올 테니 그동안 커피나 마시며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유모차를 밀고 나갈 수 있도록 사무실 문을 열어주며 밖에 있는 비서에게 "여기 이 Gute Frau에게 커피 한 잔 타 주라"고 말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다른 고객들이 "Gute Frau"라는 말에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고마웠다.



그 아줌마는 나에게 행운을 빈다며 인사를 했다.

살다 보니 이런 행운도 있나 보다.

얼떨떨하면서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젊은 남자 직원과 그 집을 보러 갔다.

아무튼 내가 보러 간 그 집은 정말 위치가 훌륭했다.



집 근처에 우반 역이 걸어서 5분, 내 친구들이 사는 동네까지 가는 버스가 역시 5분 거리에 다녔고, 그리고 데엠, 레베, 약국, 비오 마트가 쇼핑몰처럼 걸어서 3분 거리에 모여있었다.



또 주택가라 정말 조용했다.

그리고 동네 자체가 한적하고 깨끗하고 집 위, 아래로 걸어서 5분 거리에 큰 공원이 2개나 있었다.



집은 2층(한국식으로는 3층)인데 개인 지하실도 있고, 세탁실도 따로 있었다.

방은 3개(한국식 2개)에 셋 다 아주 큼직했고, 욕실에 욕조도 있고, 바닥이랑 벽 상태도 깨끗했다.



입주 날짜도 9월 1일로 빨랐다.

지금 나오는 집들은 보통 10,11월이 입주 날짜이기 때문이다.



단점은, 발코니가 없고, 방 하나가 바닥재가 깔려 있지 않아 시멘트 바닥 위에 내가 직접 깔아야 한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주방이 정말 심하게 작은 것이었다.



다른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주방 때문에 지금도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작냐면 한 두 평 정도 되는 것 같다.

한쪽 벽에 싱크대 하나랑 가열대 하나만 들어가면 아무것도 넣을 공간이 없다.



방이 3개니 그중 하나를 다이닝룸으로 써야 한다.

그렇더라도 주방이 해도 너무 작았다.



집을 보고 오는 내내 정말 고민이 되었는데, 이 집은 나 말고도 월요일에 보기로 한 사람이 둘이나 더 있다고 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지원은 했다.

월요일까지 사람들이 모두 집을 보고 난 뒤,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회사 측이 세입자를 정해 화요일 날 통보를 해준다고 한다.



물론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



아직도 고민 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만약 화요일 날 이 집이 나에게 돌아온다면 이사를 적극 고려중이다.

어떻게 될지 결과는 나도 정말 궁금하다.



과연 우리는 이사를 할 수 있을까?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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