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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Oct 06. 2024

엘리스와 파란 약

몸이 커지는 파란약을 선택했던 엘리스는 한창 핑크를 좋아할 나이였을텐데 말이다.


굳이 시퍼런 약을 입에 털어놓고 본인이 선택한 문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으니 그 애도 어디가서 지지않고 하고 싶은 말을 탈탈 털며, 콧대 높게 세우고 열리는 문 족족 작은 발을 성큼 들였을 것 같다.


두개의 문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무언의 압박만큼 자신을 시험에 빠져들게 하는 일이 없다. 방에서 뒹굴거리고 싶은 나를 기어코 엑셀 페달을 밟아 초록색을 눈에 담는 선택도, 굳이 늘어져 있고 싶은 몸뚱이를 일으켜 일주일을 살아낼 반찬을 만들어 내는 의지도 사실 어쩔수 없음이 만들어 낸 압박이지만 항상 져주고 싶은 의지이다.


파란 알약은 나에게 달콤하지만, 몸 가득 세포에 긴장감을 심어주었다.


미국 남부의 여름은 뜨겁다 못해 타들어갈 정도로 태양이 작열하며 골고루 염을 토해내어 준다.

유난히도 따갑던 이번 여름에 수영장 한번 들어가 보지 못하고 마무리 하겠다며 볼멘소리를 토해내던 아이의 살갗은 유난히도 하앴다. 근방의 아이들은 인종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그을린 피부가 붉은 색이거나 미끄러운 갈색을 띄곤 했다. 투명한 피부색은 이 곳에서는 휴가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빙충이 정도에 해당하니까.


익사할 걱정에 앞선 나는 아이를 물발치에도 못가게 하던 중이었니, 본인도 참 잘 참는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부름에 응하지 못했다. 어느 날 울먹거리는 아이를 보지 못한 채 하기 어려웠다. 가끔 보면 아이의 눈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온전치 못한 엄마가 피곤한 하루에 절여져 파김치가 된 날에는 본인에게 해댈 볼멘소리가 걱정스러운 노란색, 약기운에 하루가 유난히 늘어져 시계만 보다 지쳐 집에 돌아온 날은 짙은 회색과 파란색 그리고 익살스러움이 가득한 장난끼에 '엄마 일루와바 엄마엄마엄마' 를 수십번이고 외쳐대며 찾는 희한한 중이병 아이의 눈은 핑크빛과 사랑스러운 연두색이 섞여 있다.


그 날 아이는 뜨거운 태양아래 십년을 넘게 그래왔듯 몸을 그을이며 익어가도록 물가에서 놀았다고 한다. 눈에는 미련 한방울 남기지 않고 신이 나서 팔딱거리는 등푸른 생선처럼 몇시간이고 이어 놀았던 아이는 '엄마엄마'를 찾는 그 아련한 핑크색 한방울이었다. 나도 서늘했던 마음이 풀어져 저녁을 먹으며 얼마나 아이의 재잘거림을 들었나 모른다. 참 모처럼 그리고 간만에 서로가 늘어진 채로 자기 이야기를 지껄이던 날이었다.


서로 누워 팔배게를 하고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숨을 색색거리며 잠이 든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나도 잠을 청하려던 차였다. 갑자기 아이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언제와도 끔찍이도 싫은 불청객.


습관처럼 핸드폰의 리코딩 기능을 켜고 아이의 발작을 조용히 비디오에 담는다.


이번에는 의사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파란색 약을 처방했다.

참 정 안가게도 투박하게 생긴 퍼런색 알약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색깔이었다. 저 작은 한일이 몸에 들어가면 눅진하게 피에 녹아 뇌까지 간다는 거지. 저 동그랗고 작은 하나로 문 하나가 열린다면.


양날의 칼이 서리는 매일에, 우리는 성장했기를


감기약도 잘 안먹던 아이에게 먹여야 하는 그 한알이 그런데.. 보험 적용이 안된단다.

수년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먹여야 하는 약이 고작 몇알 들어있고 한화로는 60만원을 결제해 달라고 했다.

맙소사. 의사를 만나는 것도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수십만원을 들여 철저한 계획 하에 만나는데 이제는 평생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약이 저렇게도 애를 먹이니, 참 정떨어진다 그지. 의료 민영화 개판의 끝을 보여주는 미국이라지만 내 이야기가 되고 보니 정말 파산각이다.


급하게 보험사에 전화해서 pre-authorization을 하고, 약국 사이에서 가까스로 실랑이를 거듭한 후에야 귀하신 약을 들여올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몇 알들어 있지 않아도 감사해야 했다. 콧구멍 하나에 쏙 들어갈 이 놈의 약하나가 마지막 잎새처럼 한 알이 줄어드는 것이 두려워 그나마도 없는 날에는 저 침침한 곳에서 얼마나 가슴을 졸여야 할까.


미국에서는 백만장자도 아까워 하는 돈이 의료비다.

억지로라도 무거운 몸땡이를 이끌고 일터에 향해야 하는 이유도 의료보험이다.

어쩜, 아이가 독립해서 본인이 자립하기 전까지 나는 일을 그만두지 못할수도 있겠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일로 급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참 극단적이긴 한 건 나도 아는데, 이럴 때마다 눈덩이 같은 불안감이 몰려와 내 머리는 널을 뛰기 시작한다. 시원한 고속도로를 매일같이 질주해야 나오는 일터 덕에  출근시간마다 혹시나 내가 잘못되면 어쩌나 수십가지는 그려본다.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어쩌다 일어나는 큰일이나 사고는 사실 뻥튀기처럼 우리를 한방에 저쪽으로 날려버리지만, 정작 무릎팍에 힘을 빼는 쪽은 그 이후에 마주하는 우리의 매일이다. 전쟁 통에 난리로 정신없을 때에 잃어버리는 청각은 두고두고 젖이 모자라 우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서러운 것과 비슷하다.


매일같이 답은 없다.


이 널찍한 땅에 피붙이라고는 불안한 핏덩이인 애미 뿐일건데.

솔직히 나는 잘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는 저 딴 어른이다.


병적으로 기대는 것도 잘 못하고

잘만 나불대는, 어릴 때 생각하던 믿음직한 어른과는 거리가 멀다.


습관적으로 달달떠는 발의 장단 그리고  손가락 끝은 차가운 불안함에 그대까지 잠식할지라도,

그래서 혼자 읽는 글이라도.

무섭다고 글을 쓴다.


가끔은 불안해서 머리가 찢겨 나갈 것 같다고 쓰는 글에


누군가가 건네는 따뜻한 한방울의 말에 금방이라도 눈알에 댕그러니 맺힐테지만.


가득담은 물기로 글을 쓴다.

오늘은 나의 글을 읽어주는 그대들에게 기대어보는

내겐 별로 없는, 고마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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