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생 바이올리니스트 대표님 이야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TTDI라는 동네가 있다. 쿠알라룸푸르의 부촌이자,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동네.
한국인 남매가 TTDI에 레스토랑 겸 카페를 오픈했다고 해서 남편과 함께 놀러 갔다. 가기 전에 왓츠앱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었는데 실제로 보니 엄청 어려 보이는 대표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해 오셨다는 화덕에 갓 구운 피자, 꾸덕한 소스가 일품인 크림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인터뷰를 위해 대표님과 마주 앉았다.
서울도 아니고 쿠알라룸푸르에서 오픈을 결심한 지 3개월 만에 부동산 계약하고, 인테리어 하고 매장을 세팅해서 레스토랑을 오픈했다는 그녀는 00년생, 만으로 24살이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다 요식업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그녀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반짝반짝 빛났다.
로리 : 대표님 이력이 굉장히 독특해서, 너무나 궁금해요.
지나 : 어릴 땐 제 인생에 음악밖에 없었어요. 바이올린을 했거든요. 음악을 하면 예중, 예고, 음대가 공식이잖아요. 저도 당연히 음악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고 입시에서 첫 좌절을 맛봤어요. 다행인 건 그때 부모님께서는 저를 나무라기보다 너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 거다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저는 그 길로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던 중국 유학을 결심했고, 검정고시를 본 뒤에 베이징중앙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했습니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일단 가서 부딪히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중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고, 또 다른 문화도 보게 되었어요.
로리 : 그럼 요식업으로 어떻게 전환하게 된 거예요?
지나 : 코로나가 터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고, 비대면으로 대학 수업을 듣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의 F&B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3년 만에 매장 매니저까지 올라갔고 나중에는 회계, 인사 등 회사 운영 전반을 맡게 되었어요.
가족 회사라 편하겠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없애고 싶어서 직원들이 쉴 때도 쉬지 않으며 더 악착같이 일했던 것 같아요.
로리 : 그럼 한국에서 계속 사업을 확장해도 됐을 텐데, 쿠알라룸푸르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지나 : 한국의 자영업 시장이 굉장히 어렵다는 걸 체감하면서, 프랜차이즈를 꼭 한국에서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휴가 때마다 와서 익숙했던 말레이시아의 상권을 둘러보기 시작했죠. 특히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서로 존중해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베트남이나 태국도 후보지였지만, 중국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한몫한 것 같아요.
로리 : 토요일에 공연을 하던데, 특별히 생각하시는 몽키 커피 컵의 컨셉이 있으신가요?
지나 : 저는 항상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은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도 크고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하다가 제가 가장 잘하는 '음악'과 '음식'을 결합한 장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몽키 커피 컵'입니다.
제가 음악을 해왔기에 음악 하는 친구들이 무대에 설 공간이 없어서 겪는 어려움을 엄청 잘 알고 있어요. 이곳이 그들에게 자유롭게 연주하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무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매달 디제이를 초대하거나 연주팀과 함께 공연을 기획하고 있고, 저도 퇴근하면 틈틈이 연주 연습을 하고 공연도 같이 한답니다.
로리 : 어린 나이에 해외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대표님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지나 : 원동력은 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 공간 안에서 제가 기획한 음악과 콘텐츠를 선보였을 때, 손님들이 '오늘 하루가 정말 특별했다', '다음에 또 이런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실 때 살아가는 이유를 느껴요.
단순히 음식을 파는 장사를 넘어, 제가 가진 문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만족감을 느낄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로리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좌우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나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택과 집중이에요. 어떤 일이든 선택의 순간이 오는데, 그 선택을 한 후에는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더라고요.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너무 정신이 없고 바빠서 중요한 게 뭔지 가끔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처음 말레이시아에 와서 무엇을 하려고 했지?'라는 목적을 다시 떠올리며 한곳에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어요.
중국으로 공부하러 떠나고,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도전하고 결국 해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거운 마음이었다.
누가 말리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상상하고 포기해버렸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녀를 만난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모험심과 도전 정신을 잃지 않을 것. 더 늦기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연결하고, 세상에 보여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