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뱃살과 산란기와 꽃 피는 시기와 봄과 여름의 사이

by 지음

고등어의 뱃살같이 찬란한 계절이에요. 라는 말을 해석하지 못해 몇 날을 전전긍긍이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덧댄 문장이라는 것은 알 것 같지만. 그 고등어의 뱃살이라는 것이 내장을 싸고 있는, 바로 앞. 우리의 배라 부를 만한 부분에 해당하는 얇고 기름진 부분을 뜻하는 것인지(내장은 아니겠지?!?). 정확히는 등이지만, 머리 가슴 배 꼬리로 나뉘었을 때의 배에 해당하는 곳인지. 부터가 헷갈렸다. 거의 껍데기나 다름 없는 부분의 살을 내가 좋아 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사람들이 가장 고소하고 맛있어 하는 부분은 고등어의 등살 이기도 하기에. 그 혼란은 일반화 속에 가속되어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봄과 여름 사이. 그 찬란하고 간질간질한 계절에 연결해야 하는 숙제라니. 여간한 문제가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제주도에서 올라온 남쪽 사나이. 고등어가 귀한 반찬으로 여겨졌던 적은 없었거니와, 서울 고등어의 비릿함을 맛보기 전엔 제주도의 고등어의 맛있음을 느낀적이 없다. 은갈치의 아래로나 여겼지. 게다가 적당히 나이도 들고 보니, 금태와 돌돔. 주도로와 오도로의 맛을 알았지 뭔가. 그렇다고 기름기가 꽉찬 고등어의 뱃살이 맛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것의 비유로 등장시키기 위한 서사가 하나도 쌓여 있지 않은 상태다. 굳이 좋았던 기억과 연결 하자면, 엄마 아빠와 함께 둘러 앉아 먹던 추억 정도가 있을까.


침착하자. 나이 먹음을 장점으로 써먹으려면, 늘 유연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딱 봐도 각이 나오지 않는 정공법 대신 이전에 모아왔던 감정을 모아 압축의 밀도를 통해 시제를 통과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로가 첫 투고이니 좀 더 빠른 주고 받음이 상호 신뢰와 기쁨을 증가시키리란 믿음 하에. 잘 마쳤고, 나름 만족한 대답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몇 일을 이렇게 고민 하고 있다. 고등어 뱃살, 산란기와 제철, 꽃 핌과 푸름이 함께하는 늦 봄, 초 여름의 연결이 당장 제출 할 만큼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감각적인 연결이 드러나려면 시간을 묵혀야 함에도 이렇게 뽑아 들고 노려보는 것이다.


좋다. 뭐 언제는 단번에 해결된 게 있었나. 고등어 뱃살의 기름기를 뽑아내어 여름의 반짝임을 만들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조금 더 고등어를 먹고 두뇌 회전에 좋다는 오메가 쓰리를 섭취해야 겠다. 정 안된다면 시제 제출자의 경험을 인터뷰 하는 수밖에 없겠지. 고등어가 가장 좋다는 사람에게 더 좋은 물고기에 대한 꼰대적 자랑 없이 감각을 뽑아낼 자신은 없지만. 숨을 낮추고 해내야지. 그런 과정을 거쳐, 나도 언젠가 늦봄 초여름의 부드럽게 반짝이는 상큼함을 푸른 물결속을 달리는 고등어의 빛깔로 묘사하는 날을 마주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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