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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Nov 26. 2022

그대, 기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고민할 때, 결혼은 거리에 있는 아무와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와 결혼을 하더라도 나와 다른 사람이므로 맞춰가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스스로의 다짐 같은 최면이었다. 뭐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지나쳤다 한들 그 또한 거리에 있는 아무였을 테니.

    사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그의 매력을 잘 몰랐다. 그래서 가끔은 그를 낮게 평가하기도 했다. 그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채, 이전의 그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 결혼 준비가 매끄러웠다는 표면적인 정황과 별개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는 나 스스로의 마음은 용기이고 결단이었다.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결혼을) '결심' 했다는 단어를 사용했다. 뒤이어 마음을 터놓는 이들에게는 이혼도 언급했다. 혼인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혈연이 아닌 타인이므로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관계이기에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다짐과 함께.

    신랑은 무척이나 과묵한 사람이다. 주례를 서 주신 나의 은사님께서는 '결혼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단점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이런 다짐과 결단으로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 그의 과묵함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던 그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 같았다고나 할까. 그때 처음으로 우리는 다투었다. 다툴 것도 아닌데 나의 말도 안 되는 투정을 그는 묵묵히 받아주었다. 그때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다.

    기대감 0의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신기하게도 신행에서 돌아온 이후 그의 장점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선택한 나도 인정하기로 했다. 사람의 모든 모습은 동전의 앞뒤면과 같아서 단점이 장점이 되는 때가 있고 장점이 단점이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을 결혼 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과묵하지만 나의 존재에 대해 온전히 신뢰하는 신랑의 태도는 내 안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묵직한 추가 되어주었다. 나라는 존재,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그의 사랑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또한 사랑의 한 형태임을 깨닫고 안온한 마음에 기대어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지금도 신랑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기대가 없기에 무거운 돌을 매달아 놓을 필요가 없다. 마음이 나 홀로 부풀어 오를 일도 없고. 내게 이 소중한 인연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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