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기독교는 원래 억압받는 민중의 운동이었다. 기독교는 노예와 해방된 노예,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빈민층, 로마에 의해 예속되거나 흩어진 민족들의 종교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엥겔스
민중 신학자인 안병무 씨는 마가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ὄχλος, ochlos)가 단지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억압받는 민중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였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클로스(ὄχλος, 민중)만을 사랑한다고 주장한다. 오클로스(ὄχλος, 민중)는 예수님이 늘 가까이하셨던 가난한 자들, 압제 받는 자들, 병들 자들을 의미하는데 세리와 창기 그리고 죄인들이 거기 포함된다고 한다. 안병무 씨의 말을 잠깐 살펴보자.
“민중을 빼고 갈릴래아의 예수를 생각할 수 없으며 복음서의 민중은 예수를 빼고 생각할 수 없다. 예수는 민중의 거울에 불과하다. 복음서의 예수는, 그러므로, 어떤 의미로나 단독자가 아니라 ‘더불어’의 존재이다. 예수 이야기 따로 있고, 민중 이야기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 ‘우리’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는 예수와 더불어 민중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는 예수의 개인 전기가 아니라는 것을 수긍하는 대신 그것이 예수의 민중 운동사임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
안병무 씨는 오클로스(ὄχλος)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이 아주 간단하게 민중으로 대입하여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오직 그들만 편애하신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목수(τέκτων)로서 명백히 갈릴리의 중산층이었다. 그의 제자들중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의 부유층으로 자기 배를 소유하고 품꾼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았다. 레위는 세리였고, 베드로 역시 가난하다 말할 수 없다.
더욱이 민중 속에 세리를 포함한 것은 자가당착적 모순이다. 세리는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자로서 소위 민중의 적이었으며 민족 해방을 부르짖는 열심당의 제1차 암살 타깃이었다. 민중 신학자들은 자기들의 이념적 근거를 세우기 위하여 성경을 무리하게 오역하고 있다. 그들은 마가복음 이외에는 다른 복음서들을 민중신학적 근거가 없다고 일절 무시한다.
사회주의 학자나 민중 신학자들은 초대 기독교 역시 로마의 노예와 빈곤한 대중들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그들 회중이 육체를 따라 지혜롭고 권세 있고 신분이 고귀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에 더욱 힘을 얻었다.(고전1:26) 한동안 역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의견에 동조하였다.** 물론 기독교가 약자들을 품어 안고 위로하며 그들을 사랑하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최하위 계층만 선교대상으로 삼은 것은 결코 아니다. 기독교는 매우 초기부터 상당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 1929년 고린도에서 발굴한 새김 문자와 성경을 근거로 고린도 시의 재무관 에라스도가 예수를 믿었고 바울과 함께 전도까지 한 사실을 학자들은 공히 인정한다.(롬16:23, 행19:22, 딤후4:20) 초대교회에는 에라스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도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빌립보 감옥의 간수도 예수를 믿었다. 초대교회 자기 집을 교회로 제공한 사람들이 적잖은 데 빌립보의 자주 장사 루디아, 라오디게아의 눔바, 고린도의 디도 유스도와 스데바나, 에베소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데살로니가의 야손, 빌레몬 같은 사람이 있다. 앞서 사도 바울이 문벌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은 반대로 어느 정도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가난한 민중만을 위한 교회는 아니었다.
실제로 바울의 전도 여정을 살펴보면 가난한 시골 마을만 돌아다니며 전도한 것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도시를 거점으로 하여 전도하였고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전도 대상자로 삼았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 역시 데오빌로 각하에게 글을 쓰고 있음을 밝혔다.
사실 누가는 예수님의 직계제자는 아니었다. 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누가는 안디옥 출신으로 교육을 잘 받은 의사로 여겨진다. 성경에 누가란 이름이 딱 세 번 등장한다. 빌레몬서 24절에 바울은 누가를 자신의 동역자로 소개한다. 골로새서 4:14에서 누가는 사랑받는 의사로 소개하고 있다. 디모데후서 4:11에서는 누가가 바울의 곁을 지키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쓰면서 분명하게 밝히기를 자신은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여러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것을 철저히 조사하여 차례대로 기록하였다고 썼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누가는 1인칭 복수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이 사도바울 선교팀의 일원임을 암시한다. *** 그렇지만 바울의 선교 여정 전체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으며, 예수님의 행정을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우리 중에 일어난 일들”(눅1:1)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비록 목격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있는 집단 즉 교회에 속한 자로서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 밖에 있는 데오빌로에게 글을 썼다. ****
데오빌로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데오빌로(Theophilus)의 뜻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란 뜻으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 ‘각하’(most excellent)나 ‘데오빌로여’(O Theophilus)과 같은 말은 상당히 어색하게 들린다. 따라서 데오빌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실제 인물이었으며 이방인 남자였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 혹자는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그의 아내는 유배형에 처해지고, 자신은 사형당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사촌이며 집정관인 플라비우스 클레멘스(Flavius Clemens)로 보는 견해도 있다.******
데오빌로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누가가 처음 성경을 쓸 때부터 로마의 중산계층과 상류계층에 대한 선교적 목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기독교가 결코 로마의 제도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복음의 전파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였다. 누가는 곳곳에서 로마의 공직자들이 복음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아가야의 총독 갈리오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왜 고소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다른 총독 서기오 바울은 복음에 대단한 호의를 보였으며, 에베소 시장도 바울에게 호의를 보였고, 심지어 바울을 호송하는 선장도 바울의 편에 섰다. 아그립바와 베스도 역시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더라면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였다. (행26:32)
누가의 목적이 로마의 권세자들에게 복음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쓴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초대 기독교가 로마의 기득권층을 전도 대상자로 두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며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가난한 자로부터 시작하여 중산층과 일부 고위층까지 모두 포괄하였다. 초대 기독교는 그 출발부터 매우 보편적이었다.
주(註)
* 갈릴래아의 예수 / 안병무 지음 / 한국신학연구소 / 1993년 / 138쪽
** 기독교의 발흥 / 로드니 스타크 지음 / 손현선 옮김 / 좋은 씨앗 / 2016년 / 53쪽
*** 사도행전에는 흔히 ‘우리(we) 단락’이라 말하는 것이 네 개다. (행16:10-17, 20:5-15, 21:1-18, 27:1-28:16) ‘우리 단락’을 근거로 해서 누가의 행적을 추측한다면 누가는 처음에는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하였다가 바울이 빌립보에 돌아왔을 때 다시 등장하며,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에 사도와 동행하였다가 가이사랴에서 빌립과 함께 머문다. 그리고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간 감옥생활을 한 후에 - 이 기간에 누가의 행방에 관한 분명한 자료는 없다. - 바울을 따라 로마로 가서 그와 함께 배가 파선하는 것을 체험하였다.(신약개론 / 도널드 거스리 지음 / 나용화, 박영호 옮김 / 기독교 문서 선교회 / 1992년 / 110쪽)
**** 사도행전의 구조와 그 주요 내용 / 정훈택 씀 / 두란노 하우주석 사도행전 / 두란노 / 2007년 / 14쪽
***** 누가 신학 연구 / R.E.O. 화이트 지음 / 김경진 옮김 / 한국로고스연구원 / 1996년 / 34쪽
****** 라이프 성경사전
1. 초기 기독교의 발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