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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15. 2016

용감하게 죄를 지으라!

종교개혁 500주념 기념 시리즈 3

1521년 8월 1일 루터는 개혁 동지인 멜란히톤 (Melanchthon Philipp 1497~1560)에게 편지를 보낸다.

“Esto peccator of Pecca Fortiter.

Pecca Fortiter, sed crede fortius”

“용감하게 죄를 짓는 죄인이 되어라!

용감하게 죄를 지으라. 그러나 용감하게 믿으라.”


루터는 혹시나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친구 멜란히톤에게 충격을 주고 과감히 행동하도록 촉구하기 위하여 이렇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죄를 짓게 됩니다. 이 세상은 의로움이 사는 장소가 아닙니다. ... 당신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치러내신 어린 양의 대가가 그렇게 작다고 생각하십니까? 담대히 기도하십시오. 당신 역시 큰 죄인입니다. 죄인이 되십시오. (행동하십시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신뢰가 더 크게 하시고 그 죄와 죽음과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를 짓는데 이 세상은 정의가 거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결점이 하나도 없는 선하고 순수한 것은 없다. 어떤 결정,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때로는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때로는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로 후회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머뭇거리며 주저앉아 있을순 없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했다. 성경 어느 곳을 찾아보더라도 왕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자기 몸을 더럽히는 것이란 구절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명령하신 것도 아니고, 율법에 명시된 것도 아니다. 포로로 끌려온 모든 유대인이 다니엘처럼 행동한 것도 아니다. 다만 다니엘 혼자 그렇게 마음먹은 것이다. 비록 포로로 끌려 왔지만, 바빌론의 물질문명과 풍요로움에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반면에 그는 자기 이름을 벨드사살이라 고쳐 부르는 것은 허용하였다. 그 이름은 명백히 바빌론의 이교적인 이름이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에 목숨을 걸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 이름을 일본식으로 불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다니엘은 이름바꾸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또한, 그는 바빌론의 학문과 서적을 공부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을 내었다. 이를테면 일본 동경제대나 일본 육사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바빌론의 학문이란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환상과 꿈을 해석하는 점성술의 일종이었다. 그는 성경 지식 대신 바빌론의 점성술을 배웠다.


다니엘이 볼 때 왕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나, 이름을 바빌론식으로 바꾸고 바빌론의 점성술을 배우는 것이나,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도 죄이고 저것도 죄이다. 바빌론이라는 불신 사회에 살면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다니엘은 선택해야 했다. 그는 스스로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일평생 그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바빌론의 점성술을 배우고, 바빌론의 이름을 가지고, 바빌론 말을 한다 할지라도 음식만큼은 내가 가려 먹겠다는 결심이었다. 다니엘은 루터가 권면한 대로 용감하게 죄를 지었다. 그는 자신이 결심하고 나아가는 길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택을 피할 수 없을 때 그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결정을 용감하게 밀고 나아갔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다. 유대인 학살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보면서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였다.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죄가 없음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자신은 단지 군인으로서 나치 독일에 충성을 맹세하였으며 그 맹세를 따라 주어진 명령에 성실하게 복종하였을 뿐이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결론짓기를 죄악은 생각 없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주어지는 명령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것이 부당한지 아닌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기계처럼 순종하였던 것이 죄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 역시도 생각 없이 행동하고 살아가는 죄를 범하는 죄인들이다. 악은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다. 생각 없음이 죄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하였는지, 자신의 결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바로 죄다.


다니엘은 자신의 선택이 모두 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죄악된 세상인 바빌론에 살면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루터의 충고처럼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따라 용감하게 전진하기로 하였다. 그러니까 루터의 충고는 자신의 결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인식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다. 내 결정은 무조건 선하고 바르다는 착각을 버리고 어차피 죄 된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적어도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알고 나가라는 뜻이다. 그래야 자신의 결정에서 나오는 문제점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믿는 바를 따라 행동할 때 은혜의 주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자신을 품어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도 죄다.

역사의 순간에는 항상 결단이 필요하다. 선과 악이 뒤엉켜 있는 이 세상에 완벽하고 순수한 선은 없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찾기도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 독일의 히틀러가 하루에도 수천 명의 유대인을 죽일 때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고민하였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히틀러를 처리해달라고, 아니면 히틀러가 회개하도록 기도할 수도 있었다. 물론 기도한 대로 히틀러가 갑자기 죽을 일도 없고, 회개할 일도 없다. 숨죽이며 기도하는 동안 매일같이 유대인은 어김없이 죽어간다. 본회퍼는 자신이 가만히 엎드려 기도하는 것도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히틀러 암살 운동에 가담하였다. 히틀러를 죽이는 것도 역시 살인죄이지만, 그러나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본회퍼로서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같이 천 명씩 죽도록 할 것이냐 아니면 히틀러를 암살하는 일에 가담할 것이냐?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생명은 보전할 수 있다. 독일의 귀족 가문으로 편안하게 먹고 살 수도 있다. 반대로 히틀러 암살 운동을 하다가 잘못되면 자신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는 크리스천의 양심으로서 히틀러 암살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다. 비록 자신의 결정이 완벽한 선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루터의 충고처럼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믿는 바를 향하여 용감하게 나아가기로 하였다. 안타깝게도 암살은 실패하고 본회퍼는 나치의 손에 총살당하여 죽고 말았다. 본회퍼는 루터의 말을 이렇게 바꾸었다.

"Sin boldly, but not cheaply "  

"대담하게 죄를 지어라, 그러나 싸구려 죄는 아닌!"


오늘 우리도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을 강요받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혹여나 자신이 죄를 지을까 봐 머뭇거리며 엎드려 기도만 하기로 했다면, 멜란히톤에게 일어나 믿는 바를 향하여 과감히 전진하도록 충격 요법을 사용했던 루터의 충고를 들을 필요가 있다. 크리스천으로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나라가 안정되기를 소망하며 엎드릴 수도 있다. 루터의 충고를 따르자면, 그렇게 기도할 때 이 나라가 어떤 길로 갈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엎드려야 할 것이다. 정말 안정된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나라가 점점 더 혼란으로 갈 것인지?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바른 판단력을 가졌는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나를 이끌만한 리더십이 있는지? 여러모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을 향하여 하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 역시 다양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하야하면 나라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은 아닌지?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른 태도인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우리의 선택에 따른 책임은 우리가 짊어지겠다는 각오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택했다면 주저함 없이 용감하게 그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용감하게 죄를 짓는 죄인이 되어라.”

루터의 충고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참고도서

Sin Bravely: A Joyful Alternative to a Purpose-Driven Life / Mark Ellingsen / Bloomsbury Academic / 2009년 / 148쪽


본회퍼의 또 다른 이야기들

8. 용감하게 죄를 지으라!

7.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6. 두려움 앞에서 떠는 본회퍼

5. 레비나스와 본회퍼

4. 니체, 히틀러, 본회퍼

3. 온 몸으로 히틀러에 저항한 본회퍼

2. 맹자와 본회퍼의 고민

1. 다윗과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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