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 기형도
시인 기형도는 ‘정거정에서의 충고’라는 시에서 희망을 노래하였습니다.
정거장이라 하면 또 다른 길을 가기 위하여 잠시 멈추는 곳입니다.
길과 길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시인 기형도가 노래하는 정거장은 더는 길이 없는 그런 정거장입니다.
출구가 없는 정거장입니다.
저녁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는데 출구는 없고, 몸은 이미 늙어 지쳐버렸습니다.
절망입니다.
시인은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고 하였지만, 그 희망은 반어법적 표현이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뿐입니다.
하이에나처럼 썩고 냄새나는 곳만 찾아다니는 언론들은 날마다 나쁜 뉴스만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쓰레기 냄새나는 곳에 코를 박고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신문도 모두 절망의 소식과 어두운 소식을 탐닉하고 있습니다.
그런 불길한 소식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나의 온몸과 마음이 축 늘어지게 됩니다.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알베르 카뮈는 ‘자살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철학적 주제’라고 하면서 자살이란 삶이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고백이라고 하였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순간 삶은 의미 없어집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인간은 언제나 나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익숙하였습니다.
절망, 비극, 어둠, 더러움, 슬픔, 불안, 갈등, 싸움, 미움, 배신, 불신
나쁜 것은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애써 찾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늘 달라붙어 다닙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 놀라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당연한 소식이요, 자연스러움이요, 익숙함입니다.
정작 놀라야 할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희망의 소식입니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청량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건 기적입니다.
희망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삶의 방식입니다.
비록 작은 촛불이지만 절대 꺼트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삶의 촛불입니다.
희망하는 것은 단순히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