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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Sep 03. 2018

이분법

최근  한겨레의 한 칼럼을 읽었다. 거기에서 "이분법은 사유의 적이다"라는 글을 보았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면,  "이분법이 사유의  적인가?"  대답은 '아니다' 다. 사전에서, 이분법은 '대상 전체를 둘로 나누는 논리적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논리의  과정에서 선과 악, 빛과 어둠, 물질과 정신, 생물과 무생물, 동물과 식물, 남성과 여성 등 그  특징이 반대되고 대조되는 것을 이분법으로 구분함으로써 그것들을 보다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렇듯 이분법은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만물을 대하는 인간의 정신 활동, 즉 생각(사유)을 도와주는 논리적 사고의 한 방법이다. 최소한 이분법의 개념을 안다면,  이분법은 결코 사유의 적이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분법에 관한 구체적인 논거를 갖추지 못한 채,  왜 "이분법은 사유의 적이다"라고 단정 지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건대, 아마도 '흑백논리'를 말하는 듯하다. 다른 말로 흔히 여성학자들이 곧잘 문제시하는 남성 중심적인  '위계적 이분법', 또는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역기능적인 '이분법적 사고'(Dichotomous Thinking)'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듯하다. 세 용어는 그 개념에서 같은 말이다. 참고로 역기능이란, '본래 의도한 것과 반대로 작용하는 기능'을 말한다. 반면에 본래 의도한 대로 작용하는 기능을 '순기능'이라 한다. 


그런데  글의 논리나 내용의 옳고  그름, 문장력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자신의 실제 경험을 해석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흑백 논리 오류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결론 부분은 이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추측컨대, 작가는 아마도 이분법의 개념을 모르고  있거나,  혹은 이를 무시하고 있거나, 또는 아예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인지 심리학자인 아론 벡(A. Beck)과 아서 프리먼(A. Freeman)의 정의(1990)에  따르면, 역기능적인 '이분법적 사고'(Dichotomous Thinking)는 '경험을 상호 배타적인 범주로 평가하는 경향으로,  양분된 범주 사이에 중간 범주가 존재하지 않아 주변의 대상을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흑백논리다. 위키백과에,  '흑백논리(黑白論理, Black and white thinking)는 모든 것을 흑 아니면 백, 선 아니면 악, 득 아니면 실의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는 논리학적 오류 중에 하나이다. 두 가지 극단 이외의 회색 지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립, 중용,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용납하지 않으며 반드시 어느 한쪽의 입장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역기능적인 사고는 정신장애의 일종인 인지왜곡을 이끄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인지왜곡이란, 사건이나 현실 상황의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정보처리 과정에서, 그릇된 신념체계에 따라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는 사고 습관을 말한다. 주로 종교 근본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보통의 경우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특히 경계선 인격 장애자들의 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사고하는 사람은, 모든 현상을  A or not A로만 인지하기  때문에,  B~Z의 존재 가능성은 물론이고 거기엔 어떠한 중간 지점도 타협의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은 극단적 해석으로 인하여 강렬한 정서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정서를 통해 인지할 수 있는 개인 내부 혹은  외부의  정보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 흑백논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서 독선적인 성향이 뚜렷하게 보인다거나  또는 분노의 감정과 함께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언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세상은 단순하게 흑백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삼원색의 세상도, 무지갯빛 일곱 색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다양한 색상이 서로 어우러지고 때로는 합쳐지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드러나는 세상이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사 모두가 그렇다. 간단하게 설명하거나 섣불리 판단하거나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라는 말이다.  여성학 심리학자면서 페미니즘 운동가인 필리스 체슬러(Phyllis Chesler)가 말하는 '여성에 대한 여성의 비인간성(Woman's Inhumanity to Woman, 2009)', 또는 '여성의 적은 여성 자신이다'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한갓 필부의 좁은 소견으로 보기엔, 최근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운동에 대해 쓴 기사나 칼럼들이 남성 중심적 사고의 위계적 이분법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여성 스스로가 처한 사회적·현실적 실상뿐만 아니라, 논리의 전개에 있어서도 대부분 이러한 흑백  사고의 논리적 오류의 범주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내가 그렇다고 해서 남들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이러한 착각에 곧잘 빠지곤 한다.


언어·인지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의 의견을 참조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당연히 독자들도 알 것이라고 믿는 '지식의 저주'는, 구체적인 논리와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일부 산문 작가들 자신의 편협한 사고와 의견들이 전적으로 타당하고 상식적이며 논리 정연한 것으로 스스로 착각하게 만든다. 


"기성의  관념에 갇히는 건 게으름 탓 같다. 특히 이분법은 사유의 적이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선입관이 현실을 만나 깨지는 쾌감”(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세상에 자기를 개방할 때만 누리는 복락이다."(은유, '이분법의 유혹'/ 한겨레 칼럼)


인용한 문장에 따르면, 나는 '기성의 관념에 갇혀 있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것으로 아는, 게으른 기성세대'에 속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의 여성운동과 미투의 흐름이 본질을 벗어난 것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주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최근 여성운동이 극우 정치세력들의 정치 이해관계와 많은 부분 일치하거나, 실제로 집회현장에서 이들이 서로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렇다.

비록 선한 의도와 고결한 목적으로 시작했다 할지라도 그 흐름의 과정과 수단이 악(惡)하거나 잘못된 것은 옳지 않다. 잠시 생각하는 척해 보자. 생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 즉 다름과 차별의 현실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A or not A로 편을 갈라서 해석하는 것이 곧 흑백논리·이분법적 사고의 한 특징이라고 할 때, 자신의 경험에 국한하여 단정 짓고 일괄적으로 기성세대에 대해 부정적인 딱지를 붙이는 듯한, 작가 개인의 의견은 자가당착의 모순, 지식의 저주에 빠지고 만다. 인용한 문장은 흑백 사고의 오류뿐만 아니라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에도 해당된다.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과학적 사고에서의 합리주의적 태도에 대해 설명하기를,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 누가 옳은지 그른지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 논의가 끝날 때쯤 우리 모두 이 문제를  전보다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자.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둘 때만 우리는 토론에서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옹호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여하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남을 이해한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더구나 어느 쪽이든 간에 이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면서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한다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 혹은 의견만이 마치 진리인냥 확신한다거나, 취향  혹은 이익과 손해의 이해관계에 따라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판단하거나, 또는 사슴을 그려놓고 말이라고 알아달라고 우기거나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말과 글들을 마주할 때, 한갓  평범한 독자에 불과한 나는 그저 할 말을  잃고 만다. 어찌되었건 간에 나는 기성세대다.


사회의 구성원을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논리적 사유 방식이 바로 '이분법'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흑백 사고' 혹은 '역기능적인 이분법적 사고'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따지는 차원에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이분법은 사유의 적이 아니다. 역기능적인 이분법적 사고(흑백 사고)가 사유의 적이다. 


"말재주를 부리며 처세에 능한 자를 미워함은 의(義)를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말 잘하는 입을 가진 자를 미워함은 신(信)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향원을 미워함은 덕(德)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다."  맹자 진심하 37장에 나오는 문장이다.(201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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