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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y May 12. 2021

스페인에서 배운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

2018년도 초에 한국과 스페인 간의 워킹홀리데이 비자 협정이 이루어졌고, 2018년 말부터 스페인으로 워킹홀리데이 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2019년 5월에 비자를 신청했고 두 달의 기다림 끝에 비자 승인을 받아서 8월에 스페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스페인에 도착한 후 거주할 집을 구하고 나서 Empadronamiento(거주증)을 신청해야 했다. 그래서 집주인과 함께 거주증을 신청하러 시청에 갔는데, 시청 직원이 미리 예약을 해야지만 서류를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시청에서 예약을 하는데, 9월에는 예약이 가득 찼고, 한 달 후인 10월부터 날짜가 있었다. 그렇게 한 달 후인 날짜에 예약을 신청해놓고,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집과 일자리를 구한 후 은행에 가서 월급 받을 계좌를 만들어야 했는데, 대부분의 은행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대해서 모르고 있어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는 은행계좌를 만들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렇게 4곳 정도를 시도하다가 4곳 모두 안된다고 해서, 일하는 곳 사장님한테 이야기를 해서 사장님이 알려주신 은행 지점에 가서! 사장님이 주신 증명서류를 가지고! 간신히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은행 계좌를 만들고 나서도 체크카드를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우편으로 한 달 후에나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의 시작은 거절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보통 서류 처리를 위해서 기다려하는 기간은 한 달인 경우가 많았다.  스페인에 가기 전에 스페인의 업무처리가 느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답답하기도 했고 불편함도 느꼈다. (체크카드가 없어서 헬스장에 등록하지 못했다)


반면에, 기다리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을 지켜보면 그들에게 기다림이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스페인 사람들은 기다림이 익숙해져서 일까? 그들은 기다리는 동안 서로 대화를 나누며,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공공기관에 가서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페인에서 지내면서 금세 스페인의 서비스와 서류 처리 속도에 적응이 되었고, 기다림에 익숙해졌다. 스페인에서 기다림에 익숙해지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기다림 속에는 설렘'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사실은 한국에서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한국에서의 빠른 서비스의 익숙해져있다 보니 그동안 잊고 지내면서 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일이 처리되고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좋다. 하지만 거기에 익숙해져서 기다림 자체를 거부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음료가 주문과 동시에 나오기를 바라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할 때 하루 배송도 기다릴 수 없어 당일 배송을 찾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빠른 속도에 익숙해져 있고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기다림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빠른 속도만을 원하는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 같다. 더 빠른 것을 원하고, 기다림은 지루하다고만 느낀다. 기다림 속에는 설렘이 있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기다림 시간이 짧을수록 설렐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짧아지는 기다림 속에서 더 이상 설렘을 느낄 시간이 없고, 기다림이 짜증으로 바뀐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속도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과정 속에 있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채 결과를 빠르게 얻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다.



기다림 속에 설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고, 과정을 즐기면 미래의 결과보다는 현재 순간의 중요성을 더 높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기다림의 연속인데, 그 기다림 속에서  설렘을 느끼면서 과정을 즐기고 현재 순간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빠른 속도에 사는 우리는 의식적으로 천천히 살아가도록 노력해 볼 필요가 있고,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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