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기
대학생 시절에 밥을 먹으러 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도서관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 식당에 경보 수준으로 빠르게 걸어갔고, 밥을 먹고 난 후에도 다시 경보로 도서관에 와서 공부를 했다. 도서관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질수록 마음이 편안했고, 도서관 밖에 있으면 불안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빠른 발걸음에 익숙해졌고, 길을 걸을 때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제치면서 지나갔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다 보니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에 압박을 받으면서 살아가니까 평상시에도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로션을 바르는 것도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로션을 발랐다)
빠르게 걸어서 일찍 도서관에 도착한다고 해서 더 많은 양을 공부할 수 있지는 않았다. 도서관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은 적었다. 항상 긴장 상태였고, 불안해했다. 불안해하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니 공부할 때 사용할 에너지가 없어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항상 빠르게 걷고 무언가를 빠르게 얻고 싶어 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스스로 모르니까 많은 것으로 채우고 싶었던 것 같다.
호주에서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다 보니 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가치관이 뚜렷해졌다. 그리고 빠르게 가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고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퇴근을 하고 빠르게 걸어가서 집에서 쉴 수도 있고, 천천히 걸어가서 집에서 쉴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빨리 걸어가서 집에서 쉬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날씨가 좋아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 경치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그 순간을 느끼면서 걸어간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천천히 걸어가는 날이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실제로도 피로를 덜 느꼈다. 많은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채울 수 있지는 않는다. 에너지가 불필요하게 쓰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천천히 걸으면서 현재를 느끼는 것은 내가 어떻게 에너지를 쓰고 있고,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하루에 1시간은 천천히 걷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빠르게 행동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해서 작용할 것이다. 부모님의 재촉,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 제한적인 시간 등으로 우리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래서 빠르게 행동하며 결과를 빨리 얻고 싶어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과정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결과만을 빨리 얻어야 하는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명령을 따르면서 사는 기계 같이 느껴진다. 이런 기계들은 순간순간의 소중한 시간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어디론가 향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들을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있는 다양한 감각을 가진 멋진 생명체이다.
필요한 상황이라면 빠르게 움직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도 빠르게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을 인지해서,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빠르게 간다고 일찍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가도 그 방향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오히려 더 늦게 도착할 것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한 뒤, 천천히 움직여보자. 예를 들면 하루에 1시간 의식적으로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경치도 보고, 걷는 것도 느끼고, 주변의 소리도 들어본다.
느리게 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불안해한다. 나도 느리게 가고 있다고 느끼면 불안하다 그럴 때면 이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