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지옥, 경력은 숨길 수 없다
선생님과 제자
사제지간
아주 오래전에 김하늘 배우와 권상우 배우가 주연한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라는 영화가 있다.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등록금을 위해 고액과외를 하는 여 선생님과 소문난 싸움꾼으로 고등학교 2년을 정학 맞은 사고뭉치 동갑내기 제자의 이야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스와니-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당시 나는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한국어 강사가 된 이후로 그 영화 포스터가 종종 생각났다.
내가 처음 중국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나와 학생들의 나이 차이는 불과 3~4년, 아이들은 나를 외국인 언니, 누나쯤으로 생각했다.
반면 교실 안에서의 나는 운 좋게 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부담감과 비장함으로 모든 세포 하나하나까지 힘이 들어갔고 경직되어 있었다.
외국인 강사 중에 가장 어렸던 나는 관심사나 취향 등이 비슷해 교실 밖에서는 같이 밥도 먹고 쇼핑도 하면서 스스럼없이 지내다 보니 학생들은 교실에서도 나이가 있으신 강사님들이나 교수님들에 비해 나의 수업 분위기는 더 자유분방했다.
언제부터인지 과제부터 발표나 수업태도가 점점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슬슬 기분이 상했다.
“나 초짜라고 얘네들이 쉽게 생각하나?”
새내기 강사였던 나는 그만 아이들을 나무르고 있었다.
하루는 과 전체 학생들의 70퍼센트 이상이 과제를 해오지 않았고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휴대폰을 보거나 잡담을 하느라 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했다.
나는 그간 꾹꾹 눌러 두었던 서운함 반, 분노 반 까만 속이 활활 타올라 그날 수업을 거부하고 자율학습을 하라며 가만히 앉아 있다 수업 종이 울리자 나왔다.
학생들은 나의 단호함에 당황했고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교실을 나서는 나의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나를 덮어 버렸다.
이윽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학생들은 울먹이며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나를 붙잡는 게 아닌가?
순간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둔탁한 종소리의 울림과 함께 귀에서는 가늘고 뾰족한 삐- 소리의 이명이 들렸다.
겨우 3-4살 차이 나는 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알아서
무슨 권위를 잡겠다고?
어디 말 같지도 않은 대우를 받고 싶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고립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앞이 깜깜해진 복도를 황급히 지나 연구실로 들어오자마자 띠동갑 선배 강사님이 보였다.
정신적 멘토이자 지적 스승이기도 했던 선배님!
나는 누렇게 뜬 얼굴을 들고 사막 모래알처럼 바짝 말라버린 입을 열어 고해성사하듯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내뱉었다.
후회했다, 강의 경력 겨우 1년 차였던 나의 내공은 ‘0’ 제로, 가장 중요한 ‘나에 대한 확신 또한 ‘0’ 제로였다.
매일 수많은 문법들과 표현들을 좀 더 쉽게 풀어서 전달하기도 벅차던 와중에 학생들은 무경력의 나이 어린 강사를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만든 지옥
유연함
확신
순간 긴장됐던 몸이 촤르르 풀렸다.
너무 잘하고 싶어서
너무 잘 보이고 싶어서
온몸에 바짝 들어갔던 힘
힘을 빼야만 한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준다는 건 행운이고 과제나 수업태도는 강사의 재량이다. 내가 많이 부족했다.
경력은 숨길 수가 없다. 바다의 온갖 풍파 다 맞고 견뎌 보드랍고 완만하게 깎인 돌 같은 단단함.
경력자가 가질 수 없는 새내기의 풋풋함과 끊임없는 시행착오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의 나와 당신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하다.
나는 힘 빼는 연습과 함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응원해 주기로 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편안하게 호흡해 보자
흠~~~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