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는 생각보다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쿨쿨.
캄캄한 밤, 귀여운 내 몸뚱이는 거실 바닥에 대(大) 자로 손발 쭉 피고 자는 중.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둥실둥실 모드로 떠다니고 있는 중이다.
‘뭐. 내가 하고 싶을 때 되는 건 아닌데 한 번씩 이렇게 둥실둥실 떠다닐 때면 기분이 좋단 말이쥐! 요요 대천문에 연결된 실만 없으면 더 좋을 거 같은데. 이곳저곳 가고 싶은데도 다 가보고 말이야. 신생아는 인스타도 할 수 없어서 다른 신생아들과 소통할 수도 없단 말이지. 궁금하단말야아아응앵’
나는 하얗게 빛나는 실을 발가락으로 튕기며 집안을 구경해본다.
‘음 솜뭉치는 분유로 가득 채운 귀여운 내 배 위에서 자고 있구.. 엄마는 방에서 쿨쿨, 장모님은 근무 가셨나 안계시네엥. 아빠는 어디간거람? 아코 깜짝야.’
마스크, 빨간 고무장갑을 낀 아빠 사람이 세상 의심스러운 복장으로 땀을 죽죽 흘리며 짐을 끙끙 들고 베란다에서 나오고 있다.
'오늘 분리수거하러 가나 보네. 근데 밖에 비 오던데. 아빠는 이상하게 비 오는 날만 분리수거를 하러 가더라. 우산도 못써서 비 맞을 텐데. 일부러 불쌍한 코스프레 하려는 건지 원!'
비 맞을 아빠 생각하니 괜히 속상하다. 그러다 안쓰런 마음이 들어 내 작은 손바닥을 펼쳐 아빠 머리 위로 들어본다. 마음 같아선 요롷게 손 올려서 아빠 비 안 맞게 해주고 싶은데, 이런 실에 묶여 둥실둥실 떠다니는 상태로는 택도 없다. 아빠한텐 보이지도 않는 상태인걸 모.
신생아는 생각보다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아빠는 그렇게 혼자 낑낑대며 장모님 집 현관문을 나서고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양손 한가득 짐을 들고 밖으로 향한다. 역시 우산을 들 손은 없다.
‘분명 일부러 저러는 거야 저거. 일부러 비 맞으려고! 불쌍해 보이려고! 흥. 난 안속는다구우. 에효. 어디 어떻게 하고 있나 한번 보기나 해볼까?’
나는 빠르게 아파트 지상주차장 한편에 마련된 분리수거장이 보이는 반대쪽 베란다 창가로 이동한다. 다행히 대천문과 연결된 이 실이 그 창문까지 닿는 길이는 돼서 다행이다. 밖으로는 못 나가게 하는데 말이지. 흠.
넓은 새까만 아스팔트 바닥에 하얀 선을 따라 주차되어있는 차들이 보이고. 주차장 구석 한편에 나눠져 있는 분리수거장이 보인다. 오른쪽 끝에는 음식물쓰레기와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것 같고, 왼쪽 끝에는 일반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큰 쓰레기통이 보인다. 그리고 아빠는..
‘어디 보자.. 아! 이제 보이네. 오호. 저기 뒤뚱뒤뚱 걸어가고 있군. 먼저 음식물 쓰레기 통을 열고 쓰레기를 버리고. 웩. 장갑에 음식물 튀었어. 옷에도 튄 거 아냐? 살살 좀 하지. 으이구 아빠 사람!’
나는 들리지도 않을 응원을 아빠 사람을 향해 던져본다.
아빠는 그다음 코스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간다. 손에 가득 짐을 들어서 걷는 모양이 웃기다.
다음은 분리수거 코너인가 보다. 플라스틱, 병, 비닐을 차근차근 분리해서 넣는다. 빗줄기가 세지는 게 느껴진다. 아빠는 비에 쫄딱 젖고 있는데 그런 것쯤 신경 안 쓴다는 듯 세상 차분하게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추석 때 장모님 집에 선물로 들어온 사과박스 테이프를 주욱 떼고, 끙차끙차 밟더니 쭉 펴서 종이 분리수거 함에 휙 던져 넣는다.
‘뭐지. 본인이 멋있어 보인다고 착각하는 거 같은 저 쓸데없이 쿨한 동작은?’
비에 젖거나 말거나 나도 모르게 순간 킥 하고 웃음이 난다.
아빠는 뭔가 본인이 멋있다고 생각하며 박스를 던진 것 같은데 위에서 내려다본모습은 그냥 비 오는 날 아무도 없는 분리수거장 가냘프게 켜있는 조명에 의지한 채 혼자 끙끙 분리수거하는 흔한 아빠들의 모습으로만 보인다.
그렇게 아빠는 이제 마지막 고지를 향해 걸어간다.
바로 일반쓰레기를 넣을 수 있는 주황색 뚜껑으로 덮인 왕따시만한 쓰레기통을 열고 두 개의 쓰레기 봉지를 휙휙 집어넣는다. 역시나 본인의 동작이 굉장히 쿨하다고 착각하는 듯한 제스처를 한다. 이쯤 되니 딱한 마음이 든다. 할 수만 있다면 내 43도로 맞춘 따끈한 분유 한 모금 나눠주고 싶다. 하지만 줄 순 없어. 이건 내꺼얌.
분리수거를 마친 아빠는 비가 이렇게나 주룩주룩 오는데도 어차피 젖어서 괜찮다는 생각인지 뛰어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고, 그저 느릿느릿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있자니 속상하고 답답하다. 에휴. 정말 걱정이 많이 가는 아빠 사람이다.
"엥?"
아빠가 분리수거장에서 아파트 입구로 걸어오다 말고 갑자기 다시 뒤돌아 간다.
아빠가 멈춰 선 곳 앞에는 아빠보다 나이가 한 서른 살은 많아 보이는 백발의 남자 사람이 분리수거를 지금 막 시작하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 저 백발 남자도 우산이 없네. 아니 이 동네 사람들은 비 오는 날 분리수거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건가'
참 이해불가다.
아빠는 그 백발 남자의 분리수거를 돕는다. 본인 몸은 이미 쫄딱 젖었다.
백발의 남자는 처음에는 괜찮다는 제스처를, 그리고 그다음에는 너무 고맙다는 듯 세월이 쌓인 허리를 숙여 아빠에게 고맙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아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색한 웃음과 손짓으로 화답한다.
볼일을 마친 백발의 남자는 뒤돌아서 본인의 집을 향해 뛰어들어가고, 아빠는 무슨 생각인지 그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아니 아빠 사람!! 뭐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저러다 감기 걸린다구웅.. 감기 걸렸다 나한테까지 옮기면 어쩌려고 그래? 관심종자가 분명해. 일부러 병 걸려서 엄마랑 장모님한테 자기 비 오는 날 분리수거한 거 티 내려고!!’
나는 멍하니 서있는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본인 몸 아프면서까지 그러는 건 싫다! 너무너무 싫다!
‘에엥?! 설마 나 보는 거?’
한참을 백발 남자가 뛰어간 방향을 쳐다보던 아빠가 갑자기 고개를 휙 올려 위를 올려다본다. 내가 아빠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걸린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거 같다. 아빠의 눈이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 창문 쪽이 아니라 그냥 하늘 위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후.. 아니지 아니지. 내가 보일 리가 없지. 솜뭉치도 내가 이 상태일 땐 모르는 눈치던데.. 그나저나 비 오는 하늘은 왜 보고 저러고 있나 대체. 관종도 저런 관종이 없다 정말.’
아빠의 손엔 비우고 난 분리수거 통과 빨간 고무장갑이 들려있다.
이미 비에 흠뻑 젖은 아빠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터벅터벅 장모님 집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관종 짓하는게 얄미우면서도 왠지 마음 한편이 속상하다.
‘대체 왜 저러는 거람 정말.’
곰곰이 고민하고 있던 나는 대천문의 실이 팽팽해짐을 느낀다. 다시 몸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 보다. 아빠가 대체 왜 그러는지 나중에 솜뭉치한테 물어봐야지. 정말 아빠 사람이란 존재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으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