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도시의 속도감 속에서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
이전에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보통의 날들'이라고 정의했었다. 내가 말하는 '보통의 날들'이란, 삶의 희로애락이 뒤섞인 평범한 일상이다. 이 평범함이 단순히 무난하고 지루한 날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삶의 모든 감정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기 위해 종교를 갖기도 하고, 철학을 공부하기도 한다. 또한 그것들을 깊이 있게 해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즉 삶의 의미가 부여된 인간의 '지금'이다. 감정이 고조된 쾌락으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을 넘어선 '그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의 날들'이란 결국 단순히 그저 그런 날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모든 감정과 상황들이 조화롭게 구성된 더 넓은 의미로 구성해 볼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생명체들의 연결까지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필요로 한다. 바쁜 도시의 속도감 속에서도, 이러한 시야를 갖춘다면 지금 이 순간의 존재를 더욱 잔잔하고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보통의 날들'의 기준
대학생 시절 옷가게를 하는 엄마를 따라 동대문 도매시장을 자주 갔었다. 그곳은 긴박하면서도 독특한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 했다. 밤늦은 시각부터 새벽까지 분주히 움직이는 상인들의 모습은 내게 신선하고 멋지게 다가왔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쉼 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반복적인 일상은, 나와는 다른 삶이기에 마치 한 편의 살아있는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깨달았다. 긴박하고 비범해 보였던 그들의 일상이, 정작 그들에게는 '보통의 날들'일뿐이었다. 물론 한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누군가는 빚에 시달리면서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청약에 당첨돼서 너무 기쁘지만 가족 간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요소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긴박함'과 '속도감'있는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루의 루틴이고 삶의 기본일 수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 매일 바쁘게 살아가며 긴박하게 일정을 쫓던 나의 일상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로 보였을 것이다.
카페를 다니며 배운 일상의 다양성
중요한 것은, 그런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 평온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3주간의 치앙마이 여행 중, 정말 많은 카페들을 방문했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카페 운영 시간이었다. 어떤 카페는 오전 8시~오전 10시 30분까지만 운영을 하였고, 어떤 카페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도 한다. 그리고 스타벅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카페는 저녁 4시~6시 이전에 닿았다. 처음에는 "장사가 그렇게 잘되면서 왜 이렇게 빨리 닫지? 내가 사장이었다면 밤12시까지 돌리면서 빡세게 돈 벌텐데!!" 라면서 아쉬워했지만, 곧 그들의 일상 속 리듬이 보이면서 '아하' 를 외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상 속에서 느긋한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고,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의 대부분의 카페들은 밤 10시, 늦으면 자정까지도 운영하는 곳이 많다. 일상을 쪼개어 쓰듯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들만 봐도 각 나라의, 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긴박함은 상대적이다.
내가 느끼는 '바쁘다' 혹은 '긴박하다'라는 감정은 철저히 상대적인 것이었다. 바쁘다, 쉽다, 힘들다 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태국에 있는 '치앙마이' 또는 중남미 쪽에 있는 '벨리즈'의 느긋한 삶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고, 내가 익숙한 서울의 빠른 속도감은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긴박한 삶일 수 있다.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며 하루 16시간을 일하는 뉴요커와, 하루일과를 해 뜨는 시간에 맞추고 해 질 때 마무리하는 아프리카나 남미 마을의 사람들. 그들의 일상은 전혀 다르지만 각자의 관점에서 볼 땐 '보통의 삶'으로 느껴질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 10km씩 차로 달리며 출근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삶의 한 부분이고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밤새 일하고 아침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한국인의 하루가 어떤 유럽인에게는 '미쳤다'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반대로, 한국인도 다른 나라의 16시간 노동하며 힘들게 사는 미국인들을 보며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긴박함이란 우리의 환경과 경험에 따라 정의되는 상대적인 감정일 뿐이다.
어떤 삶이 맞고 틀리고는 없다. 각자의 삶이 있을 뿐.
세계적인 시각에서 나를 돌아보기
치앙마이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는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스스로 바쁘다고 느낀 일상이,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기준 속에서만 긴박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가장 알맞은 속도의 삶은 무엇일까?" 이제는 세계적인 시각으로, 더 나아가 우주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겠다. '바쁨'과 '긴박함'은 상대적인 것이고, 온전히 나만의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진정한 평온을 가져다주는 나만의 기준을. 나 같은 경우 아무리 밤 9시 10시에 끝나더라도 잠시 근처 한강에 들러 멍 때리는 시간을 종종 가졌었고, 남편과 함께 자기 전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주말에는 커피가 정말 맛있는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는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내 생활환경에 맞게 내가 주도하는 나만의 평온을 찾아간 것이다.
1960년~1970년대에는 새로 생긴 대중문화 즉 음악과 영화와 같은 신생 오락들, 또는 가족과의 저녁식사, 이웃과의 돈독한 관계 등이 그들에게 행복과 위안을 주었다. 그 시절의 '보통의 날들'처럼, 오늘날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의 속도감 속에서 평온을 찾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이 맞다. 부정적인 뉴스들만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보통의 날들'은 결코 단순한 날들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순간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게 가장 알맞은 속도로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잘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