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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빈 Nov 05. 2024

【소설】나일 수도 있었다 (2)

처음 선애가 보육원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원장님이 눈에 띄게 예쁜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오셨다. 이름은 유선애,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모의 존재를 모른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생각했던 것 같다. 원래부터 없는 것과 있다가 없어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슬픈 것인지.


처음에 선애는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구석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창밖만 바라보곤 했다. 다들 수군거렸지만, 나는 달랐다. 나랑 일훈이는 유아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고, 맏언니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름 챙겨주기 위해 그녀에게 꾸준히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색하고 미미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때로는 과자를, 때로는 작은 장난감을, 때로는 그저 미소를 건넸다. 


일훈이도 도왔다. 


"선애야, 오늘 급식 때 나온 우유야. 너 우유 먹어야 나처럼 키가 큰다?"


일훈이가 건네는 간식을 신기하게도 선애가 거절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였을까. 선애가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나중에는 천진하게. 


우리 셋은 자주 보육원 뒤뜰에 모였다. 봄날의 꽃구경, 여름날의 물놀이, 가을날의 낙엽 줍기, 겨울날의 눈사람 만들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만의 놀이가 있었다.


"언니가 엄마하고, 일훈 오빠가 아빠 하면 되겠다!"


어느 날 선애가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의 소꿉놀이는 시작되었다. 일훈이는 열심히 일하는 아빠가 되어 종이로 접은 월급봉투를 가져왔고, 나는 살뜰한 엄마가 되어 종이 접시에 상차림을 했다. 선애는... 그저 행복해하는 아이였다.


“우리 선애가 이렇게 예쁘게 웃으니까 좋네.”


일훈이가 선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나는 괜히 뿌듯해졌다. 마치 정말 우리가 한 가족이 된 것만 같아서. 

하지만 그 소소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격주 토요일이면 김 교수님이 오셨다. 내게 특별히 관심을 보이시던 분이었다.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아시고는 예쁜 크레파스를 사다 주셨고, 내 그림을 보고는 “우리 주연이는 화가가 될 거야”라며 칭찬해 주셨다.


어느 날, 원장실에서 원장님과 김 교수님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시험관 아기 시술도 실패를 했고, 이제는 입양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고. 자신은 갓난애기를 원하지만 남편이 부부의 사회생활을 위해 큰 아이를 데려오자고 했다고.  


그때 나는 확신했다. 김 교수님이 날 데려가실 거라고. 그동안 나를 살피시던 게 다 그런 뜻이었을 거라고. 그날 밤, 나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제 곧 진짜 가족이 생길 거란 생각에.


그리고 토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들어왔다. 김 교수님과 그 남편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드디어.


원장실 밖 복도에서 까치발로 서서 안을 들여다봤다. 김 교수님 부부가 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런데... 그들이 고른 아이는 내가 아닌 선애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를 예뻐해 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그게 다 거짓이었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애는 부부와 함께 차에 올라타고, 보육원을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 한참 동안 그 차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내 마음속에 있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왔다. 울음이 참지 못하고 원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왜 내가 아닌 선애를 데려갔어요?”


원장님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원장님도 그랬잖아요. 내가 여기에서 제일 착하고, 똑똑하고, 어른스럽다고. 분명히 날 데려가면 좋을 거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왜 나 말고 선애예요? 왜요?”


왜 내가 아닌지, 왜 내게는 부모의 사랑이 허락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원장님은 조용히 다가와 나를 품에 안았다. 


“주연아,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렴.”


하지만 그 말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난 그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고, 결국 원장님 품을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으로 나는 복도를 달렸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던 김 교수님이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떠나가시던 그날의 배신감이,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그 아픔이.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우습다. 그게 벌써 언제 적의 일인데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에서 시선을 떼자 익숙하지만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선애가 서 있었다. 성인이 되어 마주한 그 얼굴은, 생기 가득한 미소와 함께 한결 더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한 15년은 된 거지?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 봐. 이런 데서 다 만나고!”  


선애는 반가움에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 논문 지도 교수님이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지 뭐야. 그래서 조문온 건데 이렇게 언니를 만날 줄은 몰랐네. 언니는 누가 돌아가셔서 온 거야?”


선애의 말에 내 처지를 자각했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종이컵을 마저 비운 후 짧게 답했다. 


“모르는 사람.” 

“응? 모르는 사람? 그게 무슨 말이야?"

“이게 내 일이거든. 나 상조회사 다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럼 문상 잘하고 가. 난 일 중이라서 먼저 들어가 봐야겠다.”

“잠깐만, 언니!”


몸을 돌리자 그녀가 핸드백을 뒤적거리더니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내 연락처. 이제 자주 보자, 우리.”


갑작스러운 제안에 난 당황스러워졌다. 하지만 차마 면전에서 거부할 수가 없어 떨떠름하게 명함을 받아들였다. 


“연락해! 꼬옥!”


선애는 내 손에 명함을 쥐어주고는 종종걸음으로 주차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선애가 남긴 명함이 빛났다.


‘XX 대학교 OO 대학원 나선애.’


명함 속 선명하게 인쇄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지도 교수의 장례식이라니.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던, 어쩌면 내가 갈 수도 있던 삶의 흔적이 적힌 명함이었다.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명함을 구겨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주연 씨는 이번 달 회원 가입 수가 좀 어때? 할당량 채울 수 있을 거 같아?”

“아뇨. 아직 멀었어요.”


상조회사 직원은 장례만 돕는 게 아니다. 회원을 늘리는 것도 업무의 일부, 아니 큰 부분을 차지했다. 


상조가입은 일반 보험과는 다르다.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질병, 상해와 달리 죽음은 그 무게가  무겁고 그래서 주변에 권유하기도 어렵다.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두고 영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문득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네, 김주연입니다.”

-언니. 나야. 선애.


단박에 든 생각은 어떻게 내 번호를 안 것일까? 였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따지고 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그날 나는 회사 근처 카페에서 선애를 다시 만났다. 장례식 날과는 달리 화사한 차림을 하고 나타난 그녀는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언니 연락 기다렸는데 통 전화가 안 오더라고. 그래서 그날 장례식장에 들어왔던 상조회사에 일일이 전화해서 물어봤어. 알아보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찾아낸 이유가 대체 뭘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려한 명품 옷과 가방, 곱게 네일아트 된 손끝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선애의 미소 속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여유와 풍요가 담겨 있었다. 삶의 궤적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순간, 오기 비슷한 게 치밀어 올랐다. 


“너 혹시 상조가입 했니?”

“어? 아, 아니.”

“잘됐네.”


나는 가방에서 상조가입 서류 뭉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게, 이번 달 할당량이거든. 도와줄 수 있겠어?”


선애는 잠시 당황한 듯 웃음을 멈췄지만, 곧 태연한 얼굴로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럼, 내가 뭘 못해주겠어.”


선애는 호기롭게 말했지만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가입서류는 그녀를 피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퇴근길, 회사 앞에서 경적 소리에 돌아보니 선애가 차 안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언니! 언니! 어서 타!”


조수석의 문까지 열고 외치는 선애. 나는 차에 탈 이유도, 타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뒤에서 다른 차가 경적을 울려대는 터에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랐다. 


“언니, 거기 그 서류봉투 봐 봐.”


선애가 가리키는 봉투를 열어본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얇은 소책자 정도의 두께인 그 서류는 모두 회원가입 서류였다. 


“대학원 사람들이랑 동창들한테 부탁해서 좀 모았어. 이 정도면 돼?”


솔직히 기대이상이다.  


“어…. 어, 정말 고마워.”

“말로만?”

“그래, 저녁 내가 살게.”


그러자 선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먹고 싶은 곳으로 가도 돼?”

“…그래.” 


얼마나 비싼 것을 먹을까? 잠깐 고민이 됐지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손에 잡힌 회원가입 서류가 마음을 한결 너그럽게 해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차가 멈추더니 선애가 시동을 끄며 말했다. 


“다 왔어. 내리자.”


그녀가 안내한 곳은 번화한 식당가가 아닌 고즈넉한 주택가였다. 나는 이내 이곳이 그녀의 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거실에 들어서자 중년의 여성이 우리를 맞이했다. 순간 김 교수님인가 싶었지만 도우미 아주머니였다. 


“아줌마, 우리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예,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 옷 갈아입고 내려오세요.”


선애는 나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급스러운 가구, 세심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는 정성스레 배열된 소품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벽에는 선애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삶의 흔적들이 담긴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유치원 재롱잔치, 초중고 졸업식 사진, 대학교 입학식 그리고 해외여행지에서 찍은 밝은 미소가 담긴 사진들. 


하나같이 환한 웃음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행복한 순간들로 이어진 그녀의 삶이 이렇게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속에 토기가 느껴졌다.  


“화장실 어디야?”

“어, 나가서 오른쪽에 있는 문이야.” 


신물밖에 나오지 않는 속을 게워낸 후. 화장실 세면대에 쏟아지는 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차갑게 흐르는 물이 손끝에 닿아도 감각이 둔해진 듯했다. 


선애는 오늘 나를 왜 집으로 데려 온 것일까. 


어쩌면 사진 속의 인물이 나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 대신 입양된 그녀가 누려온 삶. 그것이 나에게는 그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식사는 무리라는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서 나와 선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 선애의 방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 핸드폰 벨소리였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나는 그녀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반쯤 열린 방 문 사이로 선애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몇 초 후, 벨소리가 멈추고 바로 카톡 알림음이 이어졌다. 


선애는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대신 화면의 문자를 조용히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안녕하세요, 루빈입니다.

해외 출장 관계로 업데이트가 좀 불규칙적일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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