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애의 행동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내 메시지를 훔쳐보는 것을 모른 척했고, 그녀는 식사 내내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 문제의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일훈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내일 애들 보러 가는 거 까먹진 않았지? 11시까지 집으로 갈게.’
다음 날 오후. 나는 일훈의 허름한 소형차에 앉아 지방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내리 찌는 햇볕 속에서 에어컨이 고장 난 까닭에 창문을 내려야 했다.
“에어컨이 고장 났으면 고쳐야지.”
“그러려고 하다가 대신 축구화 하나 새로 샀다. 정수가 이번 시합에 주전으로 뛴다잖아. 더위는 곧 갈 텐데 뭐.”
한 달에 한 번, 일훈과 나는 보육원을 찾았다. 뒷좌석에는 아이들을 위한 자그마한 선물과 간식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저 중의 하나가 에어컨을 고치는 대신 산 축구화일 것이다.
무심하게 웃어넘기는 일훈에게 뭐라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수가 좋아할 얼굴이 떠올라서일까. 후덥지근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그래도 참을만했다.
보육원에 도착하자, 어김없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와우. 저거 BMW 아냐?”
일훈은 한쪽에 주차된 고급 외제차를 발견하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왠지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 후원자가 오는 일은 드물지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왠지 차가 낯설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김 교수님 내외를 따라 보육원을 나간 이후로 선애는 이 보육원을 다시 찾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뭐 해? 왜 무슨 일 있어?”
뒷좌석에서 물품을 꺼내던 일훈이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외쳤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물품을 챙겨 안으로 들어갔다.
“싸랑하는 원장님! 저희 왔습니다!”
장난스레 외치며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일훈은 안에 있던 손님을 보고 멈칫했다. 원장실에는 선애가 앉아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고, 선애와 눈이 마주쳤다.
원장님이 우리를 보며 미소 지었다.
“마침 잘 왔네. 너희들, 여기 이 아가씨가 누군지 알아보겠니?”
일훈은 선애의 얼굴을 뜯어보는 듯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너 그 울보 선애?”
“일훈 오빠, 오랜만이에요.”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선애의 모습에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과연 이 조우가 우연인 것일까?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선애가 우리 아이들의 상담치료를 해주고 싶다고 하는구나. 특히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네.”
원장님의 설명에 선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제가 아동심리학을 전공하면서 깨달은 게 많아요.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잖아요. 저도 그랬으니까 잘 알아요. 마음의 상처나 그런 것을 제때 치유하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됐고요. 그래서 우리 자애보육원 아이들에게 먼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오게 되었어요.”
하필, 일훈이랑 내가 오는 날에?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질문을 애써 삼켜야 했다.
“와. 울보 선애, 다시 봐야겠는데? 완전 전문가 선생님이 됐잖아?”
“그런 거 아냐, 오빠. 아직 졸업논문 작성 중이라 완전 프로는 아니야. 하지만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테니까.”
일훈의 과한 반응이 못마땅했다. 선애가 하겠다는 건 그저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 만나 상담하겠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일훈이 그토록 높게 평가할 일인가 싶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선애는 논문 지도교수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면 지도교수가 바뀌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다른 임상 데이터가 필요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선의라기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용할 대상을 찾아온 것.
생각이 이에 미치자 역시나 난 선애를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해질 무렵, 우리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 나왔다. 선애가 카 리모컨으로 BMW의 잠금을 해제하자 일훈이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게 선애 네 차였어? 와, 죽인다. 최고 속도는 얼마까지 나가?”
“글쎄, 나야 100 넘게 달려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오빠가 한번 운전해 볼래?”
“정말? 그래도 돼?”
흥분한 얼굴로 되묻는 일훈을 지나 선애의 시선은 내게 머물렀다.
“그럼. 괜찮지, 언니?”
“차 주인은 넌데 왜 그걸 나한테 물어?”
선애의 시선이 일훈의 차를 향했다.
“언니 혼자 저 차에 타고 와야 되니까.”
“아, 그렇구나. 그걸 생각 못했네.”
일훈의 얼굴에 순간 낭패라는 표정이 스쳤다.
“그럼 뭐, 아쉽지만 안 되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타 보도록 하지.”
어깨를 으쓱이며 선선히 포기를 하는 일훈. 그 모습에 나도, 선애도 놀랐다. 동시에 일훈을 향한 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을 것이다.
“잠깐. 그럼 이렇게 해. 내가 선애 언니랑 같이 갈 테니까 오빠가 내차를 몰고 가. 그럼 됐지?”
일훈의 눈빛이 흔들리며 나를 보았다. 주인의 허락을 구하는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눈빛이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일훈이 운전하는 선애의 BMW가 떠나고.
선애와 내가 탄 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선애는 우리의 앞으로 달리는 자신의 BMW의 뒷꽁지를 보며 말했다.
“부럽다, 언니.”
“뭐가?”
“일훈 오빠랑 두 사람, 사귀는 거 맞지? 참 보기 좋아.”
왠지 진심이 담긴 말인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질문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넌? 사귀는 사람 없어?”
그 말에 선애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쓸쓸히 미소 지었다.
“아니. 나 아직 한 번도 남자 사귀어 본 적 없어.”
“정말?”
솔직히 놀랐다. 얼굴도 예쁘장하고, 집안 환경도 좋고, 대학원생에 무엇에도 부족할 게없어 보이는 아이가 모쏠이라니.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아니야, 그런 거. 그냥… 남자가… 잘 안 맞더라고.”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간 대체 어떤 남자를 만나왔기에 저러는 걸까. 어떤 남자이든 일훈보다는 훨씬 조건을 갖춘 남자였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럭저럭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서울로 입성하는 지점의 휴게소에 도달했다. 일훈은 BMW 시승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는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야, 부럽다, 선애. 저런 애마를 매일 끌고 다니다니.”
“나는 오빠가 부러운데?”
“응?”
“차가 아무리 좋음 뭐 해. 같이 타고 다닐 사람도 없는데.”
선애의 말에 일훈은 잠시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선애와 나의 시선이 부딪혔다. 그녀의 눈빛에는 외로움과 갈망이 섞여 있었다.
“참, 오빠. 이거 내 번호. 혹시라도 차 타고 싶거나 필요한 날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선애는 일훈과도 연락처를 교환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훈이 핸들을 잡은 채 슬쩍 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왜 얘기 안 했어?”
“뭘?”
“선애 만난 거.”
마음이 살짝 불편해졌지만, 애써 담담하게 대꾸했다.
“말해야 할 이유가 있나?”
“넌 안 반가웠어? 십오 년 만에 만난 건데.”
결국 나는 고개를 홱 돌려 쏘아붙였다.
“우리가 무슨 이산가족이라도 돼? 울고불고 난리라도 쳐야 해?”
“그래도, 주연아….”
일훈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실장님. 제 고객 맞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영안실 앞에 앉아있는 남편의 모습은 초라했다.
남루한 옷차림, 멍한 눈빛, 무너져 내린 어깨. 예기치 않게 부인을 잃고 무겁게 앉아 있는 그는, 마치 그 자리에 굳어버린 망부석처럼 보였다.
나는 조용히 예를 갖추고 그의 옆에 앉아 준비된 말을 꺼냈다.
“이경희 님께서 베이직 타입에 가입하셨고, 저번 달까지 납입하셨어요. 남은 잔액만 지불하시면….”
그는 상조 서비스를 소개하는 팸플릿에 시선을 둔 채 멍하니 말했다.
“…어떤 거라고요?”
“아, 여기 보시면요, 베이직형 이건 데요. 제일 저렴한 프로그램이라 납입하실 금액도 그렇게 크지는 않고….”
그때였다. 내 말을 듣던 남자가 갑자기 팸플릿을 꼭 쥐며 고개를 들었다.
“바꿔 주세요. 제일 좋은 걸로.”
“네?”
뜻밖의 요청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상주님, 마음은 알지만 빈소가 아담하니까 굳이 큰 걸로 하실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화장하실 거니까 수의나 관도 비싼 걸 하실 필요가….”
“그럼 난… 난 도대체 뭘 해줄 수 있습니까?”
그는 내 말을 자르며 울먹였다.
“자기가 죽은 다음까지 직접 자기 손으로 챙긴 사람한테... 못난 남편인 난 뭘 해줄 수 있냐고요!”
남자의 말에 나는 내심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무엇을 해줄 수 있냐니. 사정을 아는 나로서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고인과는 4개월 전에 상담을 했습니다. 남겨질 남편과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걱정이 크셨고, 죽은 자신에게 쓸 돈이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나는 냉정하게 조언했다.
“정말 고인을 위하신다면, 고인의 유지대로 따라 주십시오.”
장례가 끝났다. 운구차를 떠나보내고 뒷정리를 한 후 나는 늘 가는 포장마차에서 일훈을 만났다.
“그래서, 결국은 제일 좋은 걸로 했어?”
“아니, 내 고객이 원했던 대로 했어.”
일훈이 따라주는 잔을 받으며 나는 그 고객의 일을 떠올렸다.
올해 초였다. 이경희라는 이름의 고객과 상담을 했던 것은.
상품 팸플릿을 놓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지더니 결국 제일 저렴한 상품으로 가입을 하겠다 했다. 늘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녀가 마지막에 물었다.
‘만약에 6개월 밖에 납입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알고 보니 암 선고를 받은 날이었다, 그날이.
이제부터 투병에 들어가지만, 확률이 낮아서 큰 기대는 어려운 상태. 남편은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자기가 준비해 놓아야 될 거 같다고, 그러면서 서글프게 웃던 여자.
그런 그녀가 기대수명조차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내가 본 바 남편의 반응은 진정한 슬픔보다는 체면치레와 허세로 보였다. 그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에 고인의 유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 잘했어. 넌 고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 거야.”
일훈의 말에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그는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고인을 위해 건배하자. 그녀가 이제는 평안하기를.”
우리는 잔을 부딪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일훈의 위로와 이해가 나를 위안으로 감싸주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마셨던 것일까.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겨우 눈을 떴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입안은 말라 있었다. 물을 마시러 냉장고 쪽으로 가니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다.
[콩나물국 끓여 놨다. 먹고 속 풀어.]
“좌우간 오지랖은….”
가스레인지 위 냄비 뚜껑을 열자 맑은 국물의 콩나물국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가끔 생각했다.
만약 내 생일날의 그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침마다 그가 끓여주는 콩나물국의 따뜻한 온기를, 나는 계속해서 느낄 수 있었을까.
…서설이 너무 길었다.
이제 나는,
이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한 본 목적,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던,
그 어떤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