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클래스] : 보통사람들이 타는 좌석,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곳
빈부의 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든 많겠지만, 살면서 그 격차를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은 비행기였다.
비행기 탑승 후 한바탕 보딩이 끝나면 비행기 전 좌석에 있는 아이들에게 인형을 나눠주기 위해 이코노미 클래스 끝자락에 있는 갤리(기내 주방)에서 퍼스트 클래스까지 비행기 한 바퀴를 돌곤했다. 3-4-3 또는 2-5-2 대열로 빽빽하게 찬 좌석과 그곳을 몸의 크기와 상관없이 온갖 사람들로 빽빽하게 채운 이코노미 클래스를 지나 커튼을 열어젖히면, 아까와 같은 규모의 공간에 2-2-2 대열의 비즈니스 석이 열린다. 그곳에는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 두세 배 크기를 자랑하며 180도로 젖혀지는 안락한 의자, 대형 LED 스크린, 넓은 공간을 이용해 긴 다리를 쭉 펴고 앉은 사람들이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지나 다음 커튼을 열면 (이름은 들어봤나, 본 적은 있나) 퍼스트 클래스라는 세상이 있다. (항공사와 여객기마다 퍼스트 클래스의 존재 유무와 그 수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기서의 기준은 보잉 797, 나름 최고 사양이다) 이 공간에는 어떤 소리도 향기도 없다. 마치 우주에 온 것 같았다. 조도를 한껏 낮춘 깜깜한 천장에는 우주에서 떼온 별을 박아놓은 듯한 조명들이 반짝거린다. 모든 좌석은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룸 스타일로 되어 있다. 문을 열면 평평하게 젖혀지는 의자는 기본, 비즈니스 클래스의 스크린을 초라하게 만드는 그보다 훨씬 큰 TV, 승무원을 따로 부를 귀찮음조차 줄여주는 개인 냉장고. 그리고 그 공간을 무심하게 즐기고 있는 부의 극에 있는 사람들의 담담한 표정이 들어 있다.
그런 거짓말 같은 세 개의 클래스가 몇 평 안 되는 공간에 다 함께 일렬종대로 몰려있는 곳이 비행기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세 클래스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각보다는 오히려 후각과 청각이었다. 이코노미의 냄새와 비즈니스의 냄새, 그리고 퍼스트 클래스의 냄새는 상당히 달랐다. 점점 더 좋은 냄새가 난다기보다 향이 점점 사라진다고 해야 하나. 이코노미 클래스의 냄새는 모든 인종의 체취가 뒤섞인 자극적이고, 강렬한 향인 반면,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부드럽고, 좋은 향이 났다. 뭔가 '이곳은 정말 비싸고 좋은 곳이야'라고 자랑하려는 듯한 냄새. 흥미로운 건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그런 좋은 향도, 자극적인 향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냄새도 소리도 없다. 좋은 시설, 서비스는 이미 다 받아봤으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받고 싶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이코노미 클래스보다 외려 더 많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비즈니스 클래스 손님들의 분위기와도 사뭇 다르다. 이것이 졸부와 진부(진짜 부자)의 차이인가 싶을 만큼.
자연스럽게 승무원의 직급도 그에 따라 신분 상승한다. 갓 입사한 승무원은 모두 이코노미 클래스를 맡고, 1~2년 후 진급 시험을 치른 뒤 비즈니스 클래스로 올라간다. 퍼스트 클래스도 마찬가지. 서비스의 내용은 다르지만 만석일 경우 1인당 최대 100명 가까운 사람을 맡아야 하는 이코노미 클래스 승무원과 한 사람이 한두 명의 승객(퍼스트 클래스 손님이 적으면 2~3명의 승무원이 한 명의 퍼스트 손님을 맡기도 하는 기이한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을 맡아 일하는 퍼스트 클래스 승무원은 이코노미 클래스 손님과 퍼스트 클래스 손님만큼 노동의 강도와 그에 따른 월급의 차이가 크다. 비행기가 그런 곳이다.
1년 정도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신입으로 일을 하다 시험을 치른 후 나도 당당히 비즈니스 클래스 승무원이 됐다. 이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전쟁 같은 보딩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오픈할 때 나는 '펑' 소리마저 아름다운 모에샹동 샴페인을 따서 늘씬한 잔에 따른 뒤 예닐곱 명의 손님에게 웃으며 나눠주면 그만이었다. 식사 때마다 족히 100번씩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며 손님에게 기내식을 나눠주고 거둬온다거나, 100명의 사람들이 콜벨을 부를 때마다 객실로 튀어 나가 잔심부름(자기 쓰레기를 버려달라거나, 아기 젖병을 씻어달라거나, 담요를 두 개 더 갔다 달러 거나, 화장실 물을 대신 내려달라거나 등등)을 하거나, 착륙 준비를 하며 수 백개의 담요를 걷는 일과도 이제 안녕이었다. 비행시간도 짧고, 만석인 대형 비행기를 타고 저 모든 업무를 마친 후에는 승무원이란 말이 무색하게 그야말로 거지 꼴이 되었다. 머리는 미친 여자처럼 헝클어지고, 빨간 립스틱은 다 지워지거나 입술 바깥으로 번져 나가 피에로가 되었다. 치마 속으로 넣어뒀던, 울긋불긋한 음식물이 잔뜩 뭍은 블라우스는 옆구리 쪽에서 뱀 혓바닥이 되어 밖으로 나와 있고, 온전했던 스타킹도 올이 풀려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우리에게 부사무장은 '그루밍'을 강조하며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하라고 다그치곤 했다.
비즈니스에서 맡는 손님은 이코노미에 있을 때보다 반의 반도 안 되는 숫자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곳에서 일을 하고 나자 뭔지 모르게 더 지치고 힘들어지는 기분이었다. 언뜻 보면 더 쉬워 보이지만, 비즈니스 손님 중에는 이코노미 클래스에 비해 까다로운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바지에 물을 쏟았다고 무릎을 꿇게 했던 사람도(물론 이코노미에서는 음료를 늦게 줬다고 내 멱살을 잡은 사람도 있었지만), 타서 내리는 순간까지 온갖 술 종류를 다 시켜 내 뚜껑을 열게 한 사람도(주로 비즈니스에 처음 탔거나 업그레이드된 사람), 나보다 키가 20센티쯤 더 크고, 건장한 주제에 지 가방을 바닥에 놓고 나더러 올리라고 한 뒤 의자에 앉아버렸던 비즈니스맨도 바로 여기, 비즈니스에서 만난 진상들이었다. 비즈니스의 서비스 업무는 한 마디로 전보다 손이 많이 가는 특성이 있었다. 보딩을 하면 따뜻하게 데운 물수건과 샴페인을 주고, 식사는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로 구성된 코스 요리로 손님 수는 현저히 적지만 한번 식사를 하는 데 2시간 이상씩 걸리기도 했다. 게다가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플라스틱이었던 식기가 모두 도자기로 바뀌면서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쉬운 비행인 날은 상대적으로 편한 날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양쪽에서 모두 일을 해보니 나는 이코노미가 그리워졌다. 가끔 퍼스트 클래스가 없는, 이코노미와 비즈니스 두 개의 클래스만 있는 기종의 비행기를 타면 비즈니스 승무원 중 한 명이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일을 해야 했다. 지원자가 없을 땐 임의로 착출 되기도 했지만, 나는 대부분 용병을 자처했다. (가끔 나 같은 애가 한두 명 더 있어서 이코노미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노동의 종류를 고르는 데 있어 우선순위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재미가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힘이 들어서든, 즐거워서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일을 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는 이코노미 클래스는 (종합적으로 봤을 때) 비즈니스보다 만족스러운 노동이었다.
물론 슬픔과 분노 같은 극도의 감정을 선사해준 사람은 확률이나 수치상으로 이코노미가 훨씬 많았지만 그만큼 기쁨과 보람, 삶의 즐거움을 안겨준 사람들도 모두 여기에 있었다. 긴 다리를 어쩌지 못해 복도나 겔리 앞에 서성이던 붙임성 좋은 수많은 서양 사람들과 나눴던 흥미로운 대화나 비행 내내 아이를 함께 돌봐줘서 고마워하던 어린아이 엄마, 담요 속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렸지만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던 방글라데시 아저씨, 치킨을 비프로 잘못 갖다 줘도 괜찮다며 맛있게 먹어주던 성격 좋은 손님들. 신기하게도 긴 비행을 하다 보면 처음 만난 이 사람들과 참 많은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길고 긴 전쟁 같던 비행이 끝나고 비행기를 나설 땐 잘 가라는(잘 있으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좀 더 잘해줄걸, 그렇게 차갑게 말하지 말 걸, 저 사람도 화가 났을 만하지 하는 이런저런 미련과 아쉬움과 미안함,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다음 비행 땐 더 잘하리라. 다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기다렸던 가족을 만나거나, 행복한 휴가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도 솟아났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마지막엔 이런 순수한 희로애락이 있었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에 갈 만큼 오랜 시간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설령 더 오래 일을 했더라도 나는 퍼스트 클래스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주 말하곤 했던 것 같다. 그 우주 같은 숨 막힘이 그 철저한 나 혼자 있고 싶음이, 굳게 닫혀있던 스위트의 문이 부럽다거나 갖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나한테 주지도 않겠지만). 그곳에서 비행시간 내내 별일 않고 있는 퍼스트 클래스 승무원들이 나는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물론 그땐 지금보다 어려서였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 가장 좋은 노동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바쁨이나 에너지였고, 어쩌면 내 감정과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하던 수많은 사건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어리버리했던 나를 기억하면, 그때의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의 극도로 화가 나거나, 엄청나게 기뻐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낯설기도 안타깝기도, 그립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코노미 클래스는 나의 젊음이었고, 치부였고, 요란한 성장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좌석, 거기서 나를 알게 되고, 작은 인생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