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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Feb 15. 2024

실패한 인생인데 설날에 내려가기로 한 이유.

나의 삶을 어떻게든 다시 보며 살아가는 중.

원래는 강아지가 있던 사진을 참고했으나 그냥 고양이를 그려봄

이전에 트위터인가 유튜브인가에서 어떤 영상의 썸네일을 보았다. 인생이 망해서 명절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나. 대충 이런 비슷한 제목이었다. 참으로 자극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관심을 먹고사는 사람은 이런 제목을 놓칠 순 없지. 나는 알량한 브런치 작가이므로 보란 듯이 그 제목을 적었다. 누군가는 내 인생을 망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아직' 안 망했다고 괜찮다고 말하기도 하고 더 밑바닥을 찍는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호들갑 떨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자기 인생은 자기가 가장 힘들다고 하고 남들이 아무리 뭐라 해봤자 어쩔티비 내가 수습하고 살아야 하는 게 내 인생이다. 그래도 요즘 들어서 나는 내 삶에 최선을 다 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었다. '열심히' 했다기에는 좀 머쓱하지만. 적어도 이 나이 먹고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진 않았다. 내 선에서 대부분 처리하거나 감당하고 있다.


고양이가 조금 간악해보이지 않습니가?

어쨌건 남들이 실패하거나 망했다고 말 얹기 쉬운 상태의 나는 당당히 서울역에서 케텍스를 탔다. 뭐 백수가 되었는데 빈손으로 가는 게 맞나, 하다가도 눈앞의 사람들이 다양한 걸음걸이로 다 다른 옷차림으로 속도로 걸으면서도 한 손에 선물용 과일이나 베이커르 세트를 들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두 개의 파운드 케이크를 유명 베이커리에서 줄 서서 샀다. 엄마가 좋아하는 스콘 두 개도 슬쩍 집어 계산했다.



구름 연습 중(이 말만 100번째임)

여기까지 당당하게 온 것에는 나와 내가 본 내 또래 사람들의 치열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물가가 치솟는 것과 반대로 취업시장과 경력직들의 월급의 상황은 하락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snl에서는 mz들이 에어팟을 끼워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 섞는 게 무섭다는 기성세대들의 웃음소리를 들었고 그건 여전하다. 겉보기엔 좋은 사람으로 마케팅되어 있으나 월급을 못 주겠다고 날 쫓아낸 대표나 신입을 한두 명만 뽑아놓곤 리더급인 자기들처럼 일을 못한다고 인격모독을 해댄 그들도 내가 그만두면 뒤에서 '젊은 사람들은 속편하군'이라고 당당하게 욕할걸 생각하니 구역질이 난다.


청년센터와 같은 청년들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일찍 가지 않으면 자리가 거의 없다. 스타벅스도 부담스러우니 도서관이나 노트북을 쓸만한 무료 이용공간에 내 또래 사람들이 들어가고 하루종일 공부나 서류 작성을 한다. 그 작은 탕비실은 성별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도시락 혹은 컵라면을 먹는다. 인스타그램에서 오마카세를 매일 간다는 대기업을 다니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탕비실에서 눈칫밥을 먹는 우리는 같은 취급을 받는다.


처음에 그릴때는 나름 괜찮았는데 지금은 머임

함부로 대하는 세상과 나이 있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나와 나의 또래들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감을 나는 안다. 물론 부럽다. 대기업 간 친구들. 취직 일찍 해서 돈 모은 친구들. 시험에 붙은 친구들. 나는 뭐가 잘못되었길래 이렇게 되었나 싶긴 하다.




선 색 잘 쓰는 법 좀 알려주셈

오히려 바닥을 찍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앞으로 할 일들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영어 성적을 올리고 다시 취업 공부를 하고 직무를 연구하며 상담을 듣고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내 마음과 몸도 신경 쓰고 있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씁쓸하면서도 슬픈 내 과거와 현실과 그럼에도 묘한 통쾌감이 있는 나의 이면이다. 이건 나중에 또 브런치 글에 올릴 테니 대충 넘어가자.


그래서 나는 오래 머물진 않더라도 그냥 설날에 친척들과 가족들을 보고 왔다. 퇴사를 한 건지 취업을 다시 준비하는 것인지 모를 곧 서른 여성이 친척들에게 듣는 말이야 뻔하다.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반갑게 얼굴 비치는 것은 친척 잔소리 대상 넘버 원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내 주특기다. 내 결혼과 취직과 입시가 걱정되시는구나 그래도 전 당신의 조카랍니다 조카. 오히려 서로 얼굴 보고 웃으며 왔다. 사실 서로 별로 진지하게 궁금해하지 않았고 할 말이 없었을 뿐이니까.


다음 명절에는 어떤 인생으로 얼굴을 비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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