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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r 07. 2024

기다려야 했던 시기가 있으십니까?

버텨야만 하는 시기가 온다.

뭘 그려야 할지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그냥 손 가는대로 그렸더니 맘에드는게 나와서 올림

기다림을 배우는 기간을 지난 적이 있으십니까?


chul학생, 기다림을 배우는 기간이라고 생각합시다.



4년 전 이맘때즘, 대학 졸업 전 취업을 실패한 내게 한 교수님이 답해준 메일 일부이다. 이 교수님은 우리 전공 교수님도 아니었고 딱 한번 들은 교양 컴퓨터 공학 전공의 교수님이셨다. 왜인지 딱 한번 수업을 들은 내게 (점수도 좋지 않았는데) 늘 칭찬을 해주셨고 마지막에는 '자네는 잘 될 사람이야'라고 하셨다. 그리고 눈 건강이 나빠지셔서 은퇴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오염된 구름

왜 그냥 지나가고 심지어 잘하지도 않은 애교 없는 타과 학생에게 이렇게까지 격려를 주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교수님께 죄송하게도 저 '기다림을 배우는 기간'은 내게 없었다. 정확하게는 음.. 스스로에게 전혀 허락하지 않았다. 저 메일을 받았을 때도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기다림 따위 없이 바로 취직과 성공을 이루겠습니다 자랑스러워하십시오'라고 생각했다.


뭐 이후로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사회력이 낮은 편에 코로나, 2023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 사기꾼 같은 대표와 경우 없는 리더 두 명을 만나 채용취소와 협박을 전부 당하고 다시 알바 겨우 구하는 중이다.

어머어머 무슨 일이 생긴듯?

나는 조급함을 못 버티는 사람이다.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일과 문제를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수능이나 공시 같은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만 몰두할 수 없다. 만약 돈이 부족하다면 알바나 파트타임을 뛰어야 하고 집이 어지르다면 청소를 해야 하고 돌봐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순서나 우선순위만 다를 뿐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나는 그게 안 되었다. 여러 개의 일들 중 하나라도 안 되면 그 안 되는 일에 정신과 노력이 몰빵이 되었다. 얼른 하나라도 확실하게 해결되어야만 했다.

조금 더 있어보세요 마무리 잘 하려니까

그렇다 나는 저어어어언혀 몰랐다. 알려고도 안 했고 인정도 안 했다. 세상에는 확실하지 않은 일들 투성이고 그 일이 조금이라도 확실해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야 했던 것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현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서 뭐라도 다른 것들을 하다가 정작 해야 하는 일들은 하지 못함을.


이렇게 멋있게 적었지만 그냥 알바 구해야 하는데 알바 안 구해지고 상반기 시작되었는데 서류는 떨어지고 있어서 주절주절 길게 적어봤다.



제법 괜찮죠?

잘 될 필요는 없지만 뭐라도 되어야 하는 게 내 현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는 알바자리 하나조차 내 마음대로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는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아직 어렵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지금 하는 나의 노력이 또 무산되고 나는 그냥 목숨만 덜렁 있어서 죽느니만도 못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재수 없게도 사람은 쉽게 죽지 못했고 또 나는 남들과 비교를 하고 싶은 마음과 찾아가며 더듬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을 버티는 경험을 삶이 주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일이 더럽게 안 풀리는 나날은 이렇게라도 해서 삶을 연장시키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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