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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게 숲을 돌려줄 수 있다면…

7주 차

by 최집사



250331 맑음


+ 고대 잉카족 사람처럼 돈 안 되는 일에 야금야금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있다. 꾸준함도 능력이라던데… 이런 나의 일관성 있는 게으른 성실도 될 수 있을까? 처음 고깃집 알바해서 개통했던 16화음 폴더폰처럼, 졸작 준비로 밤새 켜져 있던 작업실의 낭만처럼, 어딘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설렘의 감도를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한땀한땀 진심의 라벨 . 자투리 원단으로 만들어요.




250401 화사


+ 꾸리의 생일이다.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몰라 대충 셈하여 이날로 정했다. 꾸리는 네 살, 나는 마흔이 되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다는 소리다. 홀랑 타버린 산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울창했던 숲의 시간을 가늠할 길이 없다. 사과와 복원의 마음을 담아 자투리천으로 나무 키링을 만들기로 했다. 재활용 두유팩을 가져와 패턴을 떴다. 종이 연필 책… 플라스틱. 돌아보니 죄다 숲에서 온 것들이다.


자투리 원단으로 만들 . 새로운 키링이 패턴입니다.





250402 벚꽃 만개


+ 룽지는 똥을 쌀 때마다 애옹애옹 나를 부른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무방비 상태의 자기를 지켜달란 뜻이란다. 어릴 때 나도 회장실에 혼자 가는 일이 없었다. 2인 1조로 짝을 이뤄 가장 친한 친구를 데려갔다. 이젠 딱히 데려가고 싶은 이도 없고, 나의 치부가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겉으로 보기엔 뭔가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된 거 같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나이가 되면 누군가를 다시 데려가지 않을까 싶다. 그게 로봇일 수도 있고… 나무가 없는 산은 누가 지켜주려나? 발가벗은 그가 치욕에 못 이겨 무너져 내리지 않길 바란다. 고라니와 산새, 다람쥐 가족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린다.


홀랑 타버린 산을 떠올리며 자투리 원단을 이용해 나무와 작은 숲 키링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250403 꽃샘바람


+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나니 벌써 주말이 온 거 같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 잠시 벤치에 앉았다. 조금 뿌옇긴 해도 하늘은 높고 파랬다. 토토로가 다녀갔는지 발 밑에 도토리도 잔뜩 있었다. 얼마 전 오체투지를 하시는 스님들 영상을 보고 나도 뭐라도 해야지 싶어 아침마다 초를 킨다.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기 나무 입양중인 냥콤비.





20250404 쌀쌀하지만 맑음


+ 산책 겸 자전거를 끌고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 식당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거 같다.


불타버린 산을 떠올리며 헌옷으로 이용해 나무와 숲 키링이를 만들었습니다.



20250405 봄비


+ 봄꽃이 절정인 주말이지만 비가 온다고 했다. 인간 입장에선 김이 좀 빠지지만 나무들에겐 희소식이겠지. 우리에게도 희소식이 있으니 주말을 맞아, 또 봄을 맞아 을숙도에 다녀왔다. 애정하는 카페에 갔는데 네비 오작동으로 길을 좀 헤맸지만... 그래도 부부싸움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꽃들이 만개한 봄이 너무 짧다는 걸 알기에 다 추억이 될 거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다.


지난번 앞치마를 만들고 남은 초록초록한 자투리 원단으로 카드파우치를 만들고 있어요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DIEP6k4vSuC/?igsh=Nm10ZjB4aXdzdDM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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