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원이 되기까지.

난 조직원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by 달림

'이것은 운명?'이라고 쓰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읽겠다.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보냈던 모범생이었던 학창시절,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아이였던 나는 누구나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는 엉덩이만 무거운 학생이었다. 공부는 누가 봐도 엄청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나오지 않으니 선생님도 부모님도 모두 안타까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요령 없이 무식하게 공부했던 것 같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잘못된 예랄까? 응용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학생. 사회생활로 치면 융통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아이였다.


수능을 보고 점수에 맞춰 원서 접수를 하고 결과를 보니, 날 받아주겠다는 학교는 단 한 곳, 고민할 것도 선택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재미없던 공부가 좋아졌다. 다른 과를 갔어도 그랬을까? 암튼,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해서 인지 남은 3학기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고 뒤늦게 머리가 트였다는 말까지 들었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탐색 차원에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취업분야로 견학을 갔다.


그중 하나였던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사무실과 실험실을 둘러보며 '와~ 이런 데서 일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공공기관에 대해 처음 매력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여기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공채 시험을 봐야 합니다."


석사라...

전문학사만으로는 취득할 수 없었기에 먼저 일반학사 취득을 위해 졸업 후 3학년 편입을 했다.


단순하게 <환경> 두 글자만 보고 선택했던 '환경화학공학과'는 1년의 시간을 공들여 준비해서 편입한 내게 야속하게도 "좌절"을 선물로 주었다. 공업수학을 따로 학원에 다니며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화학공학은 다시금 날 수포자 아니 학포자라고 해야 하나? 서서히 학업과 멀어지게 했고 4학년 2학기 조기 취업으로 선 학교 탈출, 후 학사 취득은 가능했지만 석사는 깨끗이 미련을 버리게 되었다.



2002년 하반기에 입사했던 첫 직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의 아주 작은 회사였다.


직원이라고 해봤자 사장님과 윤 부장 그리고 그만둔 여직원까지 셋 뿐이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에 환경(산업)기사를 대표하는 자격증 2개를 가지고 있던 나는 면접에서 원하는 연봉을 제시할 수 있었다. 당시 취업사이트에서 평균적으로 제시되는 1천500만 원을 제시했고 그것이 나의 첫 연봉이 되었다.


학교 탈출이 목표였던 나는 회사의 규모나 내가 해야 할 일(경리)을 따지지 않았다. 그저 환경과 관련된 회사이니 난 전공을 살려 졸업 전에 취직 먼저 한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사장님과 윤 부장은 매번 공사현장을 다니고 사무실을 지키는 건 나 혼자였다. 출근하면 청소를 해야 했고 손님이 오면 커피를 타는 등 두 분이 안 계실 때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가 도맡아서 해야 했다.


스물네 살 사회 초년생은 아버지뻘 되시는 사장님의 "미쓰리~"라는 호칭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해냈다. 직원이 3명이니 조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첫 조직에서부터 난 말 잘 듣는 직원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며, 매달 받는 급여에 만족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렇다 할 비전 없는 작은 회사를 다닌 지 딱 10개월 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회사가 망해서'였고 난 자진퇴사가 아닌 <권고사직> 처리되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에 관심이 갔다. 당시는 사회적으로도 그랬고 부모님께서도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고 여기던 분위기였고 공무원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아 들고 서울 '신설동'으로 향했다.


신설동에 위치한 학원 근처 고시원에 두평이 채 안되는 방 한 칸을 잡아 놓고 학원과 고시원만을 오가며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고 먹고 자고 씻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공무원 시험 준비에 올인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 통틀어 그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스물다섯,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고 이것만이 내가 갈 길이다 생각했다. 그렇게 실업급여 3개월치와 부모님의 한 달 치 도움으로 4개월 만에 조직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염원하던 <보건환경연구원>은 아니었지만 '공공조직'이었다.

채용인원이 더 많다는 이유로 환경 대신 '보건'을 택했고, 연구원이 아닌 '공무원'이 되었지만 만족했다.




브런치북에 발행하지 않고 별도로 발행하는 바람에 발행취소하고 다시 올립니다.

연재글이 처음이라...^^; 라이킷 눌러주셨던 분들의 이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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