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조직에 스며드는거지.

나의 생활 반경 안엔 조직원들 뿐이었다.

by 달림


스물여섯부터 스물아홉까지 구청 근무 4년, 푸르른 청춘.


일만 했던 건 아니니 업무 외적인 추억들도 한번 꺼내어 본다.


쉬어가는 의미의 번외 편이라고나 할까?



인생 첫 독립.


임용 직후엔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다시 급행으로 갈아타야 하는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이른 아침에 나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 씻고 쓰러져 자기 바빴고 다시 또 일어나 출근이 반복이 되는 그런 나날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독립선언을 했다. 매일 피곤해하는 날 보며 부모님은 승낙하셨고 마침 같은 사무실에 동기 언니와 함께 독립할 거처를 구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당시 20년이 넘은 아파트 1층을 전세 보증금을 나눠서 부담하고 언니와 합가를 했다.



왕복 5시간 가까이 되던 출퇴근 시간이 30분으로 단축이 되니 살 것 같았다. 비록 아파트는 너무 오래되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용서될 만큼 출퇴근 시간은 중요했다.



다행히 우린 둘 다 무던한 성격의 동거인이라 함께 사는 2년 동안 트러블 없이 잘 지냈고 언니가 결혼하게 되면서 우린 헤어졌다. 다시 또 원룸과 신혼집이 나란히 있던 한 동네에 살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운동을 좋아했던 여자


퇴근이 15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퇴근 후의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싶어졌다. 동기들과 머리를 맞대고 뭘 해볼까? 고민하다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구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체육센터 같은 곳이 있었고 요가를 해보기로 결정. 하필 시작한 시기가 날이 쌀쌀해지는 늦가을 무렵이었다. 넓은 체육관 같은 곳에서 몇 안 되는 인원이 하니 너무 춥기도 했고, 더 결정적인 건 (죄송하지만) 요가 선생님의 몸매가 더 이상 운동할 의욕을 불러일으키질 못했다.



"요가 선생님 결혼하셨나 봐. 그치? 임신하신 거 아니야?"


"아직 미스인 거 같던데... "


"뭐? 그럼 저게 똥배라는 건데? 에이~~~ 설마..."



이십 대 처자들은 날씬한 몸매로 거듭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는데 요가를 해도 나의 뱃살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굳이 뻣뻣한 몸으로 이 추운 곳에서 요가를 할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 결혼하셨어요? 저희는 아직인데..."


"아뇨~~ 저도 아직이에요."



한 달이 지나 수업료를 내야 할 시점, 그렇게 우린 요가와 안녕하고 수영으로 갈아탔다.



수영은 나의 시력이 좋지 않았던 점과 부끄런(?)몸뚱이를 드러내야 하는 점, 한 달에 며칠은 마법에 걸려 가지 못하는 점의 이유로 한 달 만에 수영장을 박차고 나왔다.



다음은 새마을금고에서 운영하던 헬스&에어로빅.


집에 가는 방향에 있었고 사무실에서 5분 거리였기에 앞선 두 곳의 운동장소보다 위치가 더 좋았다. 에어로빅 수강생들은 우리 4명을 제외하곤 모두 아줌마들이었고 우린 뻘쭘하게 맨 뒤에 서서 몸을 휘휘 저으며 따라 하기 바빴다.



처음 시작은 동기들과 함께 4명이었는데,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결국엔 나 홀로 남아 3년을 했고 맨 뒤에서 시작해서 맨 앞까지 진출하는 실력자가 되었다.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을 찾았다고나 할까? 헬스&에어로빅은 너무 재미있었다.


매일 홀로 헬스장 기구를 돌며 운동하는 날 눈여겨본 트레이너와의 소개팅 제안을 받은 건 안 비밀로 하겠다.



청춘, 썸이 빠지면 섭하지.


스물네 살부터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고, 연애가 길어지면서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헤어질 때는 다신 안 만날 것처럼 헤어지고 그러고 나면 또 잊지를 못하는 게 둘 다 첫 연애라 연인과 헤어지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때도 다신 안 만날 것처럼 헤어진 상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직렬 특성상 그때도 여직원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과 사무실 타 직렬을 감안하더라도 남자 직원이 있어봤자 40대 아저씨 두 세명 정도.



근무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무렵이던가. 동갑내기 남자 직원이 발령받아 들어왔다.


옆 팀이었고 서로 등을 맞대고 일하는 위치에 있었다. 40대 여자분들이 많았던 부서라 그 남자 직원을 향한 이모 혹은 엄마 마음으로 관심이 많았고 나와는 달리 살가운 성격이라 더 이쁨을 받았었다.



젊은 남녀, 둘 다 애인이 없으니 주변에서 자꾸 엮으려는 시도와 장난을 견뎌야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와 나는 PC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소개팅했던 얘기도 공유하고 함께 공연도 보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야근하는 날은 퇴근하고 집까지 바래다주고... 물론 사무실 직원들은 모르게,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었지만.


동갑내기니까 친구처럼 지냈고 서로 비호감은 아니니까 그렇게 따로 만나서 시간을 보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회식 날, 노래방도 아닌 식당에서 왜 굳이 노래를 시켰는지 모르겠다. 그가 일어나 노래를 하기 시작하는데 임재범의 고해를 부르는 게 아닌가. 직원들 앞에서 나를 보면서!!


'뭐야. 왜 이래. 취한 건가?' 하면서도 아주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진 2차 노래방.(그땐 필수 코스였다.) 술에 취해 힘들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집에 가는 길목까지 같이 걸었고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그가 물었다. "나... 어때? 만약에 내가 사귀자고 하면.. 만날 거야?"

내가 대답했다. "음... 싫진 않은데...확실히는 잘 모르겠어."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나쁘진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우린 같은 조직원이었지만, 그는 조직 안팎에서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좀 달랐다.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고 잘 놀지 못하는 숙맥인 나와는 달리, 그는 스포츠카를 타고 주말이면 클럽을 즐길 줄 아는 잘 노는 남자였다. 싸이월드에 올라와 있던 사진을 봤을땐 그렇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출근하면 말쑥하고 평범하면서 싹싹한 조직원이 되었다.



이후 서로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던 것 같다. 서로가 취향 차이를 느끼고 있었고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은 아니었던 데다, 그 무렵 즈음 난 전 남자친구와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나기 시작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그때의 기억은 좋은 느낌을 남기며 썸도 끝이 났다.


지금은 그에게 감사하다. 가끔 추억으로 떠올려 볼 수 있는 그날들을 선물해 줘서.



회식이 정말 싫은 조직원


난 술에 약하다. 대학 다닐 적엔 먹으라니까 그냥 먹었지만, 사회생활은 또 다르다. 술잔 돌리는 것도 싫고 서로 따라줘야 하는 것도 싫고 자리를 옮겨가며 마시는 것도 싫고 그냥 먹기 싫다.


입사 후 잦은 회식자리를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퇴근 후 나의 시간을 빤히 아는 사람들에게 핑계를 대기란 쉽지 않았다.


그냥 중간에 화장실 가는척하고 나와 줄행랑을 쳐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았다.


억지로 먹어야 하는 술 한 잔도 싫었지만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2차(또 노래방)에서 이어지는 블루스 타임이었다. 첫 회식에서 그 광경을 목도하고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왜! 대체 왜 결혼하신 분들이 서로를 부둥켜 앉고 블루스를 추는 거지?'


도저히 이해도 안 되고 저기에 끼면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몇 번의 회식이 거듭되자 동기들 또한 하나 둘 거기에 끌려들어 가 블루스를 추고 있는 게 아닌가. 난 죽어도 못하겠다 싶어 그대로 나와버렸다. 이게 20년 전의 일이다. 지금이었으면 큰일 날 일!!


코로나 이후 저녁 술자리 말고 점심 식사로 회식, 술도 억지로 먹이지 않는 지금의 회식문화로 바뀌어 얼마나 다행인지...





제대로 된 첫 사회생활,

20대 후반의 청춘 그 시절에

병아리 조직원은 그렇게 조금씩 조직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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